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Knock Knock)

마음을 두드리는 방법

by 흔한여신
어떤 사소함 때문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소함으로 인해 가슴 벅찬 순간이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 서둘러 출근을 해야하는데 좀처럼 발걸음이 떼지지가 않았다. 집을 나서기도 전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컨디션이 안 좋은 것도 아니었고 그저 비가 오는 평범한 하루에 불과했지만 좀처럼 마음이 움직이질 않았다. 어떤 하루가 될까 하는 설렘따위 없이 오늘 하루가 얼마나 별로일까를 걱정하고 있었다. 오늘도 신도림역은 사람들로 붐비겠지, 불쾌한 전화에 신경이 곤두서진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날 긴장하게 했다. 많은 직장인들의 심경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최근 들어 기분이 나아지는 일이 드물어 더욱 힘든 시작이었다.


삶의 활력과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린 요즘은 사소한 것도 견디기가 힘들다. 남들의 웃음소리는 나의 우울한 감정과 대비되어 마치 마른 하늘에 떨어지는 벼락같이 느껴진다. 무료하게 제자리에 앉아있노라면 나보다 더 바쁘게 돌아가는 복사기 소리가 신경 쓰인다. 오늘도 남들 눈을 피해 자리에 조용히 구겨져 앉아 있으려니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가시방석 같은 자리에서 하루를 버티려니 가슴이 묵직한 기분이었다.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 주문을 걸어봐도 별 소용이 없다. 구겨진 마음은 아무리 다림질하려고 해도 그 자국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새도화지만큼 윤이 나지 않아 그만 쓰레기통에 쳐박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역시나 예상대로 출근길은 너무 힘겨웠다.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에서 내게 허락된 여유공간은 많지 않다. 그래도 비좁은 틈 사이에 겨우 몸뚱이를 구겨넣는다. 가뜩이나 공허해진 마음에 서늘함이 더욱 깊이 스며든다. 더욱이 비 때문에 축축해진 공기는 온갖 것들의 냄새를 더 잘 담고 있었다. 하지만 밥벌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불쾌함이라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가진 자본이 없어 나의 노동력만이 유일한 돈벌이 수단이기에 감성에 젖을 겨를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창문 틈새로 비추던 햇빛마저도 자취를 감춘 하늘. 잔뜩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마냥 늘어진 나의 우울의 그림자. 그렇게 시작한 차가운 하루였다.


출처 연합뉴스


사무실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일하기 싫었을 뿐만 아니라 힘든 마음을 숨기고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어야 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몸과 마음을 꽁꽁 숨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릴 때 내가 기대했던 서른의 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어디서든 밝고 당당한 모습으로 제 할 일을 척척 해내고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지금의 나는 한껏 위축되어 있었다. 모든 시도가 두려웠고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는 것도 버거워했다. 무심히 흘러간 시간들 사이에서 나는 내 자신조차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남들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만 홀로 멈춰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 요즘 들어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그래. 잠시 스쳐지나가는 시간이야.’라고 수도 없이 되뇐다. 하지만 긴 터널 안에서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누군가에게라도 따져묻고 싶지만 누구도 답해주지 않아 홀로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출처: Se Ik Jo | Flickr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질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 떠밀어 준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간 순간이다.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


곤두박질치던 감정이 어느 순간 다시 튀어오른다. 언제 기분이 나빴냐는 듯이 다시 용기가 솟아오르고 우울했던 마음도 원래의 평정의 상태를 되찾는다. 그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어느 드라마에 나온 대사처럼 나를 가엾게 여긴 어느 마음 따뜻한 신이 머물다 간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왜 이렇게 인생은 힘든 걸까 하는 생각에 운명도 신도 원망스럽게 느껴지는 게 한 두번이 아닌데, 갑자기 꿈쩍 않던 마음이 허무하게 풀려버리는 그런 신기한 순간을 맞는다.


그런 우연을 거쳐 우리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두 발이 땅바닥에 단단히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만 같아도 사실은 미세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다. 목표지점이든 아니면 새로운 지점을 향하여든 조금씩 운명의 흐름대로 움직여 나가고 있다. 때론 그 이끌림에 따라 도착한 곳이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곳이기도 하고 돌고 돌다가 끝내 가고자 한 길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찌 할 수 없이 받아들여야 되는 것도 있고 의지를 발휘해 좀 더 색다른 경험으로 남길 수 있는 순간들도 있다.


마음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날엔 내 마음을 두드릴 누군가를 내게 떠밀어 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한사코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으리라 했던 다짐과 달리 얼떨결에 다른 이와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러면서 놓쳐버린 이성의 끈을 다시 찾는다. 어쩌다 안 좋은 기분이 든 건지 알 수도 없게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한다. 꽤 괜찮은 하루였다고 자조하면서 말이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하루 하루를 버티다보면 어느 새 지난 날로부터 꽤 많이 걸어나왔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퇴근길 지하철에 다시 올랐고 나는 다시 고요한 침묵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내 왼쪽 편에 빈자리가 생겼다. 하지만 그 앞에는 이미 서 있는 사람이 있었고 나는 당연히 그 사람의 자리이겠거니 하고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빈자리의 주인일 그는 나를 돌아보며 앉으라고 했다. 갑작스럽게 받게 된 남의 호의.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퇴근길 지하철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띄고 있던 그는 연신 내게 손짓을 했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빈자리에 앉아서 가게 되었다. 자신의 몫을 흔쾌히 배려해준 그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그에게서 여유가 넘쳐 흐른다는 게 느껴졌다. 내겐 한 없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었다.


내 자리, 내 몫을 차지하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거나 아등바등하지 않는 그런 여유.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두 다리가 편안한 채로 전철에 탑승해 있는 동안 나는 양보의 의미를 곱씹었다. 그리고 사실 그런 따스한 관심이 고팠던 하루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우 사소하고 큰 의미는 없었을 행동이었지만 굳게 닫힌 마음을 두드린 결코 작지 않은 울림이었다.


나도 언젠가 지친 누군가의 마음을 노크할 수 있게 되기를


Whose Door are You Knocking On? – Teach.Style.Live.Faith (adrimichel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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