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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Feb 19. 2022

일하는 삶의 무게

달라진 삶의 이정표와 그 후의 이야기 #1

끝없이 펼쳐진, 어두컴컴한 터널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전근으로 근무지를 옮기기 전에도 지금과 같은 업무를 담당했었다. 기업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업무. 표면상으로는 어려울 게 없다. 요건에 맞는지 검토하고 돈을 지급하기만 하면 되는 일. 다만 감당하기 어려우리만큼 많은 양의 지원 신청서가 들어온다는 것 그리고 정말 다양한 사업장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게 참 이 업무의 힘든 점이었다. 수많은 사업장의 다양한 사람들을 겪어보니 같은 설명을 해줘도 한 두번만에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을 반복해 설명해줘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을 하면서 보람찬 순간이란 내가 어떤 것에 기여했더라는 뿌듯함을 느끼는 것인데, 전에는 도통 일 하면서 그런 순간을 만끽한 적이 없었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도 우울하긴 마찬가지였다. 담당자로서 사업장 관계자랑 연락할 일이 많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고통스러웠다. 의사소통이 생각만큼 원활하지 않았고, 어떠한 보람도 일절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감사하단 인사는 한 손으로도 꼽을 수 있을 만큼 들어본 일이 없었고 안 되면 담당자 탓, 잘 되면 자기 덕분이라는 식의 사업장들이 많았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자 나는 스스로가 숨만 붙어 있는 시체같단 생각이 들었다.


https://devpolicy.org/global-aid-transparency-data-darkness-20160705/


조금만 말실수를 해도 꼬투리 잡히기 일쑤였다.


  나 역시 사람인지라, 때로는 잘못 보거나 잘못 이해해서 잘못 이야기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실수에 대해 사업장 관계자들은 결코 관대하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 겪는 우리 사정을 편히 앉아 있는 네가 감히 알겠느냐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설움에 복받쳤다. 하지만 선배들은 그런 말들을 버티는 것도 일이라고 했다. 못 버틸 거면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나가는 것만이 답일까. 바꿀 수 있고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 결국 처음엔 의욕이 넘쳤던 나도 지쳐갔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질수록 목소리에도 힘이 빠졌다. 아니 사실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끝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무기력해 있었다.


  한편 정부는 지원 규모에 신경 쓸 뿐 그걸 실제로 처리하는 이들의 감정노동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철밥통이라는 사실이 가장 서러워지는 때가 바로 이 때다.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하기싫어병'에 걸리고 말았다. 뭐든 하기 싫다는 생각부터 드는 병. 옛말에 노비를 할 거면 대감집 노비가 낫다고 했는데, 공노비에 대한 말은 없는 것을 보면 내 선택이 처음부터 틀렸나보다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일에 대한 자긍심조차 생기지 않는다면 내 삶은 무엇으로 굴러가란 말인가. 그런 생각에 가슴이 사무칠 때면 소리 없이 울곤 했다.


https://kidadl.com/articles/best-darkness-quotes-to-help-you-find-the-light
마침내 일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그렇게 달라 없을 거라고 믿었던  하루에 변화가 생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윽박지르는 소리가 두려워 말투가 정내미라곤 없이 딱딱해졌고  때문에 선배들에게 한소리 듣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사뭇 공격적으로 들리기도 했던 말투엔 다시 부드러움이 담겨있다. 상대방의 날선 태도에 움츠러들곤 했던 마음이 다시 차분해졌다.  이상 전화를 붙잡고 씨름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지원 신청에 필요한 구비서류들은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고, 지원이 어렵다는 전화에도 크게 화를 내는 사업장이 없다.   아닌  같은 일이지만, 내게는 크고도 감사한 변화다.


 삶에 대한 감사함과 여유로운 마음은
좋은 환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전에 마주했던 사업장들은 규모가 영세한 경우가 많아, 사실 기업이라기보다 자영업자에 불과했다. 그렇다 보니 지원금에 크게 기대려 하는 사업주들이 많았다. 정부 지원금이 그들에겐 매출액의 일부와도 같았던 것이다. 지원금은 자영업자와 규모 있는 기업을 크게 차별하지 않는다. 모두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당자 입장에서 사업장이 종사하는 업종과 규모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한 건의 처리가 얼마나 수월하느냐에 따라 업무의 피로도가 다르니까. 지금 새로 맡게 된 담당 지역의 사업장들은 전에 비해 규모가 크다. 그만큼 내 설명을 헷갈려하지도 않고 내 실수에도 관대한 경우가 많다. 감사하단 인사도 인색하지 않다.


이제야 숨통이 트인 기분이다.


https://captainjaq.com/2020/07/20/on-the-search-for-the-silver-lining/


  돌이켜 보니 내가 너무 많이 참았나보다. 힘들면, 그래서 버티기가 어려우면 그냥 쉬어가는 법도 있었을텐데, 버티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너무 갇혀 있었다. 그거 하나 못 버티느냐 하는 시선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 내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다.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다 지나고 나니 그제서야 보인다. 버틴다는 게 언제나 현명한 해답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주변 사람 그 누구도 내게 쉬어가라고 조언해준 이가 없었다. 다들 이게 '사회생활'이라고 말할뿐이었다.


 지나고 나서 좋았던 기억은 '추억'이라 이름 붙이고 나빴던 기억은 '경험'이라 이름 붙인다고 한다.


  내게 지독히도 고통을 안겨주었던 지난 1년. 서러움을 속으로만 삼켜야 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을 지나 이제 빛이 내리쬐는, 터널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In to the unk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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