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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May 29. 2021

퇴사병엔 치료제가 없다

공시생과 공무원의 희로애락

공무원 합격은 에듀윌♬
공인중개사 합격은 에듀윌♪


  TV에서였나 아니면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였을까. 귀에 꽂히는 쉬운 멜로디에 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CM송. 취업준비생이 아니더라도 지나가면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중독성이 강한 광고다. 광고의 대상은 취업시장을 겨냥해 다양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듀윌'이라는 학원. 이 곳에선 공무원 시험과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용 강의를 비롯해 다양한 자격증 시험 준비를 위한 강의를 선보이고 있다. 신입으로서 첫 직장에 입사를 꿈 꾸는 사람이거나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사이트 홈페이지를 들락거렸을지도 모른다.


  몇 달 전 이 학원에서는 마케팅을 위해 '삼춘문예'라는 삼행시 이벤트를 벌였고 그 수상작들을 광고로 제작했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지하철 승강장에 걸린 그 광고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가히 멋있는 문구들이 많았다. '공무원'이라는 세 글자로 지은 짧은 글에는 잘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것 같았다. 심금을 울리는 글도 있었고 굳건한 다짐을 담은 내용도 있었다. 여전히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이 되길 희망하고 그 문턱을 넘기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간절한 메시지가 많았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공부는 잘하고 있니?
무리하고 있는  아닌가 싶어. 엄마가 
원하는  너의 행복뿐이란다.  -대상작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지?
무척이나 외롭고 힘든 싸움 끝에는
원했던 세상이  기다릴 거야.  -우수상

공연이 시작되기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는 당신
원없이  열정을 펼치길 응원합니다.


   외에도  많은 사연들이 접수되었을 것이다. 책상 앞에 붙어  홀로 씨름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이지 이미 경험해 봐서  알기에 공감이 가는 한편 씁쓸했다. 하루종일을 벽과 친구하며 지내야 했던 , 풀리지 않는 문제를 두고 남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던 , 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 속을 지나고 있는  같은 기분이 들어 괴로운 때가 생각났다. 그래도  때는  시기만 지나면 분명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웠지만 이겨낼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온갖 설움을 버텨냈다.


출처 The conversation


하지만 벌써 일한 지 4년 차가 된 지금은 헛헛한 기분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의 세상은 빛이 아닌 어둠 속에 존재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한창 혈기왕성하던 때에 온갖 욕구를 절제해 가며 정성을 다했던 시험 준비. 오랜 노력 끝에 겨우 합격의 문을 뚫었지만 그 기쁨의 유효기간은 얼마 되지가 않았다. 아마 공무원 시험뿐만이 아니라 다른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유를 즐길 새도 없이 남들의 뒤꽁무니를 좇아 겨우겨우 입사했는데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냉랭하고, 면접 당시 당차게 이야기했던 나의 비전과 나의 열정은 세월에 바랜 종이조각이 되어 바람에 휘날린다. 처음엔 마냥 샘솟던 에너지가 점점 바닥이 나고 마침내 삶이 거대한 시련처럼 느껴진다.


시험 합격 이후 혹은 난관을 통과한 이후의 삶

  

  마치 미래는 보장되어 있고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여기는 착각. 사실 돌이켜보면 나도  동안은 적응하는데 정신이 팔려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직 전 수험생 시절에  공무원 선배가 남긴 블로그 글을  적이 있다.  역시 힘들게 공부한 끝에 합격을 했고 합격 후엔 업무 련 법령을 공부하는 등 열정 불태웠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후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그는 병가 중이라는 소식을 . 덧붙여 생각보다 일이 만만치 않았더라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후로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지금 어디에선가 그가 평안하게 지내길 바랄 .


  정해진 규칙 외에도 전해내려오는 관행에 얽매이고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스스로를 퍼즐 귀퉁이에 끼워 맞춰야 하는 삶. 물론 그 삶이 주는 안락함은 다른 직업을 가졌을 때에는 느낄 수 없는 것일 테다. 내 사정을 잘 모르는 다른 이들은 쉽게 이런 이야기를 건넨다. "안 잘리잖아. 그게 어디야." 물론 부인할 수 없는 장점이다. 또 어떤 이는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편하게 앉아있는 거 아니야? 돌아다닐 일이 없잖아." 이건 매우 틀린 말이다. 아무튼 사람들이 가지는 편견이 아주 틀린 건 아니기에 충분히 만족할 수도 있는 삶이다. 내 성과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남들보다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바로 비극이 시작된다. 소위 "나도 안 짤리지만, 쟤도 안 짤린다."는 말처럼 그 '쟤' 때문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화가 치미는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는 일하는 개미로 살고 누군가는 노는 개미로 살면서 삶의 질은 전자의 경우가 더 '후지다' 느끼고, 후자의 경우는 그럭저럭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무원 사회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석에 존재할 이야기. 누군가의 피땀 아래 편히 살아갈 또 다른 누군가. 그 차이는 빈부의 격차로 표현할 수도 있고 일복의 유무로 이야기할 수도 있으며, 운이 좋으냐 나쁘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도 있다.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는 인생이라,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물론 초등학교 때 짝궁 정하는 것조차도 내 맘대로 되진 않았다. 사실 마음대로 되는 건 세상에 몇 가지 없다. 끝내 기대를 저버리는 일들이 생기고 예기치 못한 슬픔이 닥치기도 한다. 20대 들어서 제1의 목표가 돈 버는 직장인이 되는 거였고 그 목표를 달성했다. 어느 정도의 뿌듯함을 느끼자마자 모든 건 내 의도와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과 나의 삶은 꿈 속에만 존재했고 현실의 나는 이리저리 치이거나 불만을 말 못하고 속만 끓이기 일쑤였다.


