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껏 울어도 좋은 밤을 선물해 주길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밤이 내게 왔으면

by 흔한여신
짙은 어둠이 깔린 시간, 나는 사무실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 주변엔 빈 자리 뿐이었고 홀로 앉아 고독을 씹으며 남은 일거리를 보려던 참이었다. 건너편에서 갑자기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들끼리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 반대편에 앉아 있던 나는 애써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혼자여서 외로웠던 것도 아니었고 남아야 한단 사실이 슬펐던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일상적이라 내가 끼어들기에도 적절했고 머리를 비우고 그저 웃어 제치기 적당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공허한 내 마음이 그들의 환희와 대비되어 공연히 마음 아팠다.


해야 할 일이 한 가득 쌓여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회사에 남기를 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요즘 들어 심해진 우울함 때문이었다. 해가 짧아진 계절이면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는 게 더 괴롭게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눈을 뜬다 해도 아무런 감흥이 없을 하루가 기다려지지 않았다. 내일엔 내일의 태양이 뜬다해도 내 하루가 그처럼 찬란하게 빛나진 않을테니 그저 어둠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고 싶었다. 기쁨도 슬픔도 모른 채로 아무런 표정도 존재감도 없이 감춰져 있고 싶었다. 세상 만사에 내 뜻대로 되는 일도 없거니와 나도 빛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가지기엔 너무 빛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그들의 반짝임에 비하면 내 행색이 너무 보잘것 없어 보였다.


멍하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밝은 미소가 지워지고 어느 새 수심이 가득해진 낯빛엔 어두운 기운이 가득했다. 물론 겉으로는 그런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애썼지만 이미 손 쓸 수도 없을 만큼 우울함이 내면에 가득한 상태가 됐다. 잔뜩 움츠러든 모습을 탈피하고자 직장 일 외의 것들에 관심을 가져도 봤지만 기대만큼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1년이 지나고 난 뒤 결국 집과 회사를 오가는 일상으로 다시 되돌아 왔다. 즐길 당시엔 한창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지만 바깥 나들이란 게 참 별 게 아니었다. 그리고 바깥 세상에서 만난 남들은 더욱 그 속을 알 수 없는 존재였다.



회사 입장에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조직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으며 어떤 고충이 있는지를 외친들 쉽게 들어줄 리 만무했다. 기계처럼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할 뿐, 다수가 늘어놓는 불평불만을 다 들어주기엔 한계가 있었다. 또 성과를 놓고 우열을 가릴 때에도 내가 속한 조직에서 보상을 책정하는 가장 객관적인 기준은 연공서열이었다. 결국 오랜 세월 조직에 충성했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이 주어졌다. 물론 누가 일을 잘하고 누가 일을 못하는지에 대한 평가는 공공연하게 있었지만 그 누구도 개인의 자잘못을 큰소리로 따지지 않았다. 누군가 못한 일을 잘 하는 다른 사람이 대신하면 된다는 게 가장 간단한 문제 해결방법이었다.


나서면 나설수록 피곤해지는 건
내 자신이었다.


사람들은 본인이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데는 소극적이면서 제 자신의 불평불만은 스스럼없이 얘기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남들이 내 사정을 알아줄 리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서로의 이해관계가 수시로 충돌했다. 그래서 해결의지를 조금이라도 적극적으로 가진 사람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충돌 없이 갈등을 매듭짓고 싶은 마음에 양보를 하게되고 한 발 물러서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타인의 '속 깊은 양해'를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래서인지 평화로운 순간은 대개 오래가지 못했다. 그 동안 불합리한 상황을 참아 온 사람이 결국 불만을 터뜨리며 논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한편 아무도 나서지 않고 모두가 쭈뼛쭈뼛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건 언제나 나였다. 힘든 일을 자처하고자 맘 먹었던 건 아닌데 누군가는 져야 할 책임을 나몰라라하는 게 성미에 맞지 않았다.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때 나는 스스럼 없이 나섰다. 하지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는 세간의 말처럼 나는 지쳐갔고 남들은 제 할일을 하느라 관심이 없었다. 하필이면 코피가 흘러도 야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거나 배가 아파 식은땀을 흘려도 쉬는 날이라 힘들다는 티도 내지 못했다.


