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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May 23. 2021

90년대생으로 살아남는 법

Beep Beep

놀면 뭐하니, 회사 나와서 일해야지


  얼마 전 오랜만에 동갑인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성향이나 가치관이 비슷한 사이라 어떤 사연을 꺼내든 이해해주리라 하는 믿음이 있는 친구. 직장생활의 고충이나 삶의 고민거리를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이다. 그날 우리의 이야기 주제는 주로 직장에 관한 것이었다. 친구와 나는 서로 비슷한 시기에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어느덧 4년차를 맞았다. 멋모르던 신규 시절을 지나 사회생활의 쓴 맛을 이미 제대로 맛 본 터였다. 둘 다 직장생활에 대한 당찬 포부나 패기 같은 건 버린지 오래라 이야기 대부분이 그 동안 느꼈던 부조리함이나 부당함과 같은 것들이었다.


출처 ㅍㅍㅅㅅ


  가볍게 각자의 근황를 전하는데 친구는 현재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 조치로 재택근무 기간이 길어지자 회사 측에서는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도록 내부 규정을 아예 바꿨다. 회의참석 등 필요시에만 사무실에 출근하고 이외에는 근무 장소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 문화를 정착시키면서 아예 사무실도 공유 오피스 형태로 바꾸어 개개인의 자리를 없앴다. 종종 사기업에 다니는 지인들이 여전히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대대적인 변화가 있었으리라곤 짐작하지 못했다.


  반면 나는 재택근무를   횟수가 손에 꼽는다. 아직까지도 공직사회에서 재택근무는 거의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전체 기관들의 내부사정을  알진 못하지만 적어도 주변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를  적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재택근무를 했느냐 물으면 '남의 나라 이야기'라며 씁쓸해한다. 분명 1/3 이상은 재택근무를 실시하도록 하는 복무지침이 여러 차례 시달되었지만 개개인의 업무수행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제도는 쉽게 정착되지 않는다. 오히려 재택 근무를 하겠다고 하면 집에서 편히 쉬려고 한다는 손가락질을 당하기 십상이다. '너는 놀고, 우린 일하니?'라는 식의 반응이다.


출처 티피아이 인사이트


그렇게 조직과 그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창살을 만들어 개인을 옭아맨다.


  나는 거대한 조직에 속한 하나의 부속품이다. 내겐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 해야하는 임무가 주어져있다. 하지만 업무를 수행하는데 나만의 독창성은 필요치가 않다. 정해진 규정과 오랜 관습이 내가 따라야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개선할 필요가 있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나 불필요한 관행은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다. 제 아무리 혁신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어느 정권에서도 사람과 그 사람들이 오랜 시간 유지해온 관행을 바꾸기란 쉽지가 않다. 또 조직에 반기를 드는 건 평범한 개인으로서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지난 3년 간 나는
'열정은 빠르게 포기할수록 좋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소위 '영혼이 없이 일한다'는 건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많은 직장인들도 겪고있는 상황일 것이다. 회사와 내게 업무지시를 하는 상사는 개개인의 특성을 포용하기보다 개인이 스스로를 깎아 정형화된 모습을 갖출 것을 강요한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경쟁력이나 매력이 탈락되는 것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렇게 내가 추구하는 생각은 뒤틀리고 조직과 사람에 대한 실망이 쌓인다. 결국엔 무기력한 채로 쳇바퀴 같은 삶을 살게 된다. 마치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것처럼.


  나 역시 대개가 그렇듯 남들이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를 끼워맞췄다. 그게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라 믿었다. 목소리를 내어 '이건 잘못된 것 같다. 재고해달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 친한 선배는 차라리 이곳에선 '벽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말에 따라 나는 '내가 아직 어리고 조직생활에 익숙지 않아 불만이 생기는 걸 것이다' 여기며 답답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출처 대학내일


하지만 내 친구는 그런 나와는 사뭇 다른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자신은 부당함을 그저 참고 견디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일하다보면 내 공적을 가로채는 사람들, 억지스럽게 싫은 일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게 되는데 그들에게 만만히 보였다간 앞으로 더 힘들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 일례로 자신이 회식장소를 정하라는 미션을 받았던 때를 이야기해주었다. 대부분 술자리를 위해 고깃집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그녀는 터키 음식 전문점을 택했다고 했다. 그녀의 선택은 그 동안의 관행을 깬 것이기에 다들 놀라워했다고 한다.


