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한여신 Apr 04. 2021

꽃길

걱정을 헤아리는 밤의 이야기

봄비가 내렸다.


  하루종일 어두운 하늘에서 빗방울이 쏟아졌다. 떨어지는 빗방울에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가냘픈 꽃잎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가지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꽃잎이 어느새 길바닥을 뒤덮었다. 걸을 때마다 분홍색 꽃잎이 밟혔다. 꽃으로 된 길을 걸으니 이게 바로 ‘꽃길’인가 생각하니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늘상 바라던 꽃길을 얼떨결에 걷고 있었다. 내리는 비에 떨어진 낙화(落花)로 덮인 길을 걸으며 나는 발 아래 새로 그려진 아름다움에 한껏 취했다. 눈길을 걷는마냥 꽃잎이 수놓아진 길을 걸으며 포근한 계절의 정취를 만끽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기에 참 좋은 하루였다. 한동안 울퉁불퉁 구겨진 마음을 아무리 펴려고 해도 좀처럼 그 자국이 사라지지가 않았다. 세상에 미운 것도 참 많고 아쉬운 것도 참 많아서 이래저래 입을 삐죽이기 바빴다. 하지만 마음에 든 감기는 좀처럼 낫지를 않고 있었다. 힘들다는 생각마저 벅찰만큼 제풀에 지친 나는 다음 날 하루는 부디 우울하지 않기를 바랐다. 세차게 내리는 비와 함께 걱정과 우울도 씻겨내려갔으면 했다. 행복과 잠시 멀어졌을 때 더 간절히 행복해지기를 빌었다. 하지만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행운이 언제나 내 삶에 찾아오는 게 아니지만 행복만큼은 스스로가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하니까. 놓치지 않는 법을 잘 터득해서 손 안에 단단히 쥐고 있으려 했다. 그러다가 그만 손아귀에 힘이 풀려 스르륵 놓치기도 하고 너무 꼭 쥐고 있던 탓에 온통 손바닥에 생채기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행복하기 위해 애써왔다. 잔뜩 휘청거리면서도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서툴고 불안한 발걸음이었지만 힘차게 내디뎠던 발자국이 귀엽게 남아있는 나의 이십대. 작은 목표들에 매달려, 순간의 이끌림에 따라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photo by. Jundori


비가 오기 전 하늘은 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포근해진 날씨 덕분에 옷깃을 꽁꽁 여미지 않아도 춥지 않은 날씨였다. 벌써 여름이 왔나 싶을 정도로 따뜻한 기온에 일찌감치 꽃이 피어 세상이 알록달록해진데다가 부드러운 바람의 촉감 덕분에 묘하게 기분 좋은 나날이었다. 쏟아지는 햇살 아래 눈을 감고 있으면 즐거웠던 한 때의 기억이 떠올랐고 저 멀리 초록빛으로 물드는 들판을 바라보면 왠지 모를 설렘에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세상이 온통 형형색색의 옷을 입는 시기. 무언갈 탓하며 우울해 있기엔 아까울만큼 아름다운 계절을 맞았다.


  어떻게 하면 부자되려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에 잠기기도 좋은 날씨였고 마침내 새로운 결심을 하기에도 참 좋은 날씨였다. 온갖 생각들이 머릿 속에서 이리저리 싸우고 부딪힌 끝에 마음을 다잡게 된 순간이 찾아왔다. 덕분에 끈덕지게 나를 괴롭히던 불행한 생각들과 조금은 멀어지게 됐다. ‘남들보다 잘 나길’ 바라온 욕심을 내려두고 나만의 행복이 뭘까에 대해 바른 답을 찾기로 했다. 서른 살의 봄은 스무 살 때의 봄처럼 우울하지만은 않아야하기에, 성장한 나는 더 나다운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하기에.



행복이란 뭘까 하는 고민은 평생토록 풀어야하는 숙제같은 거다.


  스무살의 나는 대학을 잘가고 취업을 잘하는게 최고의 행복으로 생각했다. 그 뒤의 인생은 어떻게든 풀릴 거라고 얼버무리듯 생각했다. 그런데 서른이 되고보니 어떻게든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도 괜찮지만은 않았다. 하고자 한 일들이 잘 풀리면 행복해질 일만 남은 줄만 알았는데 또다른 고민들이 내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하나의 선택지에 답을 내고 나면 또다른 선택지가 주어지고, 그렇게 삶은 반복해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했다. 오답인지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선택지들을 놓고 머리 아프게 고민하곤 했지만 애쓴 게 무색하게 항상 또 다른 어려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들과 비슷해진다면 나도 걱정없이 살 수 있게 될까. 그럭저럭 돈 벌며 사는 데에 적당히 만족할 줄 알아야 하는걸까. 두루뭉술하게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던 모든 의문들은 아직도 풀지 못한 난제다. 그렇다라고 확신할 수 없는것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다면 어떤 게 답일지 골라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나만이 겪는 고민이 아닐까 생각할 즈음 알게 됐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서른 살에 겪는 성장통이라는 것을. 아픔과 기쁨으로 얼룩진 삶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나를 다시 만들어가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또 다시 내게 주어진 숙제라는 것을.


흐릿했던 시야가 다시 맑아졌다.


  제법 맑아진 마음으로 나는 흐린 날의 풍경을 한없이 눈에 담았다. 어두운 하늘 탓에 세상이 회색빛으로 물들어버렸지만 모든  전보다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허공에 팔을 허우적대다가 안경을  것처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바깥엔 여전히 비가 내렸지만 나는  이상 슬프지 않았다. 삶이 주는 씁쓸함에 짓밟힌듯 아팠던 마음도 어느새 나아져 있었다.  밖에 여전히 수놓아져 있는 꽃길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가지마다 피어날 푸른 이파리를 마음 속에 그리며.


 

photo by. Rojoy




작가의 TMI: 제게 최근에 글 쓰는 것보다 더 흥미롭고 바쁜 일이 생겼습니다. 만약 성공하게 된다면 그에 대해 글을 많이 쓰고 싶은데, 아직은 준비중에 있습니다. 아울러 항상 제 부족한 글을 지켜봐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좋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 모두, 언제나 즐거움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시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