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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Sep 12. 2021

직장생활 탐구생활  #1. 오만과 편견

달라도 너무 다른 그 놈

뫼비우스의 띠


내부수신
07**


  오늘도 아침부터 우렁차게 벨이 울렸다. 고요한 아침시간을 맞이할 겨를도 없이 울려대는 소리가 참 야속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로 전화기 표시창에 뜬 번호를 쓱 보니 익숙한 번호다. 아, 전화하지 말랬는데, 또 귀찮게 하네. 얼마든지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메신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뜸 전화부터 걸고 보는 이였다. 이미 그에게 몇 번이고 문자로 대화를 하라고 성화를 부렸지만 겨우 들은 체만 했다. 키보드 너머로 나누는 대화는 좀 답답해 하는 이 발신인은 얼마 전까지 같은 팀에 있었던 동료이자, 1년 반 넘도록 나와 아옹다옹하며 지내는 사이다.


  무시할까 하다가 어짜피 받을 때까지 연락이 올 게 분명해 받기로 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잠시도 못 참고 어디 가 있었냐며 들쑤시는 이였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곤 낮은 목소리로 전화하지 말랬지라고 했지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듯 웃는 소리가 들린다. 너는 매번 전화할 때마다 한숨 아니면 짜증이더라는 구박을 하더니 이내 용건을 얘기한다. 또 질문의 연속. 지난 번에 분명 설명해준 내용인데 또 까먹고 물어본다. 순간 짜증이 치밀어 소리를 지를 뻔한 것을 참았다. 대신 깊은 한숨을 내쉬며 또 까먹고 물어보냐며 일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는 절대 지지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상대는 크게 신경쓰지 않으니 화를 낸들 내 속만 뒤집어질 뿐이다. 한편으론 그의 무신경함이 다행이다. 뒤집어 말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받아줄 수 있다는 뜻이니까.


출처: The New York Times / Marion Fayolle


  하는 수 없이 또 고분고분 묻는 말에 답을 하기 시작한다. 귀찮게 굴면 짜증부터 내고 보는 성격을 애써 억누르며 보이지도 않을 얼굴에 대외용 미소를 장착한다. ‘그럼, 지난 번에 말해줬어도 다시 해줘야지. 그걸 다 기억하면 천재지.’ 라고 생각하며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차분히 설명을 이어 나간다. 그런데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하나를 물어보면 둘을 아는 게 아니라 하나의 답을 들으면 나머지 아홉 개도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본다. 질문지옥이 열리는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참을성이 바닥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말투엔 날이 섰다. 침착하게 답변을 해주던 차에, ‘아, 이건 분명 미리 말해줬던 내용인데 하나도 기억을 못하네?’ 결국 참지 못하고 우렁차게 내질렀다.


야EC! 그만 물어 봐!


  결국 또 내뱉고 나서 후회했다. 입 밖으로 그 말이 나오자마자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편한 사이이기 이전에 여긴 사무실이고 그는 직장동료라는 사실을 또 잊은 것이다. 밀려드는 자책감 때문에 다시 고분고분한 자세로 그의 말을 듣는다. 물론 내가 언성을 높이든 말든 신경도 안쓰고 제 할 말을 하는 그지만, 또 혼자 미안해해서는 그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질문이며 하소연이며 들어주었다. 욱하지 말자 그렇게 다짐했건만 또 다시 성질머리를 드러냈다. 고쳐야지 해도 나의 그 불퉁한 단면은 쉽게 둥글어지지가 않는다. 특히 그런 뾰족함을 받아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더욱 제멋대로가 되는 버릇이 있다.


출처 영화 pride and prejudice


그는 천성이 타고난 장난꾸러기다.
그리고 나는 그런 어른답지 못한 면을 싫어했다.


  그는  초등학교  보던 친해지고 싶어 괜히 놀리는 개구쟁이처럼 군다. 철부지 같은 그의 장난을 보면서   어른이 되어 저게 뭐람 하는 생각을    두번이 아니다. 나에게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공평하게(?) 장난을 많이 친다.   놀리기 시작하면 목표로한 먹잇감이 지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습성이 있다. 제주도 여행 얘기를 하다가도 뜬금없이 날더러 흑돼지를 닮았다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 이다. 같은 초딩도 아닌데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욱하곤 했다. 멱살은 잡지 않았어도 그럴 기세로 달려들어 뭐라 쏘아 붙이곤 했다. 하지만 그는  한마디를 지지 않고 받아치는 데다가 얄궂은 장난이 끊이질 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진심으로 얄미웠던 탓에 아는체도 안하고 지나친 날들이 많았다.


