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집에서 마음 놓고 즐긴 혼자만의 식사시간
엄마와 싸웠다.
어릴 땐 그런 날이면 홀로 방 안에 틀어박혀 끼니를 굶었다. 나만 열외가 된 식사자리. 나머지 가족들이 모여서 밥 먹는 소리를 들으며 퉁명스러워진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하지만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한 뒤로 결코 굶는 일은 없었다. 한창 먹는 욕심이 많았던 이십대 초반. 허기진 배를 채울 만한 밥집이 거리에 무궁무진했다. 오늘도 엄마와 다툰 바람에 같이 식사하기 애매해졌다. 다툰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아마도 이 세상 모든 부모 자식 간의 공통된 싸움 주제일 것이다. '내 방에 왜 함부로 들어오느냐'는 것은.
샤워를 한 뒤 방에서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간식으로 먹으라고 사과를 건네주러 온 것이다. 놀란 내가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그 상황을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런 엄마의 반응에 기가 막혔던 나는 다 큰 성인들에겐 자신만의 사생활을 침해받지 않을 공간이 필요하다며 열변을 토했다. 조심스럽게 들어 와달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 말이 엄마에겐 와닿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엄마는 내 행동이 너무 공격적이었다며 부모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 같다고 받아쳤다. 서로 서운한 지점이 달랐고 각자의 입장만 내세웠다.
결국 나도 엄마도 화가 폭발해버렸다.
바깥엔 아직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고 하늘은 짙푸른 빛으로 변해있었다.
가끔 이런저런 사유로 혼자 밥을 챙겨먹어야 할 때면 나는 동네에 있는 어느 초밥집엘 간다. 우연히 방문해 먹어본 뒤로 그 맛에 반해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면 방문하는 집이다. 신선한 재료와 따뜻한 밥알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맛과 조용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가게. 딱딱한 밥알갱이를 씹어야 하는 만원짜리 마트 초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다. 재방문하는 경우가 드문 내게 몇 안되는 단골집이다. 그 만큼 돌아서면 생각나고 문득 그리워지는 맛이다.
그렇다고 아주 자주 간 건 아니고 한 달에 한 두번 정도 갔을 뿐인데 어느 새 주인장이 얼굴을 알아 본다. 매번 혼자 오는 여자 손님이라 눈에 띄는 것일 테다. 하지만 왠지 부끄러워 적극적으로 말을 걸거나 인사를 먼저 건네지 않았다. 다만 기분 좋은 그의 환대에 조용히 웃음을 삼키곤 했다.
오늘도 그렇게 그 초밥집에 들렀다.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들어선 가게. 아직 손님이 없어 가게 안은 무척 한산했다. 저녁장사에 내가 첫 손님이었던 것이다. 나이가 지긋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창가자리에 앉은 나는 매번 먹었던 모듬초밥 세트를 또 주문했다. 막 마스크를 벗고 앞에 놓인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려는데 어김없이 나를 알아본 주인장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 머리 자르셨네요?"
"..네.."
일할 때 나오는 우렁차고 밝은 목소리는 어디로 가고, 나는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을 했다. 나조차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지만, 일터 밖의 세상 속에서 나는 내향형의 모습이 강하다. 대체로 밖에서 만나는 이들이 내가 좀처럼 적극적인 면이 없고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양손에 따뜻한 물을 쥐고 잠시 창 밖을 바라보았다. 가게 안에는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따뜻한 음악소리와 향긋한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맛있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몇 시간 전 엄마와 거칠게 말싸움을 벌이느라 일렁였던 마음 속 불꽃이 한결 잠잠해지는 걸 느꼈다.
집에서 먹는 밥이었다면 왁자지껄함이 배경이었을거다. 하지만 오늘은 조용함과 아늑함이 감도는 식사시간이었다. 나는 오랜 만에 TV소리 대신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초밥의 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고 먹는 데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마음이 무척 편안해지는 걸 느끼며 느긋하게 식사를 마쳤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듣기 좋지만, 항상 TV소리와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느라 정신없이 흘러가곤 했던 식사자리에서 오랜 만에 벗어나 한결 기분이 좋았다. 혼자였지만, 맛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결코 외롭지 않았던 한 끼 식사.
불안했던 마음까지 잠재운 따뜻한 시간이었다.
*대문사진 출처: https://creatoracademy.youtube.com/page/course/music-partners?hl=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