문득 서러움이 터져버린 날

사회 초년생, 괜찮다는 말이 간절했던 그 때 그 시간들

by 흔한여신
밤이 깊도록 나는 사무실 자리에 못 박혀 있었다.


저녁 10시를 넘긴 시각. 나는 텅 빈 사무실에 홀로 남아 있었다. 모두가 차가운 겨울 바람을 피해 집으로 돌아간 시간, 나는 사무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밤 늦게 귀가한 게 여러 날이었다. 해야 할 일을 적어둔 종이에 적힌 글자는 많았는데 그 위에 그어진 선은 몇 개 안 되었다. 업무를 시작한 오전 9시부터 밤늦도록 하루종일 일에 매달렸건만 나는 그 날 계획했던 일을 아직 한참 남겨둔 상태였다.


내 모니터 화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창들이 띄워져 있었고 책상은 온갖 서류들로 뒤덮여 있었다. 전쟁같은 하루를 보낸 끝에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는 책상엔 갖가지 사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디선가 핸드폰 진동 소리가 울렸지만 어디에 뒀는지 기억나지도 않았고 소리에 귀를 귀울여 봐도 주변이 난장판이라 찾기 힘들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야 하는데, 핸드폰까지 내 발을 붙들고 있었다.


원래 하던 업무가 아니라 욕심이 났던 다른 업무를 추가로 하게 된지 얼마 안됐을 무렵. 나는 주변에 기대에 부응할 만큼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일에 적응하는 데는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나는 지금 배움의 과정에 있는 거니깐 달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일을 잘 하고 싶은 욕심이 강했던 만큼, 언젠가 고생한 보람이 있을 거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렇게 몇날 며칠 야근이 이어졌다.


하지만 자처한 고생인만큼 남탓 할 게 없었다. 그저 내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하며 채찍질을 해서라도 업무에 적응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실수를 용납할 수 없었기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꼼꼼하게 업무를 들여다 봤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일은 그렇게 배우고 회사에서의 평판은 그렇게 만들어 나가는 거라고 여겼다. 지금 돌이켜 봐도 틀리지 않았던 선택이었다. 그런 악바리 근성 덕분에 지금 나는 적어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으니깐.


밥 먹으러 갈 시간도 아까워 그 날 저녁은 김밥으로 대충 떼웠다. 식사하러 나가는 다른 동료에게 부탁해 김밥 좀 사다달라고 했고 그 한 줄을 천천히 먹을 새도 없이 몇 알씩 입 안에 털어넣었다.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한 채로 한 손으론 김밥을 집어 들었고 한 손엔 마우스를 쥐고 있었다. 10시가 넘어서도 채 먹지 못한 김밥 몇 알이 차갑게 식은 채로 책상 끄트머리에 놓여 있었고 허기짐을 느낄 새도 없이 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래도 그런 내 모습이 좋았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 자체가 내가 쓸모 있다는 반증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출처: 에듀진


그런 어느날 또 야근하는데 동기 언니한테 사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근무지 위치가 달라 멀리 지내면서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 그래도 같은 시기에 같은 조직에 첫 발을 뗐다고 얼마나 의지가 되던지. 한창 배울 시기에 모르는것 투성이라 주변에 민폐끼치는 것 같아 동기들끼리 서로 알아 온 정보를 공유하며 업무를 익히곤 했다. 데면데면한 사람들 틈에 지나가는 아는 동기 얼굴이 새삼 반가웠다. 지금도 동기들과 대화를 하면 힘이 나지만 신입 시절엔 그 애틋함이 더 했다. 9시를 넘긴 시각, 나는 또 모두가 퇴근한 사무실에 홀로 남아 낮에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해치우고 있었다.


