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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Sep 04. 2021

실패가 남긴 것

오늘 하루를 기억 속에 붙들어 두는 이유

난 이 때 대체 뭘 한 걸까


  실패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그걸 겪게  과정들이 기억 속에서 지워진다. 실체는 뚜렷하지 않고 형체만 흐릿한 채로 머릿 속에 잔상이 남는다. '틀렸다' 결과에 충격을 받아  과정에서 흘렸던 땀방울 같은  추억하고 싶지도 않게 된다. 성공했더라면 내가 쏟아부은 노력들이 하나의 신화가 되어 누군가의 좋은 본보기가 되겠지만 실패한 경험담은 감추고 싶은 부끄러움이다. 내가 딛고 일어날 발판이라기보다 껄끄러운 감정의 집합체로  안에 가시가 되어 박힌다.


  지금까지 나는 실패한 순간의 수치스러운 감정은 또렷하게 기억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잘 기억하지 못했다. 무언가 사부작거리긴 한 것 같은데, 뭘 했는지 무슨 생각으로 한 건지 기억이 또렷하지 않았다. 그 실패를 하기까지 분명 어딘가에 열중해 있었던 거 같은데 결과가 나온 이후엔 과거의 기억이 지워진듯 흐릿했다. 그저 원망의 한숨만을 내뱉으며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을 뿐. 실패로 얻은 교훈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실패한 뒤에는 한 없이 무기력해지기만 했지 괜찮았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결과가 빤히 보이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잘 하는 것과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손쉽게 구분할 수 있었고 애매한 경우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보고 뒤로 물러섰다. 내게는 유저들과 함께하는 온라인 게임이 그랬다. 전투에서 질 게 뻔해서 게임을 즐겨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선호했다. 경쟁할 필요가 없으니까 승패 여부와 관계 없이 오롯이 게임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움츠러든 채로 살아왔다. 실패를 통해 얻는 교훈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며, 그 쓰라린 경험을 기억 속에 묻어둔 채로.


출처 Mark Airs/Getty Images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다.


  시도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좀처럼 용기가 나지 않아서 새로운 도전을 주저했던 내가 결국 모험을 결심했을 때, 나는 그 순간들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불량품들은 쓰레기장에 던져 버리면 그만이다 생각해 왔는데, 지난 삶을 돌아보니 불량품이 생기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늘 어딘가 고장나 있거나 엉뚱하게 움직였고 그렇게 계획과 다르게,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갔다. 뒤틀려 있었던 건 내 생각이었다.


  실패를 감추고 잊으려고 한 행동은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키웠다. 실패를 통해 얻은 건 쓰라린 경험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내 착각이었다. 좀더 차분하게 들여다 보면 어떤 부분이 부족했던 것인지 눈에 보였고 그 진단결과를 바탕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겁이 많았던 나는 실패로 인한 낙담이 더 컸고 그렇게 오답을 정정할 기회를 종종 날리곤 했다. 오답을 지우고 새로운 답을 적기가 못내 꺼려졌던 나는 다른 문제를 푸는데 열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오답노트를 쓰는 건 익숙하지 않은 나였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틀렸다면 왜 틀린 것인지 부딪혀 보기로 결심했다. 비록 그 끝이 성공적인 결말이 아닐지라도 달려왔던 모든 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두자고 마음을 먹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에 실망하기보다 과정을 세밀하게 기억하고 기록하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인생의 오답노트를 써 볼 결심을 했다.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표를 받은 데는 틀림없이 그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나쳐 온 과정은 결코 헛된 게 아니라고.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www.cydcor.com/blog/2020/07/5-lessons-on-how-failure-leads-to-success/


넘어져도, 나는 괜찮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카메라를 켠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스스로 열정을 불태웠던 작은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어서. 브이로그를 만드는 겸 조금씩 영상을 찍는다. 남들에게 공개하기에 썩 유쾌한 콘텐츠는 아니다. 나에게 의미 있는 기록에 불과하지만 기록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훗날의 내가 무척 그리워할 순간이 될 수도 있기에 나는 결과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과정도 기억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니 어떤 결과에 대해서도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지나온 과정 속에 분명 찾고자 하는 해답이 있을테니 결과가 어떻든 괜찮을 자신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오답노트를 쓴다. 글로, 영상으로 미래의 내 자신에게 전할 말들을 기록한다. 조금씩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고, 더 나은 내일을 맞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떤 결과에도 실망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하고 또 기억한다. 어제의 잘못과 오늘의 실수를. 그리고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나를 향해 박수를 친다. 미래가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은 잘 버텨냈다고. 그것만으로 오늘은 충분했다고.


결국 내일의 내가 눈앞에 놓인 허들을 가뿐히 뛰어넘기를 바라며, 언젠가 그 허들을 뛰어넘기 위해 오늘도 허들에 걸려 넘어진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넘어진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으니까.


www.ceotodaymagazine.com/20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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