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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May 11. 2021

느릿하게 걷는 삶

그렇게 나다움을 잃지 않는 법

강자에게 더 세게 I love gamble
과감할수록 신세계 on my table
 I’m sorry 세상이 원래 불공평해
So 더럽게 재미있지
- Coin, IU


투자 안해? 에이, 그러다 뒤쳐지는 거야.


  남들의 영웅담에 혹해 투자를 시작했지만 돈이 복사되기는커녕 잃고야 말았다. 위험을 감수해야한다는 걸 알았지만 막상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나니 치욕스럽기 그지 없었다. 옆에선 치킨 값을 벌었다며 환호를 터뜨리니 속은 더 까맣게 타들어간다. 한편 뉴스에선 몇십, 몇백억을 벌어 퇴사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름 모를 그처럼 속시원하게 사표를 던지고 싶지만 일개미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 다 하는 투자 혹은 투기. 그런데 내가 손을 대는 족족 잔고는 마이너스가 됐다. 정보가 부족했을까 아니면 감이 좀 별로였을까. 답이 없는 문제를 두고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한편 주위에서 돈 좀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배가 아플 수가 없었다. 나는 남들의 반의 반도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은 속상함은 마음을 후벼팠다. 그렇게 돈에 좇기는 삶은 불행으로 가득했다. '벼락거지'가 된 기분. 불과 몇달 전까지 나의 삶은 불안함과 자괴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출처 flickr


성공, 명예, 돈


  매일같이 이런 것들의 뒤를 쫓는다. 나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레이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왜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중도 이탈한 자에게 주어지는 '실패자'라는 낙인이 부끄러워 멈출 수가 없다. 그래서 끈적한 땀이 흐르고 흘러 온 몸에 빗물이 떨어진듯 흥건이 젖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앞을 향해 발걸을 내디뎌야만 한다.


  그렇게 달린 끝에 낙이 올 거라는 믿음은 강한 자극이 된다. 모두가 같은 신념을 가지고 달리고 있기에 이 경주는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때론 넘어질듯이 휘청이면서도 이 질주를 포기할 수 없다. 다들 그렇게 어딘지 모를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으니까. 그런 사회에서 낙오되는 것만큼 치욕스러운 일은 없다. 달려 나가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러는 동안 주위의 풍경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겨를도 없이, 스쳐 지나간 이름 모를 꽃이 얼마나 예뻤는지 구경할 틈도 없이 끝없는 욕심을 향해 달려나간다. 그렇게 하염없이 달리다 보면 멈추는 법을 잊게 된다. 잠시 숨을 돌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당장 발치에 거슬리는 돌부리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주변의 누군가가 넘어졌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내 앞길에 놓인 장애물들이 우선 순위가 된다. 인생의 행복이란 그런 노력을 통해 거머쥐는 것이라 세뇌받았기 때문이다.


5 Tips on How to Combat Loneliness and Depression (aftermath.com)


간절히 '내 것'이 되기를 바라지만 쉽게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


  대다수의 기대와 달리 사회는 불공평하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순 없다. 대부분은 평범하거나 그 이하의 삶을 살고 극소수만이 자본의 혜택을 누린다. 우리는 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바라지만 그런 세상은 현실에 존재하기 어렵다. 명시적인 차별은 신분제 폐지와 함께 사라진지 오래지만 사람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간극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부의 사다리가 열려있다는 희망을 내려놓지 못한다. 극히 낮은 확률이지만 때때로 엄청난 행운을 거머쥔 사람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기회의 평등'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다. 출발선이 얼마나 차이났는가를 돌아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 이룰 수 있는 세상이라는 착각 속에 모두가 '성공, 명예, 돈'을 좇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숨이 찰 정도로 달려 겨우 손을 뻗어도 잡힐듯 말듯 한 거리에 있다. 그리고 아무리 속력을 낸다고 해도 나보다 더 앞서 있는 사람들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손에 넣기만 하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거머쥐게 될 거라는 환상이 사람들의 절실함을 부추긴다.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은 나도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불공평한 배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실패했다면 온전히 그 사람의 잘못이다.' 라는 식의 비난의 화살만이 날아들 뿐. 그래서 대개 실패의 원인을 물을 때 성공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따져묻는다. 그리고 '당신의 능력이 부족했다.'는 식의 성급한 결론을 내린다.


모든 건 개인이 부족한 탓으로 귀결되는
매정한 사회다.


Dealing with Stress: Know the Hidden Symptoms | Cedars-Sinai


'무'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


  성공에 대한 집착은 지금까지 살아온 환경으로 미루어보건데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적당한 의지와 노력이 바꿀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지금의 모든 소소한 행복을 다 지워내야만 겨우 목표에 도달할까 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이 빠진 다리가 후들거려도 그런 나를 뒤돌아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제 앞만을 신경쓰느라 뒤에 누군가 쓰러진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런 사실이 더욱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모든 게 멀리 있는 환상 같은 거란 생각이 들자 그만 멈추게 되었다. 지긋지긋한 이 레이스를 더 이상 열심히 뛰고 싶지 않아졌다.


요 근래에 잠시 나는 인생이란 길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중에도 나동그라진 나를 지나쳐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엔 내가 힘이 빠져 멈춰섰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눈 앞에 성공이 있는데, 나는 왜 대체 좇지 못하는가 생각하며 스스로를 원망했다. 힘차게 달려나가는 사람들을 뒤에서 지켜보며 허망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르는 게 아니라, 영영 주저 앉은 채로 불행을 끌어 안은 채 모두의 기억과 관심 속에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헐떡이는 숨이 잦아졌고 비로소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멈춰버린 동시에 행복할 자격조차 잃어버린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마음이 점차 평온해졌다.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꽃들이 마음을 사로잡았고 귓볼을 스치는 산들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짙은 어둠 속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내겐 여전히 환한 태양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달리는 동안엔 그토록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태양이 부드럽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바람 아래 눈을 감고 있으니 온 몸을 적시던 땀이 차츰 말라갔다.


How to Stress Less About Money | Money


그렇게 나는 마음을 비우고 있다.


  유익한 정보를 얻기 위해, 남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어지자 마음은 편해졌다. 지금은 그냥 사소한 것들을 보며 웃는다. 불안함 마음이 전부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냥 천천히 걷는 순간들을 더 사랑하게 됐다. 지금 이 공기가 아주 완벽하진 않지만, 적당해서 참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주변엔 악착같이 욕심에 매달린 사람들로 가득하다. 게을러지기로 한 나보단 욕심을 좇으며 살아가는 그들이 더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 능력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그들과 비교해 실패한 낙오자에 불과한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삶에도 격려가 필요하다.
삶은 그 자체로 한 없이 빛나는 것이기에.


Photo: Sasha Freemind/Unsplash



  그런 나는 여전히 놓치 못한 꿈을 좇는다. 남들과 같은 욕망 좇는 데에 헌신하지 않는 대신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다. 그런 내가 현명했던 선택할 한 건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나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로 했다.


너의 모든 해답은/ 니가 찾아낸 이 곳에/ 너의 은하수에 너의 마음 속에
- Magic shop, B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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