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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Aug 02. 2022

뿌리 없는 나무

창문 너머의 세상을 동경하는 직장인의 삶

아, 일하기 싫다.


  또 습관성 넋두리가 이어진다. 온종일 시도때도 없이 내뱉는 말. 그럼에도 속이 시원하지가 않다. 한창 취업준비생일 때 동경했던 것처럼 회전문이 있는 건물에, 갑자기 내 자리가 빠지진 않을까 하는 걱정 없이, 회사에서 제공하는 집에 살며 꽤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참 배부른 생각을 한다. 사실 잘 자고 잘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퀭한 채로 근심어린 하루를 보낸다는 게 참 역설적인 일이다.


  하지만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 내 마음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이 필요한 타이밍인 걸까하고 수 없이 고민해 보지만 답을 잘 모르겠다. 이런 마음이라면 어디서든 만족 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싶다는 갈증에 시달린다. 그렇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망설이는 동안 조직에 깊게 뿌리를 내린 선배들 눈에는 가소로운 후배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도 않은 주제에 감히 꽃을 피우려는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이 곳에서의 삶이 불안하게만 느껴진다.


여기가 내게 맞는 길일까 하는 고민을
여전히 떨쳐버리지 못했다.


https://psychologyconsultants.com.au/cant-sleep-try-a-worry-window/


방황의 시작은 가고자 한 길이 막히면서부터였다.


  처음엔 의욕이 너무 넘쳐서 탈이었다. 일을 너무 '잘' 하고 싶어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곁에 있던 선배들도 그런 나를 기특하게 여겼다. 그 때의 나는 순진했기에 이렇게 매사에 성실한 태도로 임하기만 한다면 곧 좋은 기회들이 주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기회는 쟁취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회사에 충성했던 때. 패기가 넘쳤던 신입 시절 나는 긍정적이었고 나 자신을 믿었으며 지금의 직장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하지만 원하던 자리에는 결코 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내 능력을 입증해 보여도 기회란 게 생각만큼 쉽게 오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바랐던 일들은 남들에겐 비교적 쉽게 일어나는 행운이었다. 그럴 때마다 사회생활은 내가 깎여나가는 과정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결코 지금의 자리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조금씩 실망이 커졌다. 그게 절정에 달했던 시기가 2021년도였다. 자유분방한 태도는 창의적이라는 평가 대신 이단아라는 평가를 받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버텨내며 나는 아예 의지가 소멸해버렸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 끝에 내게 돌아온 말은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출처 CNN


십 년 뒤의 나는 정답을 알고 있을까?


  직장생활에선 3,6,9를 기억하라고 했다. 그 주기에 맞춰 퇴사병이 찾아온다고. 그 말대로 나 역시 퇴사병에 걸려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약도 없고 답도 없는 병은 아무리 회사 바깥에서 흥을 충전하고 와도 치유가 되질 않는다.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도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답답함에 얼마나 목이 메이는지 모른다. 이미 조직에 제대로 뿌리를 내린 동기들은 내게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이렇게 편하게 좋은데.'라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지만, 나는 그 답변에 결코 웃을 수가 없다. 씁쓸한 미소만을 억지로 지을 뿐.


  그러다가 문득 지금의 나의 안정적인 지위에 대해서 돌아볼 때가 있다. 소위 '잘리지 않는 직장'에서 근무중이고 원거리 발령이라 회사에서 집도 얻어줬으니 이 정도면 나름 살만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물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무실에 앉아 시답지 않은 일에 매여 있는 내 자신이 꼴보기 싫다. 후배들에게 든든한 선배 노릇을 해야할 시간에 멍한 얼굴로 자리를 지키고만 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도전에는 전만큼 열과 성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 일과 병행하기도 힘들지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낼 수 없는 탓도 있다. 물론 다 핑계일 것이다.


하지만 죽도록 노력할 기운이 없는 건
체력 탓이라도 하고 싶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주를 보고 타로점을 본다. 뭐가 정답이려나 싶은 마음에. 그런데 보면 볼수록 헷갈린다. 어떤 점괘에서는 분명 이번에는 시험운이 있다고 한다. 올해 말 쯤에는 떠날지 말지를 결정하게 될 거라고 한다. 다른 점괘에서는 결과를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감당하기 버거운 운이니 좀 더 계획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이 말을 들으면 이 말이 맞고 저 말을 들으면 저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러니 더 오리무중이다. 오랜 직장생활을 버텨내는 힘은 과연 뭘까. 대부분이 말하는 '결혼생활'이 답인걸까. 아직 나는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좀 더 궁금한데 말이다.


https://arbordayblog.org/misctrees/five-trees-need-friend/


나는 아직도 먼 바다를 동경한다.


  망망대해를 떠도는  두려울  있다는  안다. 안주하는 삶이 한편으로 편안하고 막힌 듯한  답답함이 때론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안다. 뛰어난 환경은 아닐지라도  나쁘지 않은 조건임을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지금의 삶에서 열렬히 벗어나고 싶어한다.  나는 이곳에 깊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너머의 세상만을 동경하는걸까. 그런 생각을  삼아 살아가는 하루하루. 그런 걱정을 잊고 웃고 떠들다가도 다시 홀로 상념에 젖어들 때면 머릿 속엔 물음표로 가득찬다.


  오늘도 나는 피곤에 절은 듯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본다. 주변 사람들은 어제 잠을 잘 못 잔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들의 걱정과는 달리 매우 푹 잤다. 다만 수심에 가득찬 마음이 겉으로 드러났을 뿐. 언제쯤 나는 어딘가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내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늘 밤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별 헤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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