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는 오늘의 생각,
미주알고주알. 일기장에 뱉어내고 싶은 말을 적은 글.
찌르고 뚫고, 하고 싶은 걸 다하고 있다.
어릴 때만 해도 피어싱 같은 건 조폭이나, 연예인이나 날라리 같은 애들이 하는 줄 알았지 내가 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문신도 마찬가지다. 문신이란 단어조차도 뭔가 위협적인 느낌이 든다 싶었다.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짙었던 편견이었지만 사실 내 안에는 그런 금기를 깨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랫 동안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생각에만 머물렀다. 뭔가 막 사는 거 같달까. 문신한 애들은 노는 애들 같아 보였고 나는 조신한 사회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미루고 미뤘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갇혀있다가
서른이 되고 나서야 오랜 빗장을 풀었다.
내 타투를 본 주위의 반응은 주로 ‘우와’ 또는 ‘헉’ 하는 분위기다. 특히 경직된 공무원 사회에서 브릿지 염색이라든가 탈색이라든가 하는 것도 그렇고 타투한 사람이 결코 흔하지 않다. 흥미를 가지는 이들은 좀 있어도 나처럼 대뜸 하고 나타나는 사람은 없다. 그런 것들을 하기로 결심한 건 급 ‘땡겨서’였는데, 이제 부모님한테 두드려 맞을 나이는 지난 것 같고 몸에다 뭘 좀 한들 남은 인생 동안 큰 후회는 없을 거 같았다.
조금 살아보니까 후회라는 게 사실 별 게 아니었다. 무슨 선택을 하더라도 가지 않은 길엔 늘 후회가 남았다. 그냥 평생동안 짊어지고 갈 짐 같은 거였다. 그걸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까닭에 그 동안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몇몇 친한 이들이 ‘왜 자학을 하냐’며 농담조로 이야기했는데 고통도 견디다보니 참을만 했다. 삶의 순간순간 더 고통인 때가 많았는데 신체 어딘가에 조금 염증이 생기는 정도야 괜찮다고 느껴졌다. 물론 평소에도 몸 관리에 철저한 편이라 위생이며 보습이며 잘 챙겨서 어느 곳 하나 별탈 없이 잘 아물고 있다.
그러니깐 뭘 하든 자기 관리만 잘하면 손가락질 받을 이유 따윈 없다. 저지르고 나니 이건 용기도 아니었다. 그저 하고 싶은 걸 했을 뿐이었는데 다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안타깝지만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거 같은 기분은 꽤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거 같다. 지금 짊어진 내 숙명이려니 여기는 게 나을듯 하다.
소설 읽는 재미가 엄청나다.
마지막으로 소설을 즐겨 읽었던 게 고등학교 때쯤이다. 벌써 10년도 전의 일. 그런데 늦바람이라도 난 것처럼 최근 들어 소설에 꽂힌 뒤로 모든 걸 뒤로 하고 새로운 읽을 거리를 찾아 헤매기 바쁘다. 웃음, 재미, 감동. 요즘 내 일상에 흔하지 않은 감정들이라 그런가 아주 푹 빠져들었다. 새로운 플롯을 접하면 더욱 몰두하게 되는데,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며 울었다 웃었다 하고 있다. 사실 오래 전부터 소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작은 꿈이 있었는데 많이 읽다보면 언젠가 한 걸음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오랜만에 다시 생각난 반가운 꿈이다.
그러다 보니 읽을 거리가 충분히 많아 내가 쓸 거리에 대한 생각이 현저히 줄었다. 영어 공부며 경제 기사며 공부할 거리도 넘쳐나는데 그것들이 눈에 잘 들어 오지가 않는다. 사실 적당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데 요즘 들어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많은지 마인드 컨트롤에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회사와 일은 변수가 아닌 상수에 불과한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벌어진 일들이 하루를 좌우하고 일주일을 좌우한다.
얼마나 이런 저런 것들이 신경이 쓰였으면 새벽 5시에 눈이 떠지는 바람에 며칠간 7시에 출근을 했다. 내 뜻과는 다르게 벌어지는 일들 앞에 수없이 좌절감을 느끼다가 퇴근 후엔 어느 새 소설 읽는 데 집중해 있다. ‘여름이라 이 모든 상황이 더 답답하게 느껴지는 걸 거야’ 하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다. 약간의 불안함과 초조함 속에서.
마음이 좀 힘들더라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사주쟁이의 말이 맞았던 건지, 그냥 그럴 때가 된 것 뿐인건지. 전만큼 기분이 날뛰거나 우울해 하는 일이 드물다. 간간이 짜증나거나 답답한 일이 있지만 부쩍 마음이 평온해진 게 사실이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될 대로 되라 하는 생각 때문인지 굳이 미련을 갖지도 않는다. ‘내가 했으면 좋았을 걸, 나한텐 왜 기회가 안 오지?’ 이런 생각보단 ‘기회는 운이 좋은 놈한테 갈 뿐이다’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오히려 나의 무지개빛 선명한 개성을 아무데서나 꺼내 보이진 말아야겠다 결심한 뒤로, 있는듯 없는듯 벽지처럼 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제가 하겠습니다’는 괜한 말로 전장에 앞장 서는 일은 결코 없다.
재밌는 건 내게 벽지처럼 살아야 한다고 조언했던 그 선배는 아직도 내가 벽지같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꽤 무채색인척 위장을 잘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그 검정색조차도 색감이 강렬한걸까. 종종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돌아선다. 하지만 선배, 저는 지금 누군가의 관심을 받기보다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지내는 게 더 중요하다구요. 속으로만 삼키는 말.
남들의 눈치만 보고 살기엔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라, 가능한 한 많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이래저래 머리를 쓰는 중이다. 직장인으로서의 프리미엄 같은 건 없고 특히 공무원이라 더 별로인 게 많은데, 유일한 장점은 자유롭게 근무형태 같은 걸 조정할 수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나는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목말라 하고 있다. 더 나은 환경을, 더 많은 자유를.
언젠가 이 지독한 갈증으로 갈라진 목을
축여줄 만한 단비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