언니: 또 남아있네? ㅜㅜㅜ 집에 언제 가?
나 : 언니도 아직 안 갔네? 힘들겠다 ㅜㅜ
언니: 이것만 조금 더 하면 가려구 밖에 춥다..
나 : 언니 혼자 남아 있어?
언니: 웅. 팀장님이랑 사수 분도 다 퇴근하고 안계셔.
나 : 나도 혼자 있어. 아무도 없으니 좀 편하긴 하다.
언니: 집에 가지도 못하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나 : 그러게. 근데 아직도 다 처리를 못 했어. 언제 다 하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홀로 남아 있는 서로를 위로하고 또 응원했다. 그런데 갑자기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있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 내가 못해서, 멍청해서 맨날 남는 게 아닐까 하고.
우리가 배울라면 아직 멀은 거겠지?


그 말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애써 참아 온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렀다. 내가 잘 못하는 것만 같아서, 한편으론 왜 나만 팀의 업무 관련해 희생과 책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서러움이 터져 버렸다. 누가 더 잘하라고 윽박지른 것도 아니었고 전부 네가 해야한다며 일을 떠넘기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 배움이란 미명 하에 모든 책임을 떠맡고 있었다. 때론 남의 잘못까지 뒤치다꺼리하면서도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알지 못했다.


어디까지 내가 해야하는 몫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신입시절에 흔히 겪게 되는 일이지만, 누가 알려주지 않는 것이라 깨닫기가 어렵다. 신입 때는 으레 참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솔선수범해서 업무를 처리하는 게 참된 자세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내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더욱 남들의 시선이 신경쓰였다. ‘눈에 띄지도 그렇다고 안 띄지도 않을 정도’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처음 생긴 평판이 오래 간다는 말에 더더욱 내 언행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신입시절 몇 번 화장실 칸에 들어가 남몰래 울고 나오곤 했다.


나중에 얘기해보니 동기들 중에 몇 명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했다. 사람도 일도 내 뜻대로 되는 건 없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남들이 그 과정을 전부 알아주는 게 아니었다. 혼자 책임을 떠 안고 끙끙거리다가 결국 모든 잘못이 내 탓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 답답하고 서러운 마음이었지만 터 놓을 곳이 없었다. 그런 날엔 참았던 눈물을 아무도 몰래 화장실에 틀어박혀 앉아 쏟아내고 나왔다. 썩 후련하진 않았지만 순간의 감정은 해소됐다. 그 모든 순간은 지난 뒤에 보기에 열심히 살았다는 방증임이 분명하지만 그 때는 슬픔을 애써 틀어막느라 괴로웠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나만의 노하우가 많이 축적되어
더 이상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지난 날들의 뼈아픈 경험을 교훈 삼아 성장해 온 덕분이다. 이제는 내가 신입이던 때를 떠올리며, 또 누군가가 괜한 슬픔에 휩싸여 힘들어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새로 온 신입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그 신입들에게 자꾸 꼰대가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요즘 신입 직원들은 동료와 어우러지는 것도 자신을 조금 희생해서라도 팀워크에 힘을 보태는 것도 불필요한 일로 치부한다.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나는 나고 너는 너인 그런 셈법이 강하게 작용하는 탓이다. 그들은 이전 세대들 처럼 남의 평가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노 터치, 노 땡큐다.


물론 일한 지 얼마나 오래됐다고 그런 잔소리를 하는게 가당키나 하겠느냐마는 내 나름대로는 그들이 버틸 힘을 키워주고 싶다. 다가올 위험을 맞닥뜨리기보다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겪지 않는 게 덜 상처가 되지 않을까. 물론 아직까지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후배님을 만나지 못해 아쉽지만, 꼰대가 아닌 바른 생활의 길잡이가 되는 그런 선배 노릇이 나는 하고 싶다. 그래도 어우러져 지내야 하는 게 인간세상인만큼 혼자라면 외로울 순간들을 함께 있어주고 싶다.


아울러 나 또한 더 이상 사회생활에 치여 남들의 지나가는 한 마디에 치여 상처받지 않기를 소망한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