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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Apr 17. 2021

낚시꾼의 기다림

인생이란 낚시터에서 물고기를 기다리며

- 아저씨, 물고기는 언제 나와요?
- 영원히 안 나오는 날도 있지.
- 그럼 낚시를 왜 해요?
- 일종의 복수 같은 거야. 오늘 안잡혔으니 내가 다음 번엔 꼭 잡고 만다 하는 거지.
- 그럼 잡힌 다음엔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겠네요?
- 아니지. 다음에 또 잡힐 거란 희망이 있잖아. 그래서 또 하는 거지.
- 아.. 낚시를 하는 데도 일만 가지의 이유가 있는 거구나.

드라마 -밥이 되어라- 대사 중


  어린 시절 나는 낚시를 좋아하는 어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낚시꾼들은 하릴없이 고기가 잡히길 기다리며 먼 곳을 응시하다가 이따금씩 낚시대의 동태를 확인했다. 원하는 때에 물고기를 건져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빈 손으로 돌아갈 때도 많았다. 그런데도 물고기 하나 잡겠다고 하루종일 물가를 서성이다니 좀이 쑤시지도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함도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이유로 낚시를 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해 본 적이 없어 그 재미를 알지 못했거니와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널린 게 생선인데 뭐하러 고생을 사서 하나 싶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낚시의 손맛을 알게 된 계기가 있다. 때는 2018년 1월 1일. 마침 온 가족이 모여 있었고 동생이 송어 낚시를 가자는 제안을 했다. 제대로 자연 속에서 낚시를 하는 게 아니라 양식장에서 체험을 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잔뜩 설레는 마음이었다. 차디찬 겨울바람 때문에 밖에 있기엔 날씨가 무척 추웠지만 추위를 견디며 얌전히 물고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3시간이 다 되도록 물고기는 잡히지를 않았다. 살을 에는 추위에 온 몸은 얼어붙었고 고기가 잡힐 거란 희망마저 사그라들었다.


  당시 새해를 맞이해 낚시 체험 하러 온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았는데 우리 가족을 포함해 다들 고기가 잘 잡히지 않아 잔뜩 실망한 눈치였다. 사람들이 제풀에 지쳐 하나둘 발걸음을 돌리려 할 때 쯤 낚시터에서 이벤트를 열었다. 아주 큰 통에 송어 몇 마리를 풀어두고 제한시간 내에 고기를 건져 올리면 잡은 것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지쳐 있던 사람들이 식은 죽 먹기라며 눈에 불을 켜고 모여들었다. 인원 수를 정해놓고 대략 4~5회에 걸친 이벤트가 진행되었다. 1회 당 제한시간은 1분. 그 안에 바늘에 물고기가 걸려야 했다.


  쉬울 거란 예상과 다르게 영리한 물고기들은 낚시바늘을 요리조리 피해 헤엄쳤다. 대부분 성공해서 고기를 잡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과 달리 사람들은 저마다 도망치는 고기를 쫓아가느라 바빴다. 물 밖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보니 물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물고기를 쫓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잔뜩 자신 넘쳐했던 이들도 빈 손으로 나오는 걸 봤다. 우리 가족 역시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까지 고기를 낚는 데 실패한 상황. 마지막으로 내가 도전하게 되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터라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낚시줄을 물 속으로 내리고 고기가 많은 곳에 가 줄을 흔들었지만 역시 물고기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잡힐듯 말듯 고기들은 내 낚시바늘을 피해 흩어졌다. 고기가 몰려 있는 명당자리도 차지하지 못했던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낚시줄을 연신 흔들어대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 덧 10초 정도 남았을 때였다. 요령도 없고 운도 따르지 않을 것을 직감하고 결국 낚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마음을 내려놓았던 그 순간, 물고기 하나가 내 낚시바늘을 덥썩 물었다. 그렇게 시간 종료를 5초 남겨놓고 건진 물고기에 감격하며 낚시줄을 들어 올렸다.


