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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Nov 06. 2021

터널 속에서의 사색

기나긴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걸으며 느낀 생각들

많은 게 달라지길 바랐던, 하지만 그닥 새로울 건 없었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 많은 결심을 새롭게 했다. 이번 년도 처음 시작 때만 해도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아직 찬 바람이 쌩하게 불던 그 때의 나는 전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시간이 흐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봄 나는 그 동안 미뤄왔던 해묵은 결정을 드디어 내렸고, 오랜 사랑에 마침표를 찍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10년이나 흐를 줄 모르고 시작했던 마음은 드디어 이별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였다.


  그 즈음 지금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도 확고해졌다. 하지만 지루하게 돌아가는 쳇바퀴 밖을 벗어나 볼 결심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뒤따랐다. 겉보기에 대수롭지 않은 결정으로 보일 지도 모르나, 나에겐 매우 중차대한 문제였다. 안전지대를 탈출하겠다는 결심의 뒤에는 자신감이 아니라 우울함과 절박함이 자리했다. 지금 서 있는 이 곳이 낭떠러지나 다름 없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지배할 때였다.


  그렇게 한 걸음씩 새롭게 나아가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 한 걸음을 새로이 떼는 것조차도 늘 조바심이 났다. 잘 선택한 일인지 몰라 걱정스러웠고 온통 오답만 써내려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기 일쑤였다. 스스로가 해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없다 보니 실바람에도 마음은 쉽게 울렁거렸다. 부정적인 사고가 얼마나 강했던지, 세웠던 목표 중엔 '하루에 한 번 이상 긍정적인 생각하기' 같은 게 있었다. 


  휘청거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씩 보이지 않는, 하지만 걷다보면 보게 될 지도 모를 희망의 빛을 상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조금씩 걸어나가다 보면 미래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을 지도 모른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그 어두운 심정을 토로할 새도 없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죽을 만큼 내 모든 걸 바칠 만큼 대단하게 노력한 것은 아니었다. 내 마음이 갈지자로 흔들리느라 놓친 시간들 속에 어쩌면 잡을 수도 있었던 아쉬운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출처 푸샵.com


칼에 베인듯 아팠다.


  올해에 도전장을 내민 것들에 대한 성적표를 받아본 뒤, 나는 다시 한 번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그런 힘든 순간에 예기치 못한 일들은 닥쳐왔고 자꾸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에 속상함이 더해갔다. 자잘한 실수들이 반복되어 문제가 생겼고, 회사 내의 인간관계도 매끄럽지 못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순간이 찾아오리라는 예고 하나 없이 들이닥친 시련은 무너진 마음을 더욱 잘게 부숴버렸다.


  처리한 일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된 이후 지적과 질타가 내내 이어졌다. 부끄러움과 자괴감에 어쩔 줄 몰라했던 나는 벼랑 끝에 매달린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삶이 풍요롭지 못해서라고 둘러댔지만 마음 속 감정을 조절하는 레버가 마치 고장난 것만 같았다. 감정을 추스를 새도 없이 일이 터지고 또 터졌다. 새어 나오는 물줄기 하나를 막으면 다른 둑이 터져버리는 것과 같은 악순환이 반복됐다.


  다행히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아 준 사람들이 곁에 있었지만 홀로 감당해야 하는 몫 또한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어둡게 변한 마음은 자책을 하며 더욱 우울함의 늪에 빠져들었다. 반성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는 성찰의 계기가 된 것이 아니라,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 것이다. 나는 내 발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진흙에 발을 담근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불안감에 허덕이는 밤이 시작됐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더 이상 괜찮다는 말이 괜찮지 않아졌다.


https://kshouseofdelights.quora.com/


새로운 봄이 찾아오게 될까


   슬픔에도 색이 있다면 나는 아주 짙은 검정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미술 작품의 색이 바래지듯 슬픔의 색도 시간이 지나면 바래진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는 게 맞을까 싶을 만큼 더디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답답함이 지워지지 않는 때가 있다. 언 땅이 언제 녹아 푸르른 잔디로 변하게 될지 기약조차 되지 않는 그런 나날이 있다. 바로 '버텨야 하는' 시기인거다. 얼음이 단단하고 차갑게 느껴질수록 봄이 머지 않았다고 하지만 내 눈엔 결코 그렇게 보이지 않기에 다음이 있을 거란 믿음이 생기지가 않는다.


  한 동안 불안감에 허덕이던 나는 결국 평소답지 않은 행동과 선택들을 연이어 했다. 그런데 그 마저도 후회할 무렵 우연히 새로운 시작의 끈을 붙잡게 됐다. 다시는 인생의 봄날 같은 건 찾아오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깊은 절망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였다.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는 한 마디가 절실했던 순간, 조심스럽게 마음의 문을 두드린 이가 있었다. 달갑지 않은 손님일까 싶어 처음엔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예상외로 좋은 객()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지나쳐 갈 이가 아니라 오래 머물지도 모르는 특별한 손님이 될 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 정도로.


바래진 물감 위로 새로운 색이 덧입혀 진다.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가는 지금 내가 목표한 것들 중 어떤 것도 잘 갈무리 해냈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어지러웠던 마음은 조금씩 정리가 되어가고 있다. 텅 빈 속에 조금씩 따뜻한 볕이 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휘청이다 균형을 잃고 넘어진 몸에 잔뜩 묻은 먼지를 털고 이제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시 내디디는 걸음은 부디 불안함에 젖어있지 않기를 바라며. 무리하게 달려 나가기보다 단단한 걸음으로 씩씩하게 나아가길 기대하며. 곧 찾아 올지도 모르는 또 다른 봄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https://www.farmersalmanac.com/spring-equinox-first-day-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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