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늪에서 빠져나와 '관계의 거리두기'
그를 알게 된 건 작년 이맘 때였다.
그 때도 난 주말에 놀면 뭐하나, 푼돈이라도 벌어야지 싶어 시험감독을 자처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가 다 되도록 일해야하는 강행군이었지만 하루쯤은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해 자원했다. 그렇게 나는 같은 시험장을 감독하는 파트너로 그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한 명은 쉼 없이 수다를 떨고 한 명은 별 말 없이 묵묵히 들어주는 서로 다른 성향이었지만 나의 강렬한 호기심 덕분에 그럭저럭 옅은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일 년에 몇 차례 회사에서 '알바 찬스'가 주어진다. 보통 공무원이라는 신분 탓에 자유로운 소득활동이 허락되지 않는데, 시험감독관으로 간간이 용돈 벌이할 기회가 있다. 공무원 임용 필기시험과 우리 부 산하기관인 산업인력공단 주관의 각종 시험들이 그 대상이다. 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하는 시험의 경우 대부분의 자격시험 응시 인원이 많지 않아 인력 지원을 요하는 경우가 한정적이다. 하지만 공무원 임용 시험의 경우 전국 단위로 치러지고 응시 인원이 많은만큼 인사혁신처의 인력만으로 시험장을 운영하기 어려워 항상 여러 부처에서 인력을 지원받는다.
시험 감독관 역할에 자원한 이도 있지만 부처마다 할당된 인원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차출된 이도 있다. 공평하게 순번제에 따라 제 순서가 되어 나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막내라는 이유로 혹은 사다리타기 등 게임에서 벌칙에 당첨돼 뜻하지 않게 나온 사람도 있다. 또한 고사장에 온 이유만큼이나 각자의 출신 부처도 나이도 다양하다. 그래서 생애 처음 감독관을 해 보는 이도 있고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해 봤기 때문에 설명 없이도 능숙한 사람도 있다. 그렇게 각자 흩어져 근무하던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한데 모였다. 한 때 자신도 치열하게 공부한 끝에 정답을 풀어나갔던 그 시험장에.
감독관을 지원할 수 있게 된 이래로
나는 매년 임용시험 때 감독관 역할을 자원했다.
처음엔 내가 수험생이 아니라 감독관이 되어본다는 설렘으로 시험장에 갔다. 한편 합격 선배로서 준비생들을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처음엔 공시생에서 벗어난 지 몇 달 만에 입장이 뒤바뀌어 감독관을 하고 있으니 감개무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응시자로 책상에 앉아 있을 때 감독관들을 보면 긴장하곤 했던 것과 달리 막상 내가 감독관을 하고 있으니 별 생각이 들진 않았다. 시험은 시험일 뿐이고, 나는 알바를 하러 온 입장에서 빠른 귀가만을 소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또한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을 낱낱이 보고 나니 모든 게 일에 불과하다 여겨졌다. 내 현위치에 따라 보고 듣는게 다른만큼 생각도 확연히 달라짐을 느꼈다.
언뜻 쉬워보이지만 살아있는 석고상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공무원 임용시험 중에 가장 감독하기 힘들기로 악명이 높은 건 5급 공채시험 즉 '행시'다. 이유는 단순히 시험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5급 공채의 1차시험인 PSAT은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10분에 끝난다. 수능보다는 짧지만 다른 시험과 비교해 봤을 때 수능과 맞먹는 수준이다. 하루종일 시험을 봐야해서 중간에 점심시간도 별도로 주어진다.
물론 문제를 푸는 수험생들이 가장 긴장되고 힘들겠지만 시험의 당사자가 아닌 감독관들에게도 그 긴 시간을 버티는 것이 고문이나 다름없다. 처음엔 감독관으로서 부정행위를 예방하고 수험생의 민원을 재빠르게 해결하겠다는 각오를 다지지만, 얼마 못 가 숨소리만 들리는 고사장 분위기와 함께 사라진다. 남은 시간 동안 제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시계의 분침을 노려보며 시간이 어서 가기만을 바라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들 지원을 꺼리는 시험이기에 유독 타의로 끌려 나온 사람이 많은 편이다. 대신 일한 시간이 긴만큼 수당이 조금 더 붙는다. 하지만 하루종일 지루함과 고단함을 버텨야하는 데 비하면 아주 큰 액수는 아니다. 그래도 하루를 버티고 난 뒤 직접 내 손에 쥐어지는 보상이 뿌듯했던 기억이 남아 계속해서 시험감독관을 해오고 있었다.
작년에도 그런저런 이유로 각 부처에서 지원나온 사람들과 한 데 앉아 있었다. 나는 어느 고사장의 감독관으로 업무를 배정받았다. 그런데 나의 파트너는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겠거니 하는 예상을 깨고 매우 젊은 남자였다. 감독 경험이 전혀 없는 듯 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혹시 시험감독 해보신 적 있어요?"
"아뇨. 이번이 처음이에요."