  내가 환희에 찬 비명을 지르자 멀리 있던 가족들이 달려왔다. 모두 드디어 잡힌 물고기를 마주하며 기뻐했다. 그 때의 그 성취감과 뿌듯함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정식으로 낚시를 해본 건 아니었지만 드디어 기다리던 순간을 맞았던 때 느낀 황홀한 감정은 내게 강한 여운을 남겼다. 그 날 물고기를 홀로 건져 올리며 나는 스스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올해엔 뭐든 잘 될 것 같다 하는. 그 알 수 없는 직감대로 나는 그 해 취업을 하게 됐다. 오랫동안 해온 공부를 드디어 끝내게 되었고 겨우 사람 구실하는 것 같다며 안도감을 느꼈었다.




그 뒤로 한 동안 나는 낚시대를 드리운 채로 살아온 것 같다.


  마지막으로 성취감에 젖어 행복한 순간을 맞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남들처럼 월요일과 출근이 너무 싫다고 읊조리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열심히 하겠다며 눈에 반짝임이 가득하던 과거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지금은 "제가 하겠습니다"란 대답 대신 "왜 제가 해야하죠?"라는 불평을 내뱉는다. 사사건건 걸려오는 시비에는 "죄송합니다"라며 쩔쩔매는 대신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간절히 기다리면 고기를 낚았을 때의 행복감은 희미한 기억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과 열정이 가득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남들과 엇비슷하게 뭐든 '적당히' 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지나친 과욕으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스스로 고생을 자처했던 경험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벽지처럼 살아야한다'는 어느 선배의 말처럼 무난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한편 주위에서 누군가가 주식으로 혹은 코인 투자로 대박났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나만 안된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마음이 울적한 나날이 반복되고 있다.


  그렇게 새로움과 즐거움 따윈 없는 하루가 반복되면서 나는 웃음마저 잃어버리게 되었다. 무생물처럼 생각이 거세된 채로 지내면 좋으련만 권태로운 일상은 사소한 것에도 예민해지게 만들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자리를 향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저 제자리에 앉아 있어야만 하는 현실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러자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하하기 시작했다. 온갖 SNS에 올라오는 남들의 화려한 모습과 나를 비교하며 내겐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 지었다. 뭘 해도 지금과 같은 삶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낚시에 성공했던 아련한 추억을 상기시킨 어느 드라마의 대사를 들으며 나는 잠시 추억에 젖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순간에 건져올린 물고기와 사진을 찍으며 행복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나는 지금 언제 잡힐지 모르는 나만의 물고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멀리 저 편에서 큰 고기를 잡았다며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물가를 서성이고 있다는 걸. 하지만 아직 나의 하루는 저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왠지 남들이 좋은 기회를 얻었다 싶으면 그게 부러워서 나도 저쪽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휘둘리게 된다. 그렇게 자리를 옮겨도 내게 운이 따르지 않으면 절망하게 된다. 나는 고기를 잡을 능력이 안된다는 자기비하를 하게 될 수도 있고 공연히 날씨 탓을 하거나 장비 탓을 할 수도 있고 옆에서 즐거워 웃는 사람들 소리에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다같이 행복하면 좋겠지만 항상 기쁨과 슬픔은 사람들 간 교차가 된다. 원한다고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불현듯 닥치는 게 행운과 불행이다.




언젠가 기쁨에 젖을 그 날까지 나는 얄미운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직도 고기를 낚지 못해 속상한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내 낚시대는 언제쯤 들썩이나 하는 조바심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런 속마음을 남에게 들키는 게 창피해 항상 음침한 곳에 숨으려 했다. 밝은 빛은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좀처럼 자신감을 갖지 못했다. 점점 남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다니게 됐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내 변화된 모습을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눈초리를 보낼 뿐이었다. 하지만 섣불리 모두에게 입을 열 수는 없었다. 괜히 사실을 토로했다간 마음에 상처만 남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물 밖에서 물고기를 기다리는 이상 요리조리 피하는 그 뒤를 좇아본들 고기가 잡혀주지 않으면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만나게 될 그날까지. 그 날이 오면 과거의 내가 그러했듯 더할 나위 없는 기쁨에 젖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울적하던 마음이 조금 괜찮아졌다. 다가올 미래엔 나는 반드시 물고기를 건져올릴 것이다. 남들이랑 비교해 아주 큰 크기가 아닐지라도 나는 그 순간의 황홀함을 잊지 않으리라. 오래도록 간절한 마음을 담아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가 불현듯 나타날 행운을 기다리려 한다.


그렇게 조금씩 해가 지는 인생이란 풍경 아래
차분히 물고기를 기다리며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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