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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un 29. 2022

좋은 선배

더 없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게 된 이유

벽지가 되어야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어.


  약 2년 전쯤 한 선배가 조언이랍시고 건넨 말. 너를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 때는 그 선배가 하는 말이면 다 맞는 말 같았다. 정답만 외치는 사람일 거라 믿었기에 내 생각과 가치관이 어떠하든 그 틀에 맞춰 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지난 해 그 선배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한 때 나를 애정했다던 그 선배는 다른 이들 앞에서 나를 ‘손절했다’고 얘기했다. 한 때 내가 믿고 의지했던 사람은 온데간데 없었고 지극한 줄 알았던 애정이란 한순간에 변해버릴만큼 '한 없이 가벼운 것'에 불과했다. 순진했던 내겐 큰 충격이었다. 꽤 다정한 선배라고 믿었던 그는 잔인하게 내 마음을 짓밟았다.


벽지는 무슨, 너하고 싶은대로 살아.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선배는 이렇게 말한다. 벽지가 되지 말고 그냥 네 자신이 되라고 했다. 벽지가 되지 못해 내가 틀린 게 아닌가 고민했던 시절의 불안감을 날려준 한 마디. 어짜피 오답이 아니라 또 다른 정답인데 뭐하러 벽지가 되려고 하느냐고 했다. 이 선배는 내가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남들과 조금 다른 결을 가졌다고 해서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고 했다. 그 동안 조금 '틀린 길'을 걸어왔다는 자책으로 힘들어하던 차에 이토록 속시원한 답을 듣는 게 처음이었다. 이제야 내게 맞는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이 답을 만나기까지 한참을 헤맸다.


the guardian


공무원 조직은 경직된 사회다.


  비단 우리 조직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다수의 조직이 연공서열과 수직적인 위계질서 하에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요즘엔 시대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한 측면도 있다. 모든 게 다 고리타분한 옛 방식 그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래도 따라야 할 고지식한 방식들이 존재한다.


  가장 힘들었던 건 내 직급과 연차에는 개인의 창의성 같은 자질보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더 우선시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합리적인 방법이라 해도 기존의 질서에 배치되어선 안 되고, 상부 보고 시에는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그런 이치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여지는만큼 개인이 목소리를 내긴 힘든 분위기다.


  그래서 거의 변화가 없다.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눈치보이는 일이다. 엉뚱한 생각에서 놀라운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미명 하에 자유로운 사고와 의견제시를 중요시하는 신종 기업들과는 결이 다르다. 그저 회의 시간엔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시받은 내용대로 빠릿하게 움직이면 될 뿐.


Live Science


  이런 분위기라는 것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나, 융통성 없는 조직문화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게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성과라 할 만한 것들이 없는 일이 대부분이라 보람이 별로 없는 데다가 내 숨은 노력이 빛을 발하거나 남의 눈에 띌 일도 없었다. 오색찬란한 빛이 되고 싶었던 내게 무채색의 환경은 꽤 가혹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 안엔 평온함과 나름의 소소한 행복들이 분명 들어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끼며 나는 남들보다 한 걸음 더 앞서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열정적으로 움직였다. 내 모습이 남의 눈에 좋게 비춰지길 바랐다.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선배들 눈에는 기가 차 보였을 거다. 조용히 시키는 대로만 제자리를 지켜야 할 이가 저리도 눈에 띄는 행동들을 하다니. 조직의 생리와 맞지 않다 여겼을 거다.


  벽지이론을 설파했던 그 선배는 너보다 잘난 사람이 수두룩하니 잘 하고 싶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해야 한다고 했다. 그럴수록 욕심이 생겼다. 혼자만의 길을 개척해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때는 그게 가능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그 생각은 나의 어리석은 희망사항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결코 부숴지지 않는 단단한 성벽에
내 온몸을 내던졌던 거다.


pinterest


처절하게 깨지고 부숴졌다. 너무 아팠다.


  욕심껏 재주를 부려 보려했던 게 실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었단 걸 깨닫고 나니 허망했다. 그렇게 1년 반 동안의 방황이 시작됐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로 이어진 고민은 끝도없이 나를 괴롭혔다. 선배의 조언처럼 ‘벽지’가 되는 건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기엔 장애물이 많았다. 내 중심축이 뒤틀렸다. 옳다고 믿어온 신념이 뿌리째 흔들리는데 조언해줄 이가 없었다. 방향을 잃은 채 이리저리 흔들리니 남들은 손가락질하기 바빴다.


  서른의 나는 사람에게 치여본 일이 많지 않아 마음이 여렸고 극단으로 치달아버린 관계에 쿨하지 못했다.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큰 상처를 받았고 긴 시간 스스로를 자책하며 지냈다. 사지가 멀쩡했으니 겉으로는 지쳐보이지 않았을 수 있지만 내면은 완전히 엉망진창인 상태였다. 그 시기를 보내는 동안 내 곁엔 마음을 다독여주는 이들보다 너는 왜 그 모양 그 꼴이냐며 야단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어두운 터널을 홀로 걷는 동안 참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




Esto quod es, 네 자신이 돼라


  좌우명처럼 삼고 싶어 몸에도 새긴 글자.  자신이 돼라는 의미의 라틴어 글귀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있기까지  길을 돌아와야 했다. 다행히 분노와 절망으로 얼룩졌던 마음이 치유되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의 인생을 책임지지도 못할 이들이 함부로 내던진 말들에 괴로워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준 이들 덕분에, 조금 튀어보이는 모습도 전혀 별나지 않다고 봐준 이들 덕분에 본래의 모습을 생각보다 빠르게 되찾았다. 밝고  웃고 조금은 엉뚱한  모습을 나도 아주 오랜만에 조우했다.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나는 다시 꽃을 피웠다.


the economic times


  집에 가고 싶다고 얘기하면 집에 가라고 하고 일 하기 싫다고 하면 적당히 하라고 말하는 선배. 힘들어서 칭얼대면 자기도 그렇다며 같이 수다 떨어주는 동료. 조금 부족하게 처리했어도 알아서 잘 다듬어주고 고생했다는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는 팀장님. 모든 게 너무 완벽하게 들어맞아서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상황. 전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나는 완전히 숨통이 트였다. 이제 더 이상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거나 집에 가는 걸 붙잡을 사람이 없다.


  구제불능이란 낙인이 찍혀 있을 때엔 그토록 제멋대로 굴고 싶었지만 지금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본다. 사람들에겐 배려와 공감을 앞세워 다가가고 모난 구석을 숨기고 최대한 좋은 모습만 꺼내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쓴다. 누군가의 괴로움을 그냥 지나치려 하지 않고 한 일원으로서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이게 다 좋은 관리자와 선배 그리고 동료를 만난 덕분이다. 좋은 사람들로 가득한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 이러려고 그 고생을 했나 싶을만큼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내게 벽지가 되지 말라 했던 선배는 이런 말을 추가로 남겼다.


그런데 말이야, 네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게 조직의 생각에 젖어 들지 않는거야. 나중에 후배를 만나면 그 후배 지적하지 말고 알아서 하게 냅둬야 해. 괴롭히는 선배가 있었다고 너도 남을 괴롭히면 안 돼.


  그래 나도 앞으로 좋은 선배, 좋은 사람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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