말을 걸어보니 또래라는 생각이 들어 문득 반가웠다. 신나게 자기소개를 하고 상대의 이것저것을 캐물었다. 알고보니 나와 한 살 차이의 갓 임용된 신규 공무원이었다. 출근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부서 내 갈 사람이 없어 본인이 오게 된거라고 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타 부처와 협력할 일도 없는 지라 나는 다른 부처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 자체에 크게 흥분했다. 그래서 상대가 관심이 있든 없든 어떤 성향이든 상관하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댔다. 다행히 그는 약간 무심한 듯 했지만 그럭저럭 내 말에 반응을 해주었다.
한창 이야기를 더 즐겁게 꽃 피울 무렵 시험감독관으로서의 일과가 끝나 곧 헤어짐을 앞두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고사장의 감독관들과도 각자 자기 부처에 대해 이야기하며 신나게 떠들고 있었는데 막상 뒤돌아서려니 아쉬웠다. 결국 사람들과 서로 명함이나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당시 내가 한껏 흥에 차올랐던 탓에 앞으로의 관계에도 분명 진전이 있을 거란 헛된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그 작별 인사가 실상 마지막 인사였다. 어떠한 접점도 없던 서로는 잠깐의 좋았던 파트너십을 기억하며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연락을 할 명분도 친분을 쌓아갈 이유도 없이 그저 시간이 흘렀다. 연락은커녕 얼굴마저 가물가물해졌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믿었다.
어떤 관계이든 서로 다른 우주를 가진 자들이 서로 만나고 알게 된다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 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굴곡과 지름길을 만나기도 하는 만큼 예상치 못한 인연이 삶의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나는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잘 유지해 나가려는 의지가 강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했었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상대와의 관계도 즐겁게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 충분히 관심 가지려 최선을 다했다. 생일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요, 상대가 가볍게 던진 이야기도 기억해 두었다가 챙겨주는 등 상대를 감동시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달리 상대의 마음은 나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아니었다. 관계를 더 발전시키고 싶다는 욕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실망의 크기도 커져갔다. 내가 상대를 신경쓰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전보다 더 관계가 깊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은 내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 또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헤어진 뒤엔 반드시 전과 같으리라는 혹은 만나리라는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컸다. 여전히 '너'라는 존재를 만남으로써 내가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점점 내 헌신과 애정의 크기가 더 커서 일방통행으로 치우쳐진 관계가 많아지자 내 정신건강에도 적신호가 들어왔다.
결국 지쳐 나가 떨어진 건 내 자신이었다.
안녕. 나는 너를 더 이상 붙잡지 않아.
첫 만남으로부터 6개월 여의 시간이 흐른 작년 여름 쯤. 나는 한 때 파트너였던 그를 다시 마주쳤다. 그것도 또 다른 시험장에서 말이다. 각자 마스크를 쓴 채로 스치듯 지나쳤지만 여러 번 마주치면서 결국 얼굴을 알아 봐 인사를 했다. 시험장 위치가 달라졌고 다른 시험이었지만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났다. 몇 개월 만에 다시 같은 고사장에서 마주치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그 사이에 대화가 오간 게 없어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처음엔 낯선 이에 대한 호기심과 호기심이 이끈 관심으로 붙임성 있게 다가갔지만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닌 어색한 거리감 때문에 인사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어색하게 지나쳤다.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리고 다시 6개월이 또 지난 오늘. 오랜 만에 또 다시, 그를 마주쳤다. 또 다시 다른 시험장에서 같은 이를 마주쳤다. 마스크로 얼굴이 반쯤 가려졌지만 이미 눈에 익은 얼굴이라 잊히질 않아 결국 눈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내 못 본 척 스쳐지나갔다. 아는 체하는 등의 의사소통을 일절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이 마지막이라 앞으론 절대 볼 일이 없을 거다 생각하며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소름돋는 우연이라며 의미부여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언제나 운명과 희망을 자동반사적으로 생각하고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예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지난 1년간 애써 온 끝에 내린 결론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상대가 그럴 의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노력해서 관계를 유지하거나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버렸다. 과연 남에게 마음을 한껏 쏟아붓고 난 뒤 내 마음이 괜찮은가를 되물었을 때 나는 '아니오'였기 때문이다. 사실 '기브 앤 테이크'를 원한게 아니라 내 마음을 좀 더 알아주길 바랐지만, 상대에게 있어서의 나의 존재감이나 영향력의 크기는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될 뿐. 노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내 노력이 헛수고일 때가 많다. 결국 괜히 애쓰다가 내가 닳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나는 오감이 예민하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 탓에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에도 의미심장한 뜻이 있을 것이라며 여러 차례 곱씹어보곤 했다. 불필요한 긴장 속에 스스로를 몰아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1년 간 나는 그런 '착각의 늪'에서 서서히 빠져나왔다. 앞으로도 스쳐 지나가는 사이들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그저 흘러가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살아갈 예정이다. 그럼으로써 내 마음의 안식을 유지하고 싶다.
결국 내가 행복해야
내 삶이 의미있는 생각과 경험을 발판으로
더 즐겁게 변주되기 때문에.
추신: 3번이나 만났지만 여전히 인사 첫 마디 건네는 게 어려운 당신을 더 이상 만나는 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