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동의 처음과 끝(연애이야기 아님 주의)
모르던 이가 아는 이가 되어
내 삶에 걸어 왔을 때
나는 그와 함께 경험해 본 적 없는
우주를 거닐었고,
그렇게 손을 맞잡았던 이가 곁을 떠났을 때
나는 마음 한 켠이 무너져 내리는
상실감을 겪었다.
사람 간 만남과 헤어짐만큼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게 또 있을까. 비단 연애 문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 생기는 영향력은 개인의 삶의 향방을 좌우하는 힘이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긍정적인 시너지가 극대화되어 혼자였을 때보다 더 나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고, 불행히도 비협조적인 파트너를 만나서 괴로움에 시달리다 자아가 갉아먹히기도 한다.
또 누군가가 무심코 던진 작은 불씨가 제 안에서 거센 화염으로 번지는가 하면 혼자의 힘으로 풀지 못했던 숙제를 누군가의 조언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잘못을 타인의 모습을 통해 비추어보며 반성하는 경우도 있다.
그 만큼 사람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한 개인을 더 뚜렷하게 만들기도, 흐리멍덩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이 내게 끼치는 영향이 항상 긍정적인 건 아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을 제어할 필요도 있지만, 때로는 내 안의 숨겨진 에너지를 끌어내는 자극이 된다. 그래서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다음에 만날 이에게서도 그런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하고, 지금보다 더 못한 이가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좋은 인연을 만들어 나가는 게 오롯이 나에게 달린 게 아니다. 수 많은 우연 속에서 마침내 인연이란 실이 엮어지는 것이다.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는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 과정이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숱한 만남과 이별의 순간을 겪어왔다. 하지만 친하던 이와 헤어지는 건은 언제나 슬펐고 새로운 이와 친해지는 과정엔 설렘과 괴로움이 동반되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 복잡미묘한 감정은 늘 그대로였다. 그런 과정이 생애를 걸쳐 순환하기 마련이니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지만 사실 헤어진 이를 다시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마음을 나눴던 이들을 오래도록 곁에 붙들어 두고 싶었지만 다가오는 이별을 막을 순 없었다.
계절의 변화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인연의 시작과 끝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었다.
입사한 뒤로 벌써 4번의 인사이동을 겪었다. 헤어진 이들의 수만큼 새로운 이들을 만났다. 우리 부의 경우 1년에 총 2차례의 인사이동이 있다. 부정부패 방지를 위해 원칙적으로 3년 단위로 순환근무를 해야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3년 뒤엔 다른 근무지로 옮겨간다. 하지만 근무지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탓에 다음에 '어디서 누구와 일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다. 때문에 인사이동 관련한 고충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한편 내가 떠나지 않는다 해도 내 주변 사람들이 이동을 하기 때문에 긴장을 내려놓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오느냐에 따라 팀 분위기는 천차만별이 된다. 팀워크가 쭉 유지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구성원을 만나면서 관계들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잘 맞았던 동료를 떠나보낼 땐 아쉬움이 가득한 반면 소문이 흉흉한 이가 올 거란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운 좋게도 첫 시작부터 인복이 있었다.
3년 전 나는 공무원으로서 첫 발을 내디디는 임용 발령을 받았다. 오랜 수험생활 끝에 겨우 사회로 한 발 나아갔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정식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는 데에 대한 걱정이 교차했다. 첫 팀을 만나기 전 어떤 사수를 만나게 될까, 어떤 이를 관리자로 만나게 될까 궁금했고 긴장했다. 얼떨떨하게 맞이한 딱딱한 첫 인상과 달리 점점 나는 화기애애한 팀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곁에는 기대 이상으로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관심과 애정 속에서 나는 성장했다.
첫 팀장님은 다정한 분이었다. 신규직원였던 나의 잘못과 실수에도 크게 나무라지 않고 차분히 문제를 바로잡아 주셨다. 또 이것저것 질문하는 내용에도 성심성의껏 답변해주시곤 했다. 그만큼 격의 없이 사람을 대하는 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르는 게 있다고 바로 옆 팀원들을 냅두고 팀장님한테 쪼르르 달려간 내가 얼마나 신기했을까 싶다. 또 소위 '진상' 고객님이 방문할 때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직원들을 보호했고 분풀이를 하는 상대를 조용히 달랜 뒤 돌려보냈다. 그래서 나는 '팀장님이란 저런 존재구나' 하는 걸 그 분을 통해 보고 배웠다.