  몇 번 그런 싸움이 반복되자 진부한 싸움이 짜증났던 탓에 그가 근처에 오기만 하면 자동으로 가자미 눈이 됐다. 있는 힘껏 인상을 쓰고 앉아 있으면 말이라도 안 걸까 했는데 전혀 효과는 없었다. 내 기분이나 표정이 어떻든 그는 상관하지 않고 인사를 건네는 등 내게 아는척을 했고, 나는 최선을 다해 그를 무시하려고 애를 썼다. 한 몇 달 간은 그 노력이 통했다. 좀 서먹하다 싶을 정도로 서로 쌩하게 지나쳤고 나는 그를 다행으로 여겼다. 한 달 전 쯤 그가 다른 팀으로 옮기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대화가 끊긴 상태였다.


https://living.aahs.org/behavioral-health/prejudice-and-mental-health/


  그가 옮긴 팀은 전에 내가 일했던 팀이었다. 인수인계를 해줄 전임자도 멀리 떠나 버린 상황에서 그가 의지할 곳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곧 산더미 같은 일에 파묻혀 있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그냥 무시해도 됐지만 이전 팀에 대한 그리움과 그에게 든 미운정 때문이었을까, 차마 눈 감고 등 돌릴 수가 없어 조금은 도와주기로 마음 먹었다. 스스로 결정한 일이었지만 상당히 떨떠름했다. 하지만 그 때는 몰랐다. 나쁘게만 생각하고 별로라 생각했던 건 그의 단면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런 편견에 갇혀 그를 제대로 보지 않으려 했다는 것을.


  잦은 S.O.S 요청에 억지로 자리로 갈 때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아니면 잔뜩 미간이 찌푸려진 채로 그를 마주했던 것 같다. 볼 때마다 표정이 대체 왜 그 모양이냐는 얘기에 왜 사람 표정 가지고 지적질이냐며 발끈하곤 했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건 나였다. 사람 대하거나 일을 할 때 집중한다며 종종 표정이 굳어 있거나 미소 하나 없는 것은 큰 잘못은 아니지만 내세울 건 아니었다. '그래, 무언가에 좀 지치긴 했어도 그건 다 남들 잘못으로 돌릴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저 인간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고 가차없이 귀를 닫아버렸지만 그는 결코 쓸데없는 지적을 하진 않았다. 사실 너무 정확한 말이라 대꾸할 것도 없었다. 언제 한 번은 선배에게 한 소리 들은 게 내심 서운해서 너무 사소한 것 가지고 지적받는 게 기분 나쁘다고 털어놨다. 그러니까,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듣자마자 혼자만 피해자인 척 하지 말라는 대답이 날아왔다. 그 말에 더욱 기분이 나빠지려던 찰나, 그가 말을 덧붙였다.


너는 모르지? 너한테만 지적하는 거라 생각하지. 근데 사실 그 선배는 모든 후배들한테 다 그래. 부족한 게 눈에 보이면 그걸 딱 꼬집어 얘기해. 다른 사람한테 뭐라고 하는 걸 네가 들은 적 없을 뿐. 특별히 너만 미워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지 마. 그리고 사회생활이잖아. 예쁨만 받기를 원했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꼬아서 생각한 건 내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그의 말에 더 이상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 선배에 대한 악감정도 사라져 버렸다. 왜냐면, 진정한 바보는 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출처 영화 pride and prejudice


여전히 그에게는 으르렁대며 지낸다.


  그에게만큼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열렸다. 그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이 생긴 뒤로 조금 귀찮게 구는 것을 봐주기로 했다. 여전히 가끔 재수없는 말로 기분을 상하게는 하지만, 지금은 그가 진심으로 악의있는 말을 던지는 게 아니라 그의 방식대로 누군가와 친해지는 과정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에게 쌓아둔 마음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나니 더욱 성질머리 고치기가 힘들어졌다. 내가 무슨 소리를 뱉든 별 의미 없이 받아들이는 데다가 진짜로 내게 상처가 될 말은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가끔은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끌어모아 퍼붓는다. 물론 또 다시 후회하고 상냥해지는 과정을 반복하지만.


  나와는 별로 닮은 구석이 없는 그가 여전히 낯선 존재지만, 한편으로 재밌다. 다른 그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나 역시 그의 무던함 덕분에 많은 걸 배우고 있으니.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에게는 으르렁댈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전만큼 밉지 않다. 편견을 벗고 진심을 아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스스로의 오만함을 깨닫던 순간 마음의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아마 내일도 내일 모레도 그는 전화를 걸 것이다. 그렇게 그와는 쭉 아옹다옹하며 지내게 될 것이다.


좋지 않은 과거의 기억을
머릿 속에서 훌훌 털어버린 채로


출처 Harvard Business School, Steps to Help You Get Out of Your Own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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