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품격

남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는 것

by 흔한여신
지난 2월, 인사 이동과 함께 새로운 팀원들을 맞이했다.

익숙한 얼굴들로 채워져 있던 풍경이 사라진다는 건 시원섭섭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인물들에 대한 기대가 만든 설렘이 있었다. 마침 매일같이 반복되는 업무에, 같은듯 다른 면을 가진 사람들과의 반복되는 하루에 질릴 대로 질렸던 참이었다. 기존 직원들의 빈 자리를 채운 이들은 바로 갓 입사한 신규 직원들.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줘야 할 것들이 많은 이들이자 내가 직장에서 처음으로 맞게 된 후배 직원들이었다.


팀에 몇 안되는 선배로서 나는 업무 전달은 물론 처음 공직생활에 입문하는 이들이 어려움 없이 조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맡게 됐다. 이제 막 물에 나아가 헤엄치는 법을 배울 아기 오리들을 이끄는 어미 오리로서 조직의 든든한 일원이 되도록 살피는 게 내 임무였다.


하지만 신규 직원들과 만나기 전 나는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이들이 업무를 잘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선배 노릇 하기는 처음이라, 내가 뒷받침하는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가 자신이 없었던 거다.




사실 처음엔 나보다 더 오랜 연차의 선배가 이끄는 대로 따르기만 할 생각이었다. 나 역시 그에게 한낱 어린 후배에 불과하니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서포트하는 역할에 충실하려 했다. 새로운 팀원들을 이끌고 한데 모으는 역할은 나보다 더 똑똑한 선배의 몫이라 여겼다. 그만큼 카리스마도 있고 배울 점이 많은 선배였다. 내가 존경하는 다른 선배들의 후광을 좇으려 애쓰는 것처럼 그들도 자연스레 나 아닌 다른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선배는 생각만큼 잘 이끌려 오지 못하는 후배들이 답답했고 후배들은 대선배를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최대한 다른 점도 포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음이 잘 맞지 않았다. 선배는 후배들의 소극적인 행동이 떨떠름했고 후배들은 선배에게 질문하거나 다가가기 어려워했다. 그들 간 대화는 거의 없었고 독서실처럼 조용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자 선배의 마음은 더욱 동요했다. 팀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졌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https://www.imhr.work/brand/new-perspective-of-conflict-management/


결국 중간에 낀 내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건 내가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다. 갑자기 혼자서 많은 짐을 지게 될 거란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나서지 않으려던 애초의 계획이 비틀어져 신규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기 시작했다. 체력 소모가 심했지만 팀의 안정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의무감이나 내 만족을 위했다기보단 내 신규 시절을 많이 떠올리며 최대한 따뜻하고 낮은 자세로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스스럼없이 나는 그들 틈에 파고들었다.


그런 내 행동을 지켜본 누군가는 그렇게 애정을 쏟다보면 훨씬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고 다른 누군가는 불필요하게 나서다보면 그들은 도움 받는 데만 익숙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여러 말들이 오갔던 탓에 방향을 잡기 어려웠다.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맞는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저 사람 말이 맞는것 같아 헷갈리는 때가 많았다. 선배노릇을 어떻게 해야할지 감을 잡기 어려웠는데, 괜히 다 도와주려고 나선다면 주변에서도 내 행동이 잘못됐다고 손가락질 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 때면 내 신규시절을 다시 떠올렸다. 별의별 질문을 다 했었던 호기심 많은 시절,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 하는 어린 아이 같은 질문을 다 받아주던 따뜻했던 팀장님과 팀원들을 떠올렸다. 한창 배우던 시절 나는 가르쳐주는 내용을 필기하는 걸 까먹고 재차 물어봐서 귀찮게 하기도 했고 하기 싫다는 이유로 일처리를 밍기적거리기도 했다. 꼬박꼬박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뒷말이 나온 적도 있었고 사소한 실수에도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받았었다. 그런 불편한 시선을 느끼며 나는 억울함을 속으로 삼키곤 했다. 나는 분명 더 잘 할 수 있는데, 너무 매정한 평가를 성급하게 내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사건건을 현미경으로 보듯 해서 트집잡는다면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는 법. 나 역시 업무처리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받기 시작했던 게 입직 후 6개월이 넘은 시점이었다. 그보다 몇 개월 빠르게 업무에 적응했다 한들 크게 의미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다라는 평은 시간이 흐르면 정해지기 마련이니까. 처음의 나쁜 평가를 뒤집을 기회도 있다는 걸, 겪었던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https://www.imhr.work/brand/new-perspective-of-conflict-management/


함부로 관대해지지 말라는 충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에게 격려가 우선이라 생각했다.


