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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May 01. 2021

가면을 쓰고 웃는 여자

Persona series part .1

I'm twenty three 난 수수께끼
Question 뭐게요 맞혀봐요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개의 '페르소나(persona)'를 가지고 살아간다.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없이 지내려면 적당한 꾸밈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는 자신만의 자아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일치하는 모습으로 당당하게 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 그들은 남들의 시선에 좌우되어 자존심에 상처받기보다 스스로의 자아를 단단하게 형성해 가는 이들이다. 페르소나 뒤에 본심을 감추고 살아가는 나로서는 선망의 대상이다.


  페르소나란 본래의 자신과는 구분되는 다른 태도나 성격을 의미한다. 사회의 규범과 관습을 내면화한 사회적 자아로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겉으로 드러낸 자아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쓰고 벗었던 가면으로부터 유래된 말이다. 당시 배우들이 썼던 가면은 연기하는 인물의 감정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페르소나는 가면이란 뜻을 넘어 사람의 인격(person), 성격(personality)이란 단어의 어원이 되었고 지금과 같은 의미로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내가 또 다른 자아와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 한참 나이가 들어서였다.


  '나는 참 밝고 착한 아이야.' 한 동안 그렇게 믿어왔다. 어릴 땐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고 커서도 어른들 말씀에 귀 기울였다. 나는 잘 모르는 이가 말을 걸더라도 언제나 환한 미소로 응답하곤 했다. 친화력만큼은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내게 밝은 에너지가 넘친다고 치켜세웠다. 그런 내 모습이 참 마음에 들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나는 행복감을 느꼈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각인되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 반응들이 내 모습을 좌우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나는 힘들었다. 모임에서 리더 역할을 자임하느라 3시간을 방긋거리며 앉아 있었더니 집에 돌아가는 길에 턱이 빠지는 것처럼 아팠고, 분위기메이커라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내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다가 짜증이 폭발해 카톡을 지워버리기도 했다. 남들이 보는 것처럼 나는  없이 밝고 적극적이고 도전정신이 넘쳐야만 하는  같았지만 때때로 넘치는 부담감이 나를 조여왔다.  몸과 마음이 힘든  외면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한 순간들이 많았다. 웃으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일거수 일투족이 남에게 비쳐지는  싫었다. 뭐랄까, 마치 연예인이  기분 같은 거였다.


  그런 나는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모든 고민의 출발점이었다.  기분이 나빴을까,  힘이 드는 걸까, 다른 이들은 같은 일을 겪었어도 평온한데  나는 그렇지 못한 걸까, 그런데도  나는 자꾸 나서려 하는가.  어떤 고민에도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욱 남들의 생각에 동조하려고 노력했다.  생각과는 다른 방식이더라도 거기에 따르려 했고 '내가 바뀌어야 문제가 해결되는 '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런 결론을 내리면서도  불편한 기분이 드는 건지는  수가 없었다. 남들 앞에서 웃음 지어 보이는 일이  괴로움이 되는 건지,  나는 어딘가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건지,  알지 못했다.


출처 미디어데일


몇 달 전 가깝게 지낸 직장동료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 A씨는 겉보기에 내가 어떤 것 같아요?
A: 음.. 밝고 잘 웃고 명랑해보여요.
나: 오~ 다행이네. (웃음)
A: 왜요? 어때 보이길 바라는데요?
나: 흠.. 제가 좀 밝은 이미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A: 그런 거라면 성공한거네.


  나는 내가 어떤 인상인지, 특히 첫인상이 어떻고 지금의 모습은 그에 비해 얼마나 다른가 하는 것들을 남들에게 묻곤 했다. 그만큼 보이는 모습에 신경을 많이 쓴다는 뜻이다. 미처 의식하지 못했는데 항상 남들의 행동과 선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거기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바라던 대로 언제나 사랑받아야 한다는 집념 때문에 나는  예민해 있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남들의 눈치를 봤다. 그렇기 때문에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기보다 남의 말에 호응해주기 바빴다. 업무 차 사람을 대할 때만 원래의 무심한 나의 모습이 드러났고 직장동료와의 관계에선  웃는 가면을 뒤집어  내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나의 다른 페르소나가 사회생활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남들은 알지 못한다.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고선  수가 없다.  웃음 뒤에 숨겨진 얼굴이 있을 거라곤 쉽게 짐작할  없다. 타인은 자신을 제외한 남들에 대해 무지한  보통이다. 하지만 결국 본래의 자아와의 갭이 너무 커져버린 순간이 오게 되었고, 마침내 본래의 모습에 내재되어 있던 분노가 폭발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동안 불필요하게 애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에겐 남들에게 사랑받고자  다듬어  사회적 인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건 '있는 그대로'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이 노래를, 특히 이 노래의 가사를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됐다.

난 당신 맘에 들고 싶어요. 아주 살짝만 얄밉게 해도 돼요?
난 당신 맘에 들고 싶어요. 자기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아도 돼요?

맞혀봐. 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 아이유 '스물셋' 중



사실 나는 웃음보다 눈물이 더 많다.
행복할 때보단 우울할 때가 더 많다.
사람의 좋은 면보다 싫은 면이 더 눈에 띈다.


  체력도 능력도 뛰어난 게 하나 없는데 버티는 건 좀 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원동력이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척, 즐겁지 않아도 즐거운 척, 사실은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척. 그렇게 버티는 건 좀 자신 있었다. 그런데 그 삶이 항상 행복하다 느끼진 않았다. 어딘가 불완전한 기쁨이었다. 사랑받는 게 가면을 쓴 나이지 내가 생각하는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래서 화도 짜증도 많은데다가 까칠하기까지 한 본래의 자아는 늘 뒷전이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체 어쩌다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페르소나'를 갖고 태어난 건 운명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까지는 남들이 그런 본래의 내 모습을 모르길 바랐다면, 이젠 좀 나를 위해서 꺼내 놓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라는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본래의 모습이 튀어나오는 건 막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그게 남들 눈에 어떻게 비춰지든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여기는 건 힘들겠지만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그 뒤로 더 이상 남들에게 내 첫인상이 어떠했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내가 어떤지 궁금해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때도, 남들의 시선이 왠지 따갑게 느껴지는 순간도 조용히 넘긴다. 뭔가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페르소나와 달리 본래의 나라면 시크하게 무시하고 넘겼을 테니. 좀 더 나다워지기로 했다. 남들이 어색하게 생각하더라도 나는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어떤 모습이든 받아들이는 건 오롯이 상대의 몫이니까.


  이제는 내가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걸 좀 더 우선순위에 두기로 마음 먹었다. 과연 내 마음이 행복한가를 생각하고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지금은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너는 참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구나.


그런 한편 나에겐 이런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좀 삐뚤어졌어도 괜찮아.
굳이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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