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걸음마 pt.3

나의 노동 연대기: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by 흔한여신

새로 옮긴 웨딩홀은 내가 거주하는 지역구 내 위치한 곳이었다. 방송가와 금융권 기업들 사이에 위치해 있어 화려한 상업시설을 자랑하는 여의도와 달리 거주지가 밀집한 곳에 자리한 오래된 예식장은 어딘가 모르게 촌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재정적 열세에 놓여 있어 인건비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곳이었다. 때문에 업무가 세분화되어 있지 않았고 한 사람이 해내야 할 몫이 더 컸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신참에게도 다양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반드시 좋은 건 아니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전개


드디어 옮기고 나서 ‘예도’ 포지션을 하게 됐다. 맡은 역할은 축포를 쏘는 일과 신부 입장시에 하트 모양의 장식물을 들고 있는 것이었다. 여의도에서 비해 예식 건수가 많지 않아 벌어들이는 수입은 좀 줄었지만 일이 편안해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2주 정도 예도 포지션에 있으면서 웨딩홀을 옮기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음 주부턴 다른 포지션을 해줘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로 웨딩홀 알바를 그만두기까지 나는 홀 진행 전체를 책임지는 부매니저급의 포지션, ‘스캔’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예도'하던 시절


스캐너도 아니고 왜 역할 이름을 ‘스캔’이라고 명명하게 됐는지 유래는 모른다. 스캔의 역할은 쉽게 말하자면 식의 전반적인 진행을 맡은 책임자다. 내가 배정받은 홀의 예식은 다 내 책임 하에 진행된다. 신경써야할 게 한둘이 아닌게, 기본적으로 조명과 음향을 컨트롤할 뿐만 아니라 챙겨야 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미 십여 년 전의 일이지만 워낙 신경썼던 하루하루라 아직도 준비과정이 눈에 선하다. 당시 내가 했던 일들을 예식 진행 순서에 따라 아래와 같이 나열할 수 있다.


1. 오자마자 예열을 위해 조명 켜 두기

2. 오늘의 예식 스케줄표 외우기

(신랑신부 이름과 혼주 이름 그리고 진행시간)

3. 그날 예식에 쓰일 물품들 준비

(창고에서 챙겨온 뒤에 예식 순서대로 미리 정렬)

부조대 - 방명록, 수성펜, 축의금 봉투, 장갑

코사지와 장갑(신랑신부 부모님, 신랑),

성혼선언문, 주례 선생님용 수성펜

웨딩 액자를 세워놓을 이젤

*신부가 장갑을 끼는 경우 신부의 장갑

*케이크 커팅이 있는 경우 케이크 챙기기

4. 예식장 내부 간단히 청소 후 (특히 버진로드)

촛불 점화기 등 예식에 쓰일 물품 상태 확인

(초 길이와 상태에 따라 오래된 물품이나 불량품 교체)

5. 웨딩사진을 틀어놓을 스크린 준비,

음향과 조명 정상 작동하는지 여부 마지막 테스트6. 예식 진행 직전 사회자, 주례 그리고 축가팀 등과

오늘 식 진행 안내 및 특이사항 있는 경우 메모

(축가나 축무 등 이벤트가 있는 경우 mr 틀 준비)

6. 예식 시작 후 소리와 조명 컨트롤

(타 포지션과 긴밀하게 협조해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음)

7. 전반적인 식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특이사항이나 문제 발생에 대처 및 필요시 예약실에 연락

8. 식 종료 직후 주례 마이크 off, 화촉점화 초 끄기

9. 사진촬영 안내 방송

10. 중간중간 물품 정리 등을 하며 다음 예식 준비


*매 예식마다 5~10 과정 반복



이 복잡한 과정을 홀로 감당해야했던 이유는 여유있는 인력활용이 여의치 않은 예식장이었기 때문이다. 예산이 넉넉한 웨딩홀의 경우 스캔 포지션에 적어도 2~3명이 배치된다. 하지만 화려하고 트렌디한 홀을 내세운 신식 예식장들에 비해 오래된 예식장은 선호도가 떨어져 예식 진행 단가가 낮았고 그만큼 고용한 인력에 돌아갈 몫 또한 많지 않았다. 그리고 스캔 포지션 자체가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자리라 이에 부담을 느낀 알바생들의 이탈이 잦았다. 매주 신참들 교육까지 떠맡았지만 다들 그날로 관두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 홀로 저 많은 일들을 감당해야했다.


