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를 잇는 그리움에 대하여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풍경도 결국 바뀐다.
누군가와의 새로운 인연이든 새로운 장소에서의 첫 출발이든, 처음 시작할 때엔 희망과 기대가 잔뜩 배어있기 마련이다. 과정과 결말에 대한 걱정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는 시기. 특히 그 전의 상황이 좋지 못했더라면 새로운 시작이야말로 지금의 나를 구원할 열쇠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예측 가능한 상태에서 예측 불가한 변화를 맞이한다는 것. 즉 변함없는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건 ‘알 수 없는 도전’인 한편 지겨운 현재를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이기도 하다.
물론 해피엔딩의 꽉 닫힌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은 없다. 다만 결말이 지어지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 그래서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앞으로 나의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지금의 실망으로부터 벗어나겠지 하는 기대감, 지지부진하던 현재의 내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리라는 희망,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주는 묘한 긴장과 설렘이 있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백 번의 다른 시작점에 서왔다.
그 때마다 변화가 두렵고 걱정되었다기보단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길 거란 기대감에 기분이 상기되곤 했다. 그 시작이 어떤 결말로 나를 이끌게 될 지에 대해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내게 결말보다 중요한 건 촘촘히 기록될 과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과정을 지나는 중에 겪게 될 희로애락은 전에 없던 경험일 것이란 자체만으로 의미있는 일이었다. 아직 매듭지어진 게 없는 새 시작에 앞서 누군가와 함께 할 앞으로의 시간에 그리고 새롭게 맞이할 환경에 즐거움이 가득할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들뜨곤 했다. 그만큼 ‘전에 없던 낯섦’이 내게 주는 신선함은 달콤했다.
그러함으로 인해 나의 내일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왔고, 낯선 이들에게 거리낌없이 품을 내주었으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즐겼다. 특히 새로운 이에게 다가서는 일은 내게 어렵지 않았다. 누군가를 알아가고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게 즐거웠다. 새로움이 주는 자극이 짜릿했다. 물론 그 때마다 아주 훌륭한 성과를 냈느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낯선 것들에 부딪히는 경험들을 통해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고 적응해왔다. 나만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만들어 나갔다.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나란 존재에 대해 조금이나마 남길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새로운 발걸음이 주는 긴장과 설렘엔 익숙해진 반면 때론 돌아서야 하는 순간은 견딜 수가 없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랬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 지금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시시때때로 변하고 있다.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기를 바라는 이들과도 작별해야하는 순간이 오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익숙한 환경을 떠나야 하는 때가 온다. 영원할 것 같은 모든 것들은 영원한 게 하나도 없다. 제아무리 아쉬움과 서운함에 몸서리를 친대도 결국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는 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애써 눈물을 참아봐도, 울렁이는 마음을 달래봐도 시작과는 달리 행복한 생각이 들지가 않는다. 기억 속에 선명히 남은 추억들이 낱낱이 파고들어 갈가리 찢어진 가슴이 아파 울뿐이다.
좋은 선생님, 좋은 선배 언니, 좋은 친구, 좋은 동료와의 작별이 모두 그랬다. 관계의 수명이 다 하는 때가 분명히 오곤 했다. 시간을 멈추는 법을 알지 못해받아들여야 했던 이별의 순간.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서로의 가야할 길이 달랐기에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으로 남겨야 했고, 각자의 안녕을 기원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달라진 위치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고 그렇게 괜찮은 척 살아갔지만, 마음 속 그리움은 쉽게 달래지는 게 아니었다. 미처 전하지 못한 진심을 홀로 마주하며 슬퍼했고 때때로 생각나는 행복했던 기억들이 날 괴롭게 만들었다.
그런 기억 속에 나는 늘 웃고 있는데 어쩐지 그를 떠올리는 나는 언제나 울고 있었다.
내일이면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거란 분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에 사무치는 밤은 꽤 길었다. 아스라이 먼 곳에서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랬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찬란한 빛이 너무 아름다워 울었다. 태양의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고 달빛마저 자취를 감춘 새까만 밤하늘 아래, 나는 닿을 수 없이 먼 별들을 보며 한 없이 눈물을 삼켰다. 언제 다시 태양이 뜨려나 싶은 마음에 감히 내일이 올 거란 생각조차 들지 않아 절망의 심연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게는 희망이 빛이 뜨겁게 내리쬐는 게 아니라 과거의 찬란함만이 차갑게 반짝이며 굳어버린 가슴 속을 후벼파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연 언제쯤 햇살이 다시 비추게 될까. 언제 다시 해 뜰 날이 오는 걸까. 어둠 속을 홀로 걸으며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내일을 또 기다린다.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따뜻한 빛이 다시 나를 감싸게 될까. 그런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 그런 생각들을 조용히 읊조리며 이 긴 밤 속을 나 홀로 걷는다.
여전히 어두운 밤 하늘 아래를 걷고 있다.
내일의 광명을 찾아서.
밉게 우는 건 이제 그만 할까
이대로 어디로든 갈까 아니면 눈을 감을까
그렇게 아픈 건 잊어지지 않아
시간에 기대어 봐 가만
한낮에 꿈을 꾸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