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말에 베인 하루

평온했던 내면을 일렁이게 만든 어느 다급한 목소리

by 흔한여신
오전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사업장에서 지원제도에 대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알려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었다. 많은 경우 문의 전화가 오면 A부터Z까지 일일이 설명해주랴 바쁘다. 하지만 내게 전화를 건 이는 제법 나름대로 분석하고 연구한 티가 났다. 그래서 일까 왠지 모르게 거만함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는 차분히 내 설명을 듣지 않고 끊임없이 제 말 하기에 바빴다. 예컨대 자신이 이해한 바가 맞는지 묻는가 하면 핵심 요점만 짚어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답변을 하다보니 점차 상대방이 내는 문제를 내가 맞추는 꼴이 되어 갔다. 이해를 돕고자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설명하려 들면 대번 필요없다며 말을 끊었다. 필요한 정보가 아닌 내용은 과감하게 '됐다'라며 궁금한 다음 내용을 물었다. 쏘아 붙이는 듯한 어투에 불쾌한 감정이 들었지만 나는 침착하게 그녀가 묻는 말에 답을 해주었다. 글자를 짚어가며 최대한 상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이 송화자는 이미 어제 전화로 한 번 문의한 적이 있는 사업장 관계자였다. 전날에도 같은 내용으로 같은 질문했는데, 법령 해석을 특히 어려워 해 내용을 여러 번 짚어주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혼자서 법령을 이해해보려 한 게 영 진전이 없었나보다. 결국 그녀는 오늘 다시 전화를 걸어 어제 설명을 들은 법 조항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문의했던 내용을 되물었던 것이다. 여전히 말투엔 성급함이 가득했다.


그녀는 시종일관 자신이 일반인이기 때문에 법 조문 해석이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어주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녀는 내가 하는 말에 이미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는 말을 찬찬히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설명 도중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급기야 이런 말을 던졌다. 그녀의 그 한 마디에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내용을 좀 잘 아는 다른 사람은 없나요?
좀 바꿔주세요.


짜증난다는 투로 거침없이 내뱉은 말. 기껏 10분 가까이 수화기를 들고 열심히 설명을 했건만, 그런 보람도 없이 끝나버린 대화에 나는 맥이 빠져버렸다. 참 오랜 만에 들은 정말 무례한 한 마디였다. 당신의 설명으론 역부족이니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아달라는 요구사항. 그녀는 자신의 당연한 권리인냥 당당한 어조로 말했다.


짧게나마 그녀를 위해 쏟아부었던 내 노력이 한 순간에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었다. 이보다 더한 굴욕이 있을까. 다른 한편으로 그녀는 방금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알고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 성에 차지 않는다고 면전에 대고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이라고 외치는 그의 행동에 기가 막혔다. 더 이상 수화기를 붙들고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던 나는 뭐였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 들었기 때문이다.


출처 freepik


사실 그녀의 무례한 연락은 처음이 아니었다.


우연히 지난 번 문의전화도 내가 받았었다. 그 때도 실컷 궁금한 내용을 묻더니 대답이나 설명이 영 시원찮다 여긴 것인지 몇 분 동안 수화기를 붙잡고 있었던 내게 무시하는 투로 이렇게 말을 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마지막 한 마디에 벙쪄 있다가 부득부득 이를 갈았던 게 기억난다.


아, 그냥. 제가 알아서 알아보고 할 게요. (뚝)

물론 설명이 이해하기에 부적절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이라도 설명이나 응대가 제 맘에 들지 않으면 제멋대로 굴어도 괜찮다는 황당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문득 똑같은 일을 그녀가 당한다고 해도 과연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치민 탓에 전화를 끊고 나서도 불쾌한 감정이 오래 남아 있었다. 그렇게 또 한 겹 얼굴 모르는 이에 대한 편견이 쌓였다. 다음엔 이런 무례한 전화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말리라 다짐하며.




완벽하지 않은 우리기에, 상대를 배려하며 사는 게 최선이다.


나도 그리고 상대도 완벽하지 않다. 어떤 때는 내가, 다른 때는 상대가 실수하거나 성급하게 굴 수도 있다. 서로의 퍼즐 조각이 꼭 들어맞는 게 아니기에 우연히 잘 화합하기도 하지만 때론 예상치 못한 파국을 맞기도 한다. 모난 구석도 제각각이라 서로의 온전한 면에 괜히 상처를 주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고 눈 감아줄 '관용'이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에게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가 있다.


또 잘 모르는 사이일수록, 비대면으로 주고받는 연락일수록 그에 걸맞는 예의를 차리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불필요한 오해가 불거지지 않고 잘못된 편견이 생기지 않는다. 제 처신부터 잘 해야 남들과 잘 지낼 수 있고 그래야 스스로 평온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건 불변의 진리다. 그런데 요즘엔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야 할 아이들조차 그런 교육이 결여된 환경에서 자라는 것 같다.


전화를 건 그녀에게 결핍되어 있었던 상대에 대한 배려심은 과연 시간이 흐른 뒤에 그의 마음 속에서 더 자라나 있을까? 아마 그녀는 다른 이들과도 상처를 주고 받고 살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아마 가진 말재주가 썩 도움이 되지 않아, 그다지 행복하고 순탄하지만은 않은 인생길을 걷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주 사소한 언행이 불러온 씁쓸한 결말.

날카로운 말에 베여 내 마음도 잔뜩 거칠어졌던 하루였다.


출처 My Friend Hyos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