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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Apr 15. 2022

그저그런 월급쟁이의 삶

시소같은 삶을 견디는 것에 대하여

내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오른다.


  알바를 하던 시절엔 월급날이 기다려지곤 했다. 알바비로 이번 달엔 뭘 사야지 하는 소소한 생각으로 온종일 들뜨곤 했다. 그 어린 날엔 내가 책임질 게 많지 않았다. 앞으로 먹고 살 걱정 같은 걸 하기엔 이른 나이였다. 아직은 꿈을 꿀 수 있는 나이였고 나아갈 방향도 무궁무진했던 시기였다. 그 때에도 힘든 점이 아주 없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삶이 버겁다 느끼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서른이 넘은 지금은 눈앞이 캄캄해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매달 월급 날이 되면 답답함이 차오른다. 갈수록 물가가 올라 입이 바싹 마르는데 찍히는 숫자는 매번 큰 차이가 없다. 통장에 숫자가 찍히기가 무섭게 잔고는 금세 쪼그라든다. 카드값과 적금 등 나갈 돈들이 많다. 다들 비슷하겠지 싶어 주위를 보면 나랑은 찍히는 숫자의 앞자리가 다른 경우가 많다. 뉴스에는 더 대단한 월급쟁이들의 통장내역이 소개된다. 이 정도면 정부 지원금 같은 건 받을 자격이 되는 것 같은데 또 그런 혜택에서는 철저히 배제된다. 아무리 그래도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렸는데, 돈 앞에서 치사하게 사람 차별하기 있나 싶어 기분이 나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통장에 입금내역을 보니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겨우 이걸 벌자고 그렇게 고생을 했나 하는 생각에 분노가 은근히 치민다. 쳐다본다고 오를 리 없는 숫자가 기분 나빠 급여 명세서를 들여다 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게 벌써 한참 되었다. 뭘 사는 데도 비싸서 주저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더욱 회의감이 든다. 회사에 아무래도 정이 생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다 이 ‘숫자’ 때문이다. 사명감과 대의를 앞세우기 전에 뭐든 ‘밥심’으로 버텨야 하는 법인데 겨우 풀칠하고 사는 처지에 그런 자세가 바로 세워질 리 없다. 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다른 게 눈이 들어올리가.


출처 cru


돈 많은 백수가 꿈인데, 이번 생은 틀린 것 같다.


  수입은 늘 비슷한데 나가는 돈은 늘 예산의 마지노선을 넘을락 말락 한다. 하고 싶은 건 참 많은데 버는 돈이 그 욕심을 못 따라온다.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네 욕심을 없애야 돈을 모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욕심이라는 게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세상은 넓고 해 볼 것들과 탐나는 것들이 참 많기 때문에. 물론 ‘자린고비’의 정신으로 버텨보기도 했지만 마음을 비운다는 건 쉽지 않았다. ‘무소유’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보기도 했지만 힘든 하루를 보낸 다음이면 그런 다짐따윈 쉽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친 나를 위로하는 건 누군가의 토닥임이 아니요, 돈을 쓰는 것이었다.


소유와 소비는 내게 늘 즐거움을 안겨줬고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진리다.


Picture by Anja on Unsplash


  한창 20대, 패기가 넘치던 때에는 회사에서 무료봉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땐 희생정신을 발휘하는 게 신입으로서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그 때의 나는 누군가의 귀감이 되었다기 보다 으레 그렇듯 ‘시한부의 성실함’을 지닌 신입사원이었다. 그에 반해 지금의 나는 제 몸을 사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소극성은 통장의 숫자가 깨우쳐 준 신념이요, 매서운 사회생활의 풍파가 알려준 교훈이었다. 주어지지 않은 일에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또한 몇 번의 눈물바람을 통해서였다.


이제 나는 ‘그저그런’ 월급쟁이가 되었다.


  지금의 나를 채우고 있는  호기심과 열정 같은  아니라 권태로움과 무관심이다. 열심히 해야지 하는 다짐 같은  애진작에 사라진  오래다. 초년생 시절에는 공허한 눈빛의 선배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눈빛이 그들보다  흐리멍텅해져 있을지 모른다. 수차례의 실패 드디어 ‘적당히 미학을 알게  지금은 먼저 나서는 일이 없다. 선배들 말대로 삶의 즐거움은 회사 안이 아니라 밖에 있었고, 애를 쓴다 해도 되지 않을 일은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토록 갈망했던 자리를 덥썩 차지한 이는 이보다  최악일  없다며 이를 갈았고, 혹시 내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쓸데없는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될놈될 법칙에 따라 누군가는 대박이 터졌고, 나는 변함없는 일개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욕심 같은  사라졌다. 일을 잘하는 방법 따위를 고민했던 과거에는  능력을 어떻게 하면 펼쳐보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는  능력이 얼마큼인지 궁금해하는  아니었다. 나를 대체할 다른 부속품들은 많았고 내게 주어진 기대는 실수를 얼마나 적게 하느냐 정도일 . 회사와 나는 적당한 계약관계에 있을  서로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이대로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던 동기들의 말이 그제서야 가슴 깊이  닿았다. 그래, 바늘구멍을 통과한 실이라 그런지 가늘긴 정말 가늘었다. 그래도  가닥  이어붙이고 꼬아보면 제법 튼실한 동아줄이 되지 않으려나 생각했는데  조차도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회사는 나의 실수와 안일함에 결코 관대하지 않았다.   제대로 밥값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생활이 툴었던 내게 아주  상처로 돌아왔다. 그래서 더욱 나는 뒤로 물러나는 법을 배우게 됐다. 남들 눈에 띄지 않는 법을 익히는 데에는 약간의 서러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만큼 웃음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일말의 희망과 기대마저 지우고 나니 비로소 ‘벽지같은 사람이   있었다.


https://intermountainhealthcare.org/blogs/topics/live-well/2021/01/how-to-stop-constant-worrying/


세상 모든 것엔 가격이 붙어있다.


  물론 아직까지 가격이 매겨져 있지 않은 것들도 많다. 하지만 꽤 많은 것들엔 소유의 표시가 있고 그 가치를 나타내는 가격이 붙어있다. 사실 나의 월급이 내 값어치를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다시 속에서 불이 난다. 하지만 애써 잘못 붙은 가격표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내 잠재적 가능성을 이렇게 폄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만큼은 세계 일류의 가격표를 스스로에게 붙인다. 그렇게 상상이라도 하고 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 하지만 그런 상상이 허무맹랑한 자기 위안에 그치지 않도록 나설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뭐든 해야지 하는 다짐을 수십 번을 한다. 칼을 뽑았으면 아무렴 무라도 썰어야지. 꼼질거리는 몸을 견디기가 힘들고 또 힘들지만 개미의 번뇌는 사치스러운 거다. 누군가는 제 가격표를 부모의 힘에 기대어 다시 붙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격표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대로 스스로의 가격표를 바꾸는 여정은 참 험난하다. 장담할 수 없는 미래에 나는 제대로 된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그저그런 가격표를 떼고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열심히 일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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