선배들은 과도한 관심이 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타당성이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런 관심이 일정기간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선배들의 말을 따르는 게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것 또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모든 말이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새겨들어 나쁠 것이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정답을 내는 건 결국 내 몫이다. 그게 선배가 낸 예시답안과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오답은 아니라고 믿는다. 선배의 조언은 내 답안을 만들어 나가면서 참고할 만한 선택지로서의 역할일 뿐, 내가 택한 답은 아닐 수 있다.


오랜 조직생활을 겪은 어른들이야 모든 게 눈에 밟힐 테니 작은 잘못에도 '저러면 안 될 텐데'하는 눈초리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의 행동을 나는 흐린 눈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크지 않은 실수엔 아예 눈을 감을 작정이었다. 그런 내 다짐은 절반은 성공했고 절반은 실패했다. 남들이 보는 대로 날카롭게 꼬집어 보기도 했고 무심한 척 지나가기도 했다. 모든 상황에서 내 주관대로 행동하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어찌됐든 내가 생각한 선배노릇을 해보겠다고 여러모로 고민하곤 했다. 남들의 매서운 시선과 그들이 처한 상황 사이를 오가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신규 직원들의 동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잘 하고 있는지 혹은 부족한지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점점 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과한 관심이 그들에게 부담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으며 내버려두면 알아서 제 자리를 잡아 갈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마음이 전달된 것일까, 다른 이들과의 관계는 아직 어색한 그들이 나에게는 꽤 붙임성있게 다가온다. 그들이 내게 여러모로 많이 의지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이 맞다는 걸 확인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신규 직원들이 적응하는데 문제없는가 하는 걸 살피기 위한 관리자와의 면담 시간. 각 직원마다 30분 가량 소장님과 면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장님 앞에 불려간 그들은 각자 내 칭찬을 꼭 빠뜨리지 않았다고 했다. 내게 도움받았던 얘기를 하고 왔다며 내게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 얘기를 듣는 나는 부끄러움과 더불어 왠지 모를 부담감까지 느껴졌다. 그런 한편 그런 말을 통해서라도 그들은 내게 에둘러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으리라 하는 생각도 들었다.


"OO주무관님이랑 옆에서 제일 말도 많이 하고 같이 많이 웃고 떠들고 있다고 했어요. 제일 잘 챙겨주시고 같이 얘기하면 재밌다고 얘기 많이 했어요. 저 잘했죠?" - K주무관(남)

"팀 분위기도 좋고 다들 잘 해주신다고 얘기했어요. OO주무관님한테 질문 많이 해도 다 받아주셔서 잘 배우고 있다고..." - K주무관(여)

"OO주무관님은 옆에서 너무 눈부신 분이라고 얘기하고 왔어요~" - P주무관



정확한 대화 내용을 듣지 못했으니 MSG가 쳐진 얘기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진담반 농담반인듯 꺼낸 얘기 속에 분명 그들의 진심이 담겨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내 스스로도 부족했다고 느끼는 점이 많은데 불구하고 이런 칭찬을 받는 게 부끄럽지만 감사한 일이다. 이보다 더 좋은 칭찬이 또 있을까. 미처 내색하지 못했으나 마음이 얼마나 들뜨던지. 열심히 산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선배 노릇이 처음이라, 얼마 안 되는 경험 가지고 내가 정말 잘했노라고 힘주어 말 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남들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보다 더 노련하고 멋진 길잡이가 되리라는 다짐을 했다.


아주 최선을 다하진 못하더라도
잘못했다 상처주기보다 격려를 아끼지 않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다.



photo by. Roj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