  문득 왜 이렇게 나의 내면에 불만이 쌓인 걸까 돌아보니 지금 선택한 이 길이 적성이 맞는 것이었을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하게 됐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을 내려다 보니 누구에게 어떤 고민상담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한들 쉽게 답이 나올 고민이 아니었다. 지금 들어선 이 길 역시 끝까지 가보지 않은 길이라 쉽게 결론내리기가 어렵다. 한편 그런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나는 선배로부터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벽지같은 존재'가 되라는 조언을 들었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는 그런 말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내게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이들의 외침은 쓸데없는 메아리처럼 들렸다. 인생의 목표가 공무원일 필요가 있나. 물론 직장을 갖는 게 먹고 사는 데 중요한 문제인만큼 신경쓰이지 않을 수야 없지만, 한 가지 목표에 매달린다 한들 그 열매가 달기만 할까. 과정에서의 쓰라림을 견디고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고 한들 그 꿈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거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진 않는다. 다만 한 가지의 문제가 해결됐을 뿐이다. 더 이상 백수가 아니라는 것. 합격 그 자체에 아주 큰 의미를 부여하기엔 삶엔 너무나도 다양한 변곡점들이 있다.


언제든 다시 내리막으로 치달을 수 있는 것,
그게 삶이다.


출처 unsplash


어떤 길이든 보이지 않는 어딘가엔 희망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삐뚤빼뚤한 자갈밭에도   사이에 기쁨과 희망이 종종 숨어있다.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일  삶은 시소 같아서 오르락내리락한다. 지하철에서  광고를 지나치며 나는 '선택한 길에서 반드시 행복해질라 믿는  자만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했다. 선택한 길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문턱을 넘은 즉시 깨닫기보단 시간이 흐르며 '나만의 ' 찾게 되는  테다. 채점결과가 생각보단 늦게 나오는 거다. 그래서 가채점 결과에 들떠 있을 필요가 없다. 최종적인 결과물은 겪고 부딪히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바로서 알게 되는 것이니. 다만  과정에서 정답을 결정하는 내가 변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전에는 옳았지만 지금은 틀렸다라고 생각할 수도,   틀린  알았지만 지금 보니 옳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뭐든 마음 먹기 달린 일이라,
생각보다 기쁠 수도 생각보다 우울할 수도
있는 게 그 결과다.


모든 직장인들이 비슷하게 느낀다는 퇴사병, '369 증후군'.


  그 병을 앓는 시점은 입사 후 3,6,9년이 됐을 무렵이라고 한다. 나 역시 그 즈음에 이르러 고민이 한결 깊어졌다. 회사의 장점보단 단점이 눈에 띄고 사람들과 지내는 것에도 신물이 날 시기. 다음 날 회사에 가는 게 두렵고 하루하루가 막막하게 느껴지는 때. 이 세상에 모든 게 자연스레 흘러가는데 나만 꼼짝 없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드는 타이밍. 의욕이 꺾이다 못해 바스라져 가루가 되어버린 지금,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통통배다. 다행히 배가 튼튼해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진 않겠지만 눈 앞의 바닷물은 당장이라도 나를 집어 삼킬 것만 같이 두려운 존재다.


  여전히 나는 지난 나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지에 대해 갸우뚱하고 있다. 그런 내 눈엔 열정이 넘치는 신입직원의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고 흐뭇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마음이 앞서 괜히 고생하다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지난 날의 내 모습이 생각나 뭉클한 심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혹시 내가 '젊은 꼰대'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적당히 따를만한 선배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아마도 신입직원들은 아직까지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그 웃음이 끊기지 않을는지 알 수 없지만, 가급적 그 행복이 오랫동안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그런데, 앞으로 내가 행복을 찾아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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