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모녀사이
엄마는 산을 좋아하지만,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엄마는 매운 음식도 잘 먹지만,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엄마는 운동을 좋아하지만 나는 운동과는 친하지 못하다.
나는 주 3회 필라테스 수업을 듣겠다고 3달치 수강권을 끊어놓고도 하루를 갈까 말까 한데 엄마는 매일같이 산을 넘나들며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결심만 앞서서 학원부터 등록하거나 기구부터 사고 보는 나와 달리 엄마는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수영을 한 지 벌써 20년이 되었고 등산을 시작한 지는 10년이 다 되어간다.
엄마는 벌레를 봐도 한낱 미물로 여기지만 나는 벌레를 보면 경기를 일으킨다.
바퀴벌레를 보면 도망가는 것은 기본이요, 벌레 같아 보이는 먼지를 보고서도 놀라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어느 날 방에 들어와 있던 갈색 여치를 보고 기절초풍을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 눈에 띈 바람에 한 동안 방에서 맘 편히 자지를 못했다. 또 다시 여치의 습격을 받을까 두려워했고 결국 며칠 동안 방 안에서 벌레가 튀어나오는 악몽에 시달렸다. 시골에서 상경해 자연물이 친숙한 엄마와 달리 나는 도시에서 살았던 경험이 전부라 자연친화적이지 못하다. 때문에 자연의 푸르름을 좋아하지만 벌레가 무서워 가까이할 수 없는 모순이 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엄마는 제 뱃속에서 나온 자식과 왜 이렇게 다른 게 많은지 모르겠다며 때때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엄마는 요리를 업으로 삼고 있지만 나는 요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음식이란 전기밥솥이 지어주는 밥과 라면 정도다. 요리를 했다고 보기 어려울 만한 수준인데다가 시도조차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 보통은 사먹지만 반드시 음식을 해 먹어야만 하는 환경에서는 꼼짝없이 굶어야 한다. 엄마 품에서 멀어지면 필히 배가 고파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반면 엄마는 조리 관련 자격증을 섭렵했다.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등 다양한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뒤늦게 요리를 업으로 삼기를 결심하신 이후 열심히 노력했던 결과다.
대신 엄마는 컴퓨터와 전자기기에는 문외한이지만 나는 전자기기 사용이 능숙하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매만지며 지내왔고 지금까지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눈부신 속도로 발전할 때에 한창 배우는 학생이었던 나는 사용법을 익힐 기회가 충분히 있었던 반면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컴퓨터와 무관한 일을 해 온 엄마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다. 영화를 예매하는 일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쇼핑을 하는 것도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겨우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기술이 그와 함께 성장하지 못한 세대에게 그닥 친절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이긴 하나 그 세대의 어른들 역시 새로운 걸 배울 의지가 적다는 것도 문제다.
우리 모녀의 서로의 다른 점은 비단 사소한 습관 그리고 취향만 다른 것에 그치지 않았다.
MBTI 검사결과에서도 성격상 차이점이 확연히 구별됐다. 엄마는 객관적인 상황 판단을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괜한 호들갑을 떨지도 않으며 정에 이끌려 이성적 판단이 마비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남을 쉽게 신뢰하지도 않았고 철저히 검증을 거쳐 확신에 이른 것만을 진실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이미 결심한 사항에 대해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않는 이상 엄마를 설득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엄마는 세심하게 남의 기분을 살피거나 상황에 맞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는 젬병이었다. 반면 나에게는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선천적인 재능이 있었다. 나는 타인의 기분에 쉽게 동화되었기 때문에 마음 먹기에 따라 다른 이들이 원하는 조건에 맞추는 게 쉬웠다. 사실 상황에 맞춰 나를 희생해서라도 다수를 배려하고자 한건 내겐 학습된 지능이라기보다 본능적인 행동에 가까웠다. 물론 그런 성격 탓에 뜻하지 않게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성격이 더 낫다고 함부로 얘기할 순 없지만 엄마와 나는 서로가 원하는 게 너무 달랐던 탓에 의사소통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예컨대 힘들다는 하소연을 늘어놓고 싶어 엄마에게 고충을 털어놓으면 엄마는 듣는 내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침을 가하거나 해결방법을 찾는 데 관심을 가졌다. 물론 들어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될 말이지만 뼈 아픈 한 마디 한 마디가 듣는 나를 무척 괴롭게 만들었다. 차라리 이야기하느니만 못한 경우가 많았다. 내 잘못에 대한 타박을 듣고자 한 게 아닌데 무심한 엄마는 매우 감성적인 딸의 심정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하지만 "네 기분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며 오히려 대화 중 엄마의 태도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나를 나무라기 일쑤였다.
보고 듣고 느끼는 바에 예민했던 나는 그런 엄마를 종종 미워했다.
좀 더 따뜻한 말을, 괜찮다는 위로를 듣고 싶었는데 엄마는 제 딸이 자신만큼이나 단단하게 험난한 세상에서 버티는 법을 익히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밖에서 겪은 일들로 인해 무너질 만큼 여린 아이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힘들다 소리가 쉽게 나오는 딸 아이가 걱정됐던 것 같다. 때문에 엄마와 감정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서운할 일이 많이 생겼다. 한 없이 품 안에서 보호하기보다 세상의 거친 면을 견딜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게 엄마에겐 더 중요한 일이었다. 다행히 그의 바람대로 그런 가르침 아래서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만큼 똑부러지게 성장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다.
앞으로도 엄마와 나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다른 시각으로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시선을 마주치기엔 서로가 너무 다른 양극단에 서 있다. 그런 다른 점때문에 때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계속해서 생기겠지만 그 사실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다만 상처주지 않기 위해 또 최대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갈 것이다.
물론 엄마는 자매인듯 친구인듯 가까운 남들과 달리 가깝지 못한 우리 모녀사이를 아쉽게 생각하지만, 무작정 엄마 장단에 맞추기엔 내가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언젠가 서로 사이에 놓인 무수한 장벽들이 지금보다 낮아지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주지 않을까. 지금은 잔뜩 벼려진 칼날이 언젠간 무뎌지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