주어진 책임을 다 하면서도
팀원들의 고충을 헤아려 주시는 분,
존경해 마지 않을 수 없는 분이었다.
또한 입사 선배로 만난 언니들은 나에게 거인같은 존재였다. 뭐든 열심히 하는데다가 성실했던 그들은 내가잘 모르는 일도 척척 해냈고 위기상황에서의 대응력도 뛰어났다. 겨우 1,2년 선배였지만 그들은 이미 제 자리에서 프로의 모습을 보였다. 허둥지둥대는 나와는 달리 꼼꼼하게 지침과 법령을 공부했고 사람 상대도 능숙했다. 그들의 모습을 눈으로 좇으며 나도 언젠간 저렇게 프로페셔널해지리라 다짐했다. 그들은 나의 롤모델이었고 지치고 힘들 때 잠시 기대고 싶은 선배였다.
그런 좋은 사람들과 헤어지던 날,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런 팀장님과 선배들이 각각 내 곁을 떠나던 날 나는 대성통곡을 했다. 헤어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밀려드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전날 이미 집에서 홀로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낸 뒤였지만 회사에서도 한껏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앉아 있었다. 주변에선 앞으로도 숱하게 겪을 일이니 너무 상심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터져나오는 눈물이 거두어지진 않았다. 내 첫 시작을 함께했던 사람, 그리고 나의 첫 사회생활에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던 사람들이 차례로 곁을 떠난다는 사실이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작년 여름, 그렇게 지금까지의 짧은 사회 생활 중 가장 가슴 아픈 이별을 겪고난 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지냈다. 함께 울고 웃었으며, 여러모로 직장생활이 미숙했던 내게 나침반이었던 이들은 그들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이내 새로운 사람들이 빈 자리를 대신했지만 '구관이 명관이다'란 말처럼 그 허전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전과 같은 현재는 없다는 사실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손뼉이 맞을 수 없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물론 변화가 필요한 순간도 있겠지만 나에겐 변화를 맞이하는 게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이전 사람들과 달리 새로운 사람들과는 어딘가 모르게 어긋나는 면들이 있었다. 공연히 부풀려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익숙해 온 방식과 달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의사가 합치되지 않거나 행동이 엇박자였다. 새로 만난 팀장님은 무심하셨고 진상 고객님을 응대하는 데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냅두면 그 사람도 제 풀에 지쳐서 돌아가겠지'라며 도움을 청하러 온 나를 돌려보낼 뿐이었다. 그리고 조직 분위기에 먼저 적응한 선배로서 새로운 직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려고 했지만 내 기대와 달리 그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또 다시 헤어짐의 순간이 예정되어 있다.
또 다시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이 다가왔다. 다음주면 이제까지 함께했던 이들을 또 떠나보내게 된다. 그 중에는 한 때 소울메이트처럼 죽이 척척 맞았던 동료직원과 내가 의지하고 존경했던 팀장님도 포함되어 있다. 이번 인사이동이 이 근무지에서 맞는 마지막 이별의 순간이다. 다음 하반기 인사 때는 드디어 내가 이 곳을 떠나기 때문이다. 애써 담담하게 작별인사를 준비하려 하지만 또 다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마움과 미안함 뿐만 아니라 그리움까지 담긴 감정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그들의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직원들을 맞이하게 된다. 그 동안 정들었던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막 열의 넘치는 신규 직원들과 일하게 될 예정이다. 새로운 사람들은 어떨지 그 만남이 괜히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지금은 잠시 다른 팀에서 보조 업무를 맡은 신규직원 분들과 우연한 기회에 식사를 함께 했고 인사를 나눴다. 각 거취가 정해지고 난 뒤 다시 한 번 인사 차 그들에게 들렀다. 주절주절 직장생활에 대한 TMI를 늘어놓고 나니 왠지 민망해졌다. 주제 넘은 이야기였을까 싶어 급히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저도 부족하긴 하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먼저 와 주셔서 감사해요. 그래도 얼굴을 아는 사이라 마음이 좀 놓이는 거 같아요. 말씀해주신 게 왠지 의지가 돼요."
일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는 그들을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차마 전하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키며.
반갑습니다.
서로에게 좋은 인연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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