하루 정도 보고 배우라고 하더니 곧장 다음날부터 예식의 처음과 끝을 오롯이 책임지게 되었다.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기엔 과부하 걸리기 좋은 스케줄이었지만 각 예식에서 최대한 실수 없이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매 예식마다 1시간의 홀 이용 시간이 배정되어 있고 시간 내 잘 마무리하기 위해 나는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다행히 업무 난도가 하루아침에 치솟은만큼 악바리 근성이 강하게 발동되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처음엔 멋모르고 했다. 두려움이 앞섰더라면 하루이틀도 안되어 관뒀을텐데 나는 생각보다 강심장이었다. 물론 처음엔 실수를 연발했고 정말 실시간으로 쌍욕을 들은 적도 있었다. 신랑신부 행진에 엉뚱한 음악이 나오기도 했고 신부의 걸음속도에 맞추지 못한 조명 탓에 신부가 반은 어둠 속에 걸어온 적도 있었으며 주례자 마이크가 꺼져 있지 않아 사진촬영 중 끼이익 소리가 요란하게 나기도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 나는 온갖 질책에도 크게 부담을 느끼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도리어 다음엔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자잘한 실수도 많았고 제법 사고쳤다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가장 욕을 많이 먹었던 건 사진촬영 안내 방송을 할 때였다. 방송부 경력도 없고 갓 고등학교 졸업한지 얼마 안되어 남들 앞에서 말해본 경력이 거의 전무했던 탓에 안내가 미숙했다. 쓰여진 멘트를 그대로 읽는 것이었음에도 글자를 잘못 읽었고 동화구연하는 듯한 어린아이 목소리 톤이 나왔다. 그런데 매번 목소리가 그게 뭐냐는 지적을 한 달 동안 받으니 저절로 목소리 톤이 아나운서처럼 교정되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업무에 배치된지 한 달 뒤쯤부턴 버벅거리지 않고 완벽하게 방송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거의 실수 없이 예식을 치러냈다.


그렇게 제법 사회 초년생의 티는 벗었다.


3월부터 이어 온 스캔 포지션을 마지막으로 나는 6월쯤 일을 그만두었다. 일은 적성에 잘 맞았으나 새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사실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의 불화도 한 몫을 했다. 처음엔 실수연발이던 내가 점차 발전해가는 모습에 무심하게 칭찬을 던져주었던 웨딩홀 직원들과는 점점 사이가 좋아졌지만, 같은 이벤트 업체에 소속된 동료들은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기는커녕 제 감정에 취해 싸우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등 갈등을 빚었다. 그런 불협화음을 참다 못해 그만둘 결심을 했고 생각보다 빨리 새로운 직장을 구하게 되면서 웨딩홀과의 짧은 인연이 끝났다.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나 부담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완벽할 것을 기대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내겐 일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짧은 시간 내 많은 업무를 순서에 맞게 허둥지둥대지 않고 처리하는 법을 수도 없이 연습한 덕분에 지금도 사고가 터졌을 때 크게 당황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나의 미숙함으로 인해 발생한 실수나 잘못에도 그리고 그에 따른 질책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을 향해 나아간다. 버티다 보면 다음에 내디딘 걸음은 분명 전과는 다른 모양일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욕 먹으면서 깨우쳤던 아나운서 톤의 발성은 현재까지도 남들이 우와~하고 감탄할 만큼 잘 유지하며 필요한 순간에 잘 써먹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 뒤로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으면서 더욱 말을 많이 하게 됐고 그렇게 말하기 연습도 오래하다보니 제법 상황에 맞는 말재간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건 첫 시작은 미약했지만 나날이 창대해져 간 나의 발자취로 남아있다.


스캔 포지션의 나와 동갑내기 친구였던 동료



다만 한가지 안 좋은 점은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너무 일찍 깨졌다는 것이다. 아직도 결혼식장에 가면 결혼하는 내 지인뿐만 아니라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인다. 예식이 진행되는 순간을 로맨틱하게 받아들이기엔 내겐 모든 순간이 대체로 일이었다. 완벽한 예식 진행을 위해 늘 신경을 곤두세웠던 직업병 탓이다. 또 뷔페 음식 또한 알바하는 동안 질리도록 먹었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세월이 지나고 더 좋은 예식장을 다녀봐도 맛이 거기서 거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