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방법
오늘은 느지막하게 잠에서 깼다.
전쟁같은 출근길과 퇴근길을 겪지 않아도 되는 날. 오랜 만에 아무 계획 없이 쉬는 날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미 출근길에 올랐을 시간. 창문 너머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이불에 부비적대고 싶은 마음에 기어코 눈을 뜨지 않았다. 오늘 쉰다는 기쁨에 어제 새벽까지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던 터라 몸이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무렴, 오늘 같은 날은 아무 생각 없이 푹 쉬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졸음이 다 가실 때까지 누워있을 작정이었다.
일하러 가는 날 아침은 일어나면서부터 짜증이 가득하다. 잠은 항상 부족했고, 버스와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하며 달려나가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회사에 가기 싫다는 괴로움에 발버둥치는 일 없이 가만히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회사에 가지 않더라도 다른 무언가를 하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쉴 수 있는 게 좋았다. 어떠한 생각도 고민도 내 마음을 괴롭게 하지 않는 그런 편안한 상태에선 남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여유로운 시간은 찰나처럼 지나가버린다. 마음에 긴 여운만을 남긴 채.
한창 공부하던 시절, 나는 공부하는 곳 주변에 여러 가지 문구들을 적어 놓았다. 그 중에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는 글귀가 있었다. 출처가 명확한지 알 수 없지만 하버드대학 도서관에 있는 글귀라며 유명세를 탔던 말이다. 공부를 하면서 쏟아지는 잠을 주체하기 어려웠던 나는 종종 잠에 굴복했던 내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그 문구를 가까이 두었다. 자는 것은 꿈과 목표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기 위해서였다. 배고픔은 참아도 졸음은 참기 힘들었던 내게 꿈은 그만큼 간절한 그 무엇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삶이 나다운 일이라고 믿었다.
휴식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았던 건 몇 년 전 미국에 다녀온 뒤였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스펙을 쌓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곧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진로를 정하는 데 마냥 고민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 새 남들은 취업시장으로 뛰어들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렇게 조바심에 쫓기는 상황에서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경험이 취업준비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새로운 도시의 매력을 느낄 새도 없이 홀로 심각했다. 여행지에서의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는 여행자 신분이라기보다 구직자로서 내 능력을 시험대에 올릴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뉴욕이라는 대도시에 영어가 어설픈 동양인 여자를 위한 일자리는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어느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심부름꾼을 하게 됐다. 하루종일 내게 주어진 일은 별 게 없었다. 개인적인 공과금 납부처리라든가 회계정리하는 일. 그리고 법원에서 문서를 받아오는 일과 법원 재판에 함께 출석하는 일 정도가 내 할일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러시아 출신의 다른 심부름꾼도 있어 더욱 나설 일이 없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종종 변호사의 말동무를 했다. 다행히 길고 심오한 대화가 아니라 아주 쉽고 일상적인 내용이라 겨우 소통이 됐다. 미국 땅을 밟기 전 영어 트레이닝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었다.
한편 변호사는 내가 심심할 것을 걱정했는지 가끔 영어로 문서 쓰는 일이 시키곤 했는데 그 때마다 얼마나 식은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생소한 법률용어를 구글링해가며 무슨 소송 건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시킨대로 논지를 정리했는데 정신이 아득해지곤 했다. 요금 청구에 대해 문의하는 전화를 대신 시킨 적도 있었는데 친절한 상담원이 내 말을 거듭 이해하려고 노력해준 덕분에 문제를 가까스로 해결했다. 또 변호인으로 법정 출석하는데 따라갔을 때는 판사 바로 앞에 서서 그가 하는 말을 들을 기회도 있었는데 너무 말이 어려워서 도통 이해하지 못했었다. 일상 대화나 비즈니스 회화에 치중했던 공부였기 때문에 실제 업무 수행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심부름꾼 생활은 한국에서 준비하던 때 가졌던 욕심에 비해 소박한 결과였지만 지내는 동안 의외로 불행하거나 힘든 점은 없었다. 오히려 나를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으로부터 해방되었던 시기였다. 일을 잘 해야한다는 부담을 준 이도 없었고 그럴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더 없이 마음이 편했고 아무 생각 없이 사무실을 오가며 스트레스 받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중에 출퇴근이 불행하지 않다고 느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뭔가를 해내야한다는 조바심이 가라앉자 푸른 하늘과 녹음이 우거진 주변 풍경이 눈에 띄었다. 아등바등하는 삶에서 잠시 벗어나 한국에선 스스로 잘 즐기려 하지 않았던 휴식을 마음껏 즐겼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돌아다니느라 온몸을 그을리면서도 나는 뭐가 그렇게 좋았던지 항상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내게 진정한 꿈이 생겼다.
'돈 많은 백수가 되고 싶다'는 꿈.
진정한 행복은 일하는 데서 오는 보람에서 느끼는게 아니라 생각없이 노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던 여름이었다. 그 전까지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옥죄려는 시도가 덧없는 인생에 가혹한 일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런 나는 ‘일 없는 삶’을 꿈꿨다. 취업준비를 목전에 둔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