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방법
물론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할 수는 없다.
무료로 봉사하는 입장은 훨씬 책임과 부담이 덜한 반면 내게 기대되는 바가 있는 업무환경에서는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지금은 밥벌이하는 직장인이라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는 차원에서 나의 안락함과 행복을 어느 정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 일의 목적은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거나 성과를 내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내 의사와 상관없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그런 내 일상은 재미가 없다. 그래서 처음엔 설레기만 했던 출퇴근길도 어느 순간 답답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 감사한 마음과 당찬 포부로 첫 발을 내디뎠던 때와 달리 감옥같은 일상으로 로그인-로그아웃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하는 삶이 주는 고단함이란 그런 것이겠지' 하며 버티는 게 지난한 하루의 일과다.
직장생활은 많은 인내심을 요하는 험난한 과정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내 의견같은 건 쓸모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맞장구만 잘 치면 된다. 반대의견이나 쓸데없는 첨언은 사족(蛇足)이 된다. 아무런 색도 내비치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삶이 편해진다. 그만큼 나다움을 잃게되는 공간이다. 물론 모든 직장인들이 나와 같진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를 여실히 느낀다. 처음엔 나다운 모습을 맘껏 표출해도 괜찮은 줄 알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싶은 대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만약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순간 미처 알지 못한 면이 있었다고 받아들기 보단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정색하는 게 보통의 반응이다.
또 사람들은 개인의 자잘못을 포용하기보다 그런 행동들을 대부분 민폐로 생각한다. 그래서 내 부족한 부분이 남에게 불편으로 와닿는 순간 동료들과 멀어지게 된다. 남들보다 뛰어날 필요는 없지만 '중간이라도 가야한다'라는 말이 정답이다. 학교에서처럼 배움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이 주를 이루는 게 아니라 빠르게 적응해서 서로 엇비슷하게 움직이는 하나의 일원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칭얼거리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럭저럭 제 몫을 해내야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다.
직장동료와 화목하게는 지내도 내 마음을 터놓기는 어렵다.
제아무리 좋은 사람들을 동료로 두었어도 그들이 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게 아니다. 함께 일하는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를 위하는 마음 같은 게 아니라 남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제 할일을 하는 것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서로간 관계도 좋을 리가 없다. 또 아무리 같은 배를 탄 동료가 협조적이고 친절할지라도 나와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똑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서로 받아들이는 바가 다르고 제시하는 해결책도 다르다. 결국 각기 다른 점을 서로 양해하면서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직급이나 경력에 차이가 있는 상하관계에선 일방적인 싸움이 된다. 그 경우 나의 결론은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직장생활을 겪기 전에 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하면서 내 자아가 실현되고 내면이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극히 드물었다. 애초에 내가 주도적으로 꾸려나가는 상황이 거의 없고 반대로 원하지 않았는데 주어지는 상황은 많았다. 그런 어려움을 묵묵히 감수해야하는 게 사회생활이었다. 한편으로 내가 아닌 나의 모습을 꾸며야 하는 때도 있었다. 불평불만을 숨기고 좋은척 웃어야 하는 때. 소위 '자본주의 미소'를 잘 장착하고 있으면 사람들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다. 적당히 밝고 적극적인 자세는 평판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서려는 튀는 행동은 견제의 대상이 된다. '적당히'가 중요한 포인트인 이유다.
하지만 화려한 색깔을 좋아하는 나는 견뎌야 하는 상황들이 답답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자꾸 취미생활에 관심을 쏟았다. 내 의지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그런 것들 뿐이었다. 때문에 인내심이 바닥나기 전에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활동들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일시적인 충족만을 안겨주었다.
결국 나는 도돌이표같은 직장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어떻게든 풀어야 했다.
사실 나는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회사에 있는 동안엔 창밖의 풍경조차도 회색빛으로 보일 지경이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일찍 집에 가는 때이거나 쉬는 날이면 얼마나 거리의 풍경이 생동감 넘치게 보이는지 모른다. 오늘 하루도 그랬다. 예전에 비하면 꿈과 목표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어 공허해진 일상이지만 그래도 휴식이 주는 여유와 행복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방학’이란 재충전의 시기가 없는 직장인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일에서 얻는 성취감이 기대만큼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직장인들은 대개 자신의 몸과 마음에 신경쓸 틈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눈치 보며 휴가를 써야 하는 서러운 입장이기 때문에.
오랜 만에 천천히 몸을 일으켜 텅 빈 집에서 홀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을 켜놓고 마음껏 웃으며 식사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오후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날이 좋으니 어딘가를 산책해볼까 하는 생각 정도만 머리에 이고 설거지를 했다. 이런 보통의 하루를 꿈 꿨다. 매일 같이 만원의 지하철 안에서 옴짝달싹도 못하는 동안. 과자를 먹으며 실컷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나를 상상했다. 그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일거라 생각하며.
다음주에도 지겹도록 뻔한 나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괜찮은 척 모든 이들 앞에서 한껏 밝은 미소를 띄우고 있을 것이다. 잔뜩 굳은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하다가도 누군가의 인사에 반갑다며 오버액션을 할 지도 모른다. 그게 남들에게 각인된 나의 모습이니까. 내가 나다운 것으로 인정받고 싶은 겉모습이니까.
그런 가면 속에서 나는 매일을 살아간다.
아주 당차게 그리고 아주 밝은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