  물론 적절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을테지만, 그녀는 오히려 자신 덕분에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게 된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을 했다고 이야기 했다. 그의 예상대로 누군가는 입을 삐죽였지만 누군가는 새로운 경험이었다며 만족해했다. 물론 일원으로서 조직 공동의 목표를 해쳐서는 안되지만 발전에 도움이 되거나, 공동의 이익에 해가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시도는 분명 긍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걸 시행하지 못하고 내내 지적 속에 움츠러들었던 나와는 달리 친구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내비치고 있었다. 물론 그런 '똘끼'를 이해해주는 관리자의 비호가 있긴 했지만.


  그 전에 만났던 지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 역시 관행에 맞추어 움직이기보다 자신이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방법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도 일명 '꼰대'라 불릴만한 상사와의 갈등을 겪은 일이 있었는데, 그 상사는 작성한 보고서의 내용보다 틀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상사에게 불만이 가득하던 어느 날 다짜고짜 상사가 그를 불러서는 줄간격이 맞지 않고 문장 정렬이 엉망이라며 그의 보고서를 지적했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을 이미 예상했던 그는 오히려 상사가 보고서 내용을 읽어봤느냐 물었다. 그리고 내용이나 결론이 아닌 왜 형식에 구애받는 게 중요한 건지 따져물었다. 결국 자신이 읽어 보지도 않고 대략 유추했던 내용과 다른 결론이었다는 걸 깨달은 그 상사는 말싸움에 밀리며 크게 당황했고, 얼마 뒤 그의 책장에는 이 책이 새로 꽂혔다고 한다. 바로 그 유명한 책, '90년생이 온다'였다.



그 동안 나는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남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래 다 그런거지.' 라는 말로 덮기엔 서러운 점이 많았다. 오랜 경험을 가진 직장 선배들은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로 시작해 '그까이꺼 별거아니야'라는 말로 끝맺었다. 경청의 자세는 하급 직원인 나에게 할당된 임무였다. 듣기 싫어도,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고 싶어도 표정 하나 흐트러트리지 못했다. 철저히 가면을 쓰고 웃으며 그들의 말에 수긍할 뿐이었다. 조직은 개개인의 불평불만을 전부 수용할 수 없었고 그런 이유로 입을 다물어야 하는 때가 많았다. 모든 하급 직원들이라면 한 번쯤은 겪었을 상황이다. 억울하게 참아야 하는 그런 순간. 앞에선 '싫어요'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뒤 돌아서서 상급자나 동료 욕을 해야했던 시간.


  어쩌면 조직이 잘못해서 또는 팀장님이 무능해서가 아니고, 선배가 꼰대라서가 아닌 '내 잘못'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주고받으며 나는 그 동안의 상처들을 친구에게 담담히 털어놓았다. 공무원 사회는 오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었고 그 조직 구성원들은 대체로 지시에 순응적인 성향이며 변화에 혁신엔 확실히 둔감하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적극적이고 새로운 시도에 별로 겁이 없는 나는 누군가엔 분명 위협적인 존재였다. 남들의 시선을 무시하기엔 두려운 게 많았던 나는 긴장 속에 살아야 했다. 미움받을 용기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그런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며 위로해주었다. 그녀도 나도 내가 처한 환경이 쉽게 바뀌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해결할 수 없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닥 순응적이지 못한 내가 앞으로도 한 동안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 또한 뻔히 그려지는 그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분명한 조언을 내게 남겼다. "벽지니 뭐니 그런 말 신경쓰지 말고, 너 하고 싶은대로 살아!"


  그 말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세상을 어쩌지 못하겠지만 세상도 나를 어쩌지 못한다.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못할 손가락질과 조언에 휩쓸려 상처받는 일은 없어야 마땅하다. 적당히, 세상과 그리고 나를 향한 무언의 압박과 거리두기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련다. 당장 바꿀 수 있는 건 많지 않겠지만 그 거친 풍파에 나 자신만큼은 무너지지 않고 단단히 살아남으리라.


Yellow card.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B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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