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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un 07. 2021

그냥 그럴 뿐이다.

모든 게 다 의미가 있지는 않다.

'쿠크다스'로 살아온 지난 날


  요즘 내 머릿 속을 휘감고 있는 생각이 하나 있다. 바로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말기'다. 최근 들어 나는 이 말을 좌우명처럼 깊이 마음에 새기고 있다. 그만큼 내겐 절실하게 필요한 원칙이다. 이십대 동안 쌓인 마음의 상처는 모두 인간관계에서 감당하지 못한 불안감에서 비롯됐다. 사랑받고 싶어서 끊임없이 남에게  보이려 노력했던 지난 , 나는 겉으로 보기엔 밝고  웃는 아이였지만 내면엔 초조함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그 동안 나는 맺고끊는 걸 참 어려워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한 번 열면 온 정성을 다해 관심을 쏟고 내 기분, 생각, 감정 등 거의 모든 것을 솔직하게 공유하려 애를 썼다. 그럴 필요가 있었느냐와 상관없이 쉽게 마음을 열었고, 타인과의 경계를 허무는 데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다가가다 보면 늘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그 지점에 다다르면 금방이라도 벽이 허물어지지 않을까 싶어 발을 동동거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을 준다는 것은 동시에 내 마음이 상처받을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살폈어야 하는 건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순서가 항상 뒤바뀌어 있었다.


  지금에서 돌이켜보니  쓸데없는 감정낭비였다. 어릴적 나는 건강한 관계유지를 위해 필요한 '적당한 선'을 알지 못했다. 그 선을 넘게되면 서로에게 불편한 지점이 생기고 실망할 일이 더 자주 생긴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좋은 사람과 나와 가까운 사람은 분명 다른 것이었지만 구분하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거리를 좁힐 수 있다 믿었던 내 생각과 달리 타인은 늘 나에게서 먼 존재였다. 한 때는 그 이유를 내 잘못으로 돌리고 스스로를 타박한 적도 있다. 물론 굉장히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ENFP로 살아간다는 것


  MBTI검사를 하면 나는 ‘ENFP’유형으로 진단된다. ENFP 유형은 ‘낙천적이며 열정적인 활동가’ 타입이라고 한다. 결과가 말해주듯 나는 불 같은 면때문에 추진력이 있기도 하지만 신중함이 덜하고 기분이 앞서 지구력은 떨어진다. 새로운 일에 신나서 남들보다 먼저 달려나가고, 남들 앞에 나서는데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그만큼 경계심이 적어 다칠 위험도 크다. 그런 스스로를 지키 위해 나는 수시로 꿈틀거리는 내면의 ‘개구쟁이’를 단속하며 살아왔다. 천방지축의 말괄량이 기질을 어딘가에 단단히 묶어두고 가끔씩 바람을 쐬어주는 정도로 타협했다.


  그런데 MBTI 성격유형 검사를 했을 때 다른 건 가끔 수치가 변해도 잘 변하지 않는 지표가 두 개 있다. 바로 N과 F다. 검사결과에 따르면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주된 방식은 N(iNtuition, 직관형)이고 판단기능은 F(Feeling, 감정형)로 이성보다 감정이 압도적이다. 즉 넘치는 생각을 타고 감정이 흐르는 타입이다. 생각의 변주를 제어해줄 이성이 약해 쉽게 기분이 오락가락한다. 상황이 좋을 땐 시너지 효과를 내지만 나쁠 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괴로울 때가 많다. 생각도 많고 상상력이 풍부한데 그걸 감정소모적인 일에 낭비하는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남들에 비해 느끼는 감정의 폭이 넓은 반면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이 서투르다.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의미'를 많이 따지는 편이다. 또 감정적으로 내키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소극적이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크다. 그 많은 생각들이 따끔한 결단을 내리기보단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다.



묵묵히 지내며 얻은 깨달음이 있다.


  최근에 어둡고 답답한, '우울'이라는 터널 안을 걸어나오면서 나는 이런 사실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비로소 지난 날의 내 과오를 마주하니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영원히 과거에 얽매일 수는 없는만큼 괴로움을 빨리 잊어야 했다. 그런데 그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게 참 힘들었다. 이미 마음이 ‘괜찮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격 특성상 Feeling이 주기능인 탓에 기분이 주저 앉아버리면 나의 사고회로는 일시정지된다. 그래서 슬픔을 이기지 못한 마음은 세상을 향한 벽을 세웠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지금까지의 걸음 중엔 분명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 걸음 때문에 길을 잘못 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물론 되돌아 나오면 그만이겠지만 좀처럼 발이 떼지지가 않았다. 이대로 영영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기분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한 번 망쳐버린 걸음이 미래마저 뒤틀리게 만든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은 내 발을 묶어두었다. 지금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았다. 매순간 완벽한 판단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나를 겁먹게 만들었다.


그렇게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른 채로
마음이 울적한 시간을 보냈다.



상처가 나으면서 남는 흉터 자국


  하지만 지금은 ‘틀리지 말아야한다’는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났다. 우울의 터널에서 보낸 시간이 건넨 가르침이다. ‘이건 이렇게 되어야한다’는 걱정을 접어두려 하고 있다. 생각한 대로 결론이 나지 않더라도 내 잘못이었다 생각하지 않고, 감정이 기쁨과 슬픔이란 파도에 휩쓸려 오락가락하지 않도록, 모든 일은 그저 지나갈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들에 속상해 하다가 보면 밀려 나간 물에 집착해 내게로 돌아오는 파도를 잊어버리게 되는 법. 파도가 바다로 되돌아갔다가도 다시 뭍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전에는 스치는 모든 것이 인연이고 운명이란 믿음이 강했지만 그런 속박이 내게 좋지 못하단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냥 흘려보내는 게 무의미하다 여겨 어떻게든 마음 속에 붙들고 있으려 했던 욕심을 버렸다. 사사건건마다 그 의미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좋은 추억만을 남기는 건 아니기에, 해묵은 감정을 오래 붙들지 말고 그대로 흘려보내야 한다. 그래서 이제는 특별한 순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보다 평범한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게 중요하게 됐다. 모든 건 스쳐지나가기에, 특별하게 남을 순간을 기다리기보다 지나갈 평범한 날들을 즐겁게 보내면 그 뿐이다.


출처 Crosswalk.com


특별하지 않은 오늘 하루가
특별한 내일을 만든다는 뻔한 이야기


  오래되고 낡은 불안의 터널에서 나온 지금, 내게 더 없이 중요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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