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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ul 13. 2021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잊어버렸던 그 처음에 대해

나: 무슨 업무 때문에 오셨나요?
민원인: 아 저, 상담받을 게 있어서요. OO지원금 신청하려고 하는데요..
나: 들어오시기 전에 발열체크하고 안심콜 해주시고요, 이쪽으로 와서 잠깐 앉아계세요.
민원인: 아, 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 민원인 한 명이 들어왔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상담 요청이었다. 나는 그저 얼른 끝내고 밥 먹으러 가야지 하는 생각이 머릿 속에 가득했다. 오늘은 외식인만큼 서둘러 나가야 했다. 으레 그랬듯 민원인 얼굴을 들여다보기 보다 그가 궁금해 하는 내용이나 들고 온 서류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서류를 말아쥔 두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보기 전까지 말이다.


  서류를 품에 꼭 안고 온 그 남자는 유독 굳은 얼굴이었다. 민원인이 관공서에 오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내가 일하는 부서엔 주로 기업체 담당자들이 방문한다. 개인이 자신의 문제를 상담받으러 오기 보다 기업체 대표나 대리인 등이 정부 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해 들른다. 즉 주된 방문객은 직원을 거느린 사장님들이다. 그 민원인 역시 2명의 직원과 함께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다.




초심을 잃어버린 채 지겹도록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코로나가 처음 확산되기 시작한 작년 2월부터 몇 달 간 전국의 고용센터는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으로 인해 수많은 사업장들이 의사와 상관없이 휴업을 해야했고 그 때문에 지원금을 문의하는 사장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 무렵 지원금을 처리할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나는 지금의 팀으로 차출되었고 현재까지도 기업체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초심은 잃어버린지 오래다. 반복되는 지겨움 때문에 일을 하면서 어떠한 보람도 느낄 수 없었고 팀원들과는 전과 같은 시너지가 나지 않았다. 더욱이 내 인생의 향방이 더 고민이라 눈앞이 캄캄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조금씩 이 무기력함에도 적응하고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은 지워진 채로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아무렴 어때, 나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 하는 생각만 매일같이 되뇔 뿐이었다.


'이런 삶을 원했던 게 아니'라는
상념이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https://www.healthybynaturecalgary.ca/psychologist-calgary/managing-worry


갑자기 요즘 들어 하소연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여러 사업장과 같은 실랑이를 벌였다. 지원금 신청에 필요한 서류들이 정해져 있는데, 매달 같은 얘기를 반복해도 신청 서류가 누락되는 일이 빈번했고 그 때문에 매번 읍소를 해야만 했다. '제가 지난 달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로 시작하는 전화를 할 때면 한숨이 푹푹 나왔다. 서류 더미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실제의 그 사업장이 어떨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나지 않을 만큼 나는 지쳐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부쩍 하소연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 왠지 얘기를 잘 들어준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몇몇 전화 상대방들은 지원금이나 신청 서류에 관한 질문이 끝나면 내게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물론 모든 전화가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우연찮게 청자가 되어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됐다. 내가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것 같았다. 힘든 사정에 대해 토로할 곳이 마땅히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얼떨결에 몇몇 사연들을 접하고 나니 사정이 좀 안쓰럽다 하는 마음이 들었던 참이었다.




긴장으로 잔뜩 굳은 얼굴엔 간절함이 가득했다.


  대부분이 아마도 주민등록등본을 떼거나 혼인신고 같은 걸 하러, 그러니까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로 관공서를 방문한 경험은 적어도 한 차례 이상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사장님으로서, 대표자 자격으로 지원금을 신청하러 방문한 적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보조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재정적인 문제를 겪고 있거나 사업의 정상적인 영위에 어려움이 있다는 뜻일테니. 익숙지 않은 공간이 주는 이질적인 분위기가 낯설어서였을까 아니면 현재 처한 상황이 꽤 곤란하기 때문이었을까. 유독 그 남자는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이 품었던 서류를 넘겨 받으며 나는 가볍게 눈을 맞추고 웃었다. 서류를 건네면서도 떨리던 그의 손이 안쓰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류를 하나하나 살피며 이것저것 묻는데 대답하는 목소리에서도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냥 서류에 손을 짚는데도 손끝이 부들거리는 게 눈에 띌 정도였다. 하지만 지원금에 관해 열심히 찾아보고 온 것인지 서류 준비는 거의 완벽한 상태였다. 궁금한 점에 대해 차분히 답변해주며 나는 최대한 그가 긴장하지 않도록 많이 웃었다. 사실 그렇게 웃으며 이야기를 건넨 게 얼마 만이었는지 모른다. 다행히 그도 긴장이 좀 가라앉았는지 마지막에 나갈 때는 미소를 조금 되찾은 상태였다.


  그가 돌아가고 난 뒤에 모종의 여운이 남았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해야할 일이 산더미였고 부랴부랴 해치우는 데 정신 팔려 다시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낮에 있었던 일이 다시 생각났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참 오랜만에 일한 보람이 있는 하루였다는 것을. 그러자 마음이 먹먹해졌다. 분명 사무실을 나설 때만 해도 신나는 퇴근길이었는데 내내 머릿 속엔 다양한 생각이 맴돌았다. 그가 남기고 간 건 서류만이 아니었다. 앞으로 꽤 오랜시간 생각 날 장면을 내 기억에 남겼다.


https://caretochange.com.au/news/progress-vs-change/


요즘 행복이 뭘까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돈이 많으면 된다' 상투적인 답부터 시작해 다양한 답들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간절함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의지가 부족했나. 갖고 싶은  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 갖고 있는  행복하지도 않은 상황이 진절머리가 났다. 그런 타이밍에 그의 등장은 내게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그렇게 아등바등할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스스로를 괴로움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구나.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가슴으로 깨달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로써 나는 모든  마음먹기 달린 일이라는 , 과거의 초심을 잊은 채로 살고 있었다는  다시   상기하게 됐다.


그 달달 떨리던 손끝처럼, 나 역시 어느 앙상한 가지 끄트머리에 매달려 불안하게 흔들리던 번데기였다.


  언젠가 이 답답한 고치 안을 벗어나 맘껏 자유를 누릴 날이 올지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이 오기까지 나는 더 이상 불안과 슬픔에 잠식되어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또 어느 순간 세상과 담을 쌓고 스스로가 만든 고치 안에 갇혀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대신 그 날의 그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에 담아두고 힘든 순간마다 되새김질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는 따뜻한 손길이 되고 싶다는 그 마음을 잊지 않은 채 살기 위해.


  그렇게 우연한 기억이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다. 삶이란 그래서 미로같다. 어느 방향으로 정해져 있는 건지 그 지점에 도착하기 전까진 당최 앞을 내다볼 수가 없으니. 하지만 헤매더라도 출구는 있다.


언젠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careersingovernm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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