출처: 북드라망 출판사


결국 아무런 보람도 성취감도 없이 이어지는 지루한 직장생활에 지쳤고, 멀리에 빛나 보이는 남들의 후광에 내 자신이 초라한 것 같다는 자괴감에 휩싸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기에 바쁘게 움직였는데 난 지금껏 이룬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적 꿈 꿔왔던 어른이 된 내 모습은 이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난 전혀 멋있지가 않았다. 하지만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갔다. 주변의 선배들은 내가 아직 인생을 배우려면 멀었다며 잔소리를 늘어놨고 나는 점점 피폐해지는 마음을 숨기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약해진 마음이 기어코 우스갯소리에도 웃어 넘기지 못하고 상처를 입는 수준에 이르렀다. '모두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이야.' 하는 그런 슬픈 생각마저 들었다.


그저 밥벌이를 하고 때 되면 끼니를 챙기고 때 되면 잠을 자는 그런 생활.
아무런 감흥이 없는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하기 전 함께 간 일행과 잠시 아이스크림 가게를 들렀다. 최근에 상도 받았으니 뭐라도 쏴야하는 게 아니냐며 종용하는 이들에 떠밀려 내가 사게 됐다. 혼자 받은 상도 아니고 내가 팀에 기여한 바가 결코 적지 않아 과분하다 여길 만한 상도 아니었던 터라 다른 팀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할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익살스럽게 축하하는 분위기인냥 이끌어가는 바람에 얼떨결에 작게 한 턱을 냈다. 물론 맛있게 먹었고 재밌게 수다 떨었다. 다들 내가 넉살이 좋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임해 온 사람이니깐 조금 호들갑을 떨어도 응당 괜찮을거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일 테다. 그래서 그 동안 어떤 무례함에도 눈 감고 웃으며 호응해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렇지 못했다. 분명 비겁하고 나약한 모습도 있었다. 그래서 억지로 괜찮은 척해야 하는 순간도 많았다. 언제나 이상적인,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갖추기엔 많은 희생이 따랐다. 내 자신이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지금의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 또한 극명했다.





사람들과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으며 얘기를 잠깐 나누는데 문득 과거 신입 시절이 떠 올랐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입사 초기 조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던 시기에 대해 털어놓으며 잠시 옛 추억에 잠겼던 터였다. 그 때는 그게 참 힘들었노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갑자기 선배가 이런 질문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괜찮고?


장난스럽게 지나간 말이었지만, 사실 말 속엔 뼈가 담겨 있었다. 눈치가 빠르고 조직생활에 능숙한 선배는 내게서 느껴지는 암울한 기운을 이미 감지했으리라. 당연히 잘 적응해서 문제없다는 말을 대충 얼버무렸지만 그 말에 속시원히 답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 자리로 돌아왔을 땐 눈물이 한껏 차 올랐다. 며칠 간 무기력함에 빠져있던 마음이 드디어 응답을 했기 때문이다. 지치고 힘들어서 누군가가 제발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속마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물론 이 또한 남에게 드러내지 않기 위해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사무실 밖을 나서자마자 속절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길 내내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슬픔을 삭이고 있었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나는 또 다시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이들이 제 일상을 잃어버리고, 제 꿈을 놓쳐버리곤 황망한 심정으로 각자의 길 위를 걷고 있을 테다. 누군가는 고민 없이 잠이 쏟아지는 안락한 밤을 보내고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게 인생의 여정이라지만 이토록 진흙길을 걷게 될 거라곤 누가 알 수 있었으랴.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누군가 역시 남 몰래 흐르는 눈물을 감추고 홀로 치미는 서러움을 집어 삼키고 있을지 모른다.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이 현실이 언제 끝날지 걱정스럽지만, 부디 이 길의 끝에서 마주하게 될 행복은 이제껏 누려보지 못할 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마음껏 울고 난 밤 다음에 올 아침에는
부디 웃으며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작가의 TMI

사실은 괜찮은 척 일상에서 웃고 떠들고 할일을 하고 글을 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문득 힘들다 생각이 드는 순간 간신히 붙잡고 있었던 아슬아슬한 행복이 무너져 내리더랍니다.

어딘가엔 정말 토로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힘들다’는 얘기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마음은 늘 괜찮지가 않은 요즘이에요. 우울한 심정은 저 혼자만이 가진 숙제는 아닐 거라 생각하며 글을 썼습니다. 물론 실제로 눈물샘 터진 날을 기리는 의미도 담겼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힘 나는 내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