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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Dec 10. 2020

Intro: 방황 끝에 찾은 길

series: 공무원으로 살아남기

  나는 국가직 공무원이다.

  

  스스로는 직업과 관련해 수식어를 붙이거나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지만 여전히 다른 누군가에겐 특별한 존재이자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크게 징계받을 만한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누구나 정년이 보장되어 일명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그런 직업. 특히 1990년대 중반까지 빠른 경제성장에 힘입어 정규직이 대다수를 차지했던 것과 달리 고용 불안정이 심화된 사회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다는 것은 특별한 지위에 놓인 셈이다. 그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공시생' 반열로 들어서고 또 많은 사람들이 걱정없이 편하게 일한다며 손가락질 하기도 한다.


  공무원을 영어로 번역하면 public servant 또는 public officer 이라고 표현한다. '공무원 윤리헌장'에 명시되어 있듯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흔히 일컬어진다. 공무원 임용 면접 때만해도 이 헌장의 내용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가난한 월급쟁이'라는 말이  가슴 깊이 와닿는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근로자로, 하라면 하라는 대로 일할 뿐이지만 큰 보람은 없는 '공노비 생활'이 벌써 3년째다. 공공에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뜻에 걸맞게 제 소임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은 윗분들의 요구사항과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게 벅차다 느끼기도 한다.


  흔히들 공직 사회는 경직되어 있다고 말한다.

  

  물론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의 운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법률로 개인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고, 해외(특히 일본) 사례를 참고해 관료제를 도입한 탓에 직급에 따른 연공서열이 우선시되는 문화가 뿌리깊게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사실 이러한 구조는 개인이 임의로 내린 의사결정에 의해 정책이 좌지우지되는 걸 방지하고 통일성 있는 결과를 담보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일부가 가진 편향된 의사나 잘못된 판단이 때론 나라의 근간을 흔들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악을 방지하기 위한 차악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대체로 '영혼 없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은 공직사회, photo by. 흔한여신


  현재 내가 맡은 업무도 그렇다. 기업 등에 수혜적으로 지원금을 지급할 때 모든 기준은 법령에 근거한다. 예산이 쓰이는 국가의 사업이기 때문에 절차적 공정성과 행위의 정당성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때론 현실과 맞지 않는 제도적 틀에 대해 부당함을 주장하는 경우도 많지만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의사결정도 바뀔 수 없다. 사실 일선 현장의 공무원들도 이러한 점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낙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해진 테두리를 개인이 바꿀 수 없는 이상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에 한계가 있다. 공익을 보호하고자 하지만 보호할 법익이 없는 그릇된 행위를 제재할 근거가 없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구제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뒷짐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월권은 적극행정의 사례로 추앙받는 게 아니라 감사와 징계의 표적이 된다.


  또한 대체로 기업들이 인풋 대비 아웃풋의 극대화 즉 효율성을 추구하는데 반해 공조직의 목표는 공공가치 실현에 있다. 그래서 외부 사조직에 비해 변화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공공의 필요에 대응하고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역할 등을 수행함에 있어 '속도전'에 휘말리지 않는다. 일반 기업과 달리 공조직은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거나 트렌드를 좇아야 할 필요가 없어 기존의 의사결정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편으로 쓸데없는 데 예산을 투입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즉 전에는 이렇게 해도 먹혀 들었다면 이미 변한 세상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결정하는 뇌관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


  물론 지금과 같이 정부의 역할이 다방면으로 뻗어 있지 않았던 시절,
  부패한 권력과 유착한 세력들도 있었다.


  때론 공정한 사회의 정의를 위한 심판자로서 때론 취약 계층에 대한 든든한 지원군으로서 소임을 다 해야했을 일부 선배들은 눈 앞의 제 이익만을 좇았다. 크게 비판받아야 할 행동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김영란법'제정 등 각종 감시제도 도입, 사회적 분위기 변화 등으로 인해 예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오히려 복지국가를 표방하며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행정 서비스 제공을 위해 전에 비해 더 업무 강도와 난도가 높아져 개인의 역량이 많이 요구되고 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사업도 가짓수가 늘면서 사실 일손이 더 필요해진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대중은 공직사회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어 때론 공익을 저해하는 '이익집단'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공무원을 만날 일이 흔치 않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고충이 있는지 어떻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지 잘 알지 못한다. 대신 미디어에서 그려진 소위 뻔뻔한 이미지 또는 제 일에 성심을 다하지 않고 무관심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연상하며 선입견을 가진 경우가 많은것 같다. 또 하나의 직업으로서 대우받기 보단 민원에 대한 봉사자라는 인식이 더 강한것 같다. 나 또한 그런 불편한 시선을 감수할 때가 종종 있었다. 언젠가 잘 모르는 이가 내게 사무실에서 가만히 앉아 일하는 게 뭐가 힘드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조근조근 답변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최곤데, 저는 요즘 앉아있는 시간이 적어서 힘들어요."


  편견이 두려워서인지 사실 직업이 자랑스럽다고 자신있게 얘기하기엔 외부의 시간이 따갑다 느껴지는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나는 잘 모르는 이들에게 직업과 관련한 편견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 직업을 숨기곤 한다. 특히 내가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외부활동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직업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 직업을 물어보면 그냥 "회사다니는 사무직이에요."라고 짧게 답한다. 공직생활이 사조직에서의 생활과 사뭇 달라 공감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적어도 남들과 비슷한 옷을 입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비춰지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서울 익선동, photo by.  흔한여신


 

  내가 경험한 공직사회엔 대체로 신기하리만큼 선량한 사람들이 많다. 서로 이야기하길 정말 시험보고 들어온 덕분인가 싶을 정도로 다들 모난 데가 별로 없다. 그리고 규칙과 질서를 지키는데 상대적으로 엄격하다. '안 되면 되게 하라'라며 불가능을 시험하기보다 '안 되면 안 되는 줄 알라'가 더 자연스럽다. 그래서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이 잠재되어 있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것 같다. 물론 변화에 미적지근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도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걸 주저하는 특성은 답답한 면이긴 하지만 이 역시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다.


  이미 많은 각 부처에 있는 다양한 공무원 동료분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신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달라진 공직사회의 변화상에 대해 상당 부분 소개가 되었기 때문에 그 생태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같은 맥락에서 평범한 직장인이면서도 사실 평범하지 않은 공직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겪고 있는 이야기를 앞으로 꾸려 가려고 한다.

  특히 아직 직장생활이 오래지 않은 이십대의 젊은 직원으로서 느끼는 소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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