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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Sep 26. 2022

그리고 아무도 말이 없었다

고요한 회의시간이었다

50분


  업무분장 회의였다. 심도 있는 논쟁 같은 건 없었다. 결코 효율적인 시간활용이 아니었다. 해결해야 할 화두가 던져졌지만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말 없이 책상 위에 놓인 종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디게 흐르는 시간 속에 답답함만 더해갔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서로 자신이 조금 더 희생하겠다는 훈훈한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서로가 침묵만을 지키려고 한다. 그렇게 회의시간 내내 싸늘한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 것도 해결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이상하게 숨이 턱턱 막혔다.


  3개월에 한 번씩 바쁜 때가 돌아온다. 4월, 7월, 10월. 이 세 달은 연중 가장 많은 신청 건이 쏟아지는 때다. 그런데 4월에는 그래도 헉헉대면서 버틸만 한 정도였던 것 같은데 7월부터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일이 쏟아졌다. 열심히 업무를 쳐낸 다음 페이지를 새로 고침하면 또 다시 새로운 건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하다 보면 끝이 보이긴 했다. 그렇게 7월이 끝나고 나니 인사이동이 있었고 어찌된 일인지 내 일은 줄긴커녕 많아지기만 했다. 8월부터 9월까지 그나마 연중 신청 건이 적은 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숨이 턱턱 막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팀원들 중 내가 가장 많은 접수 건을 처리하고 있었다.


  숨가쁘게 정신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다 보면 기운이 쏙 빠졌지만 내가 지치는 걸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공직사회는 그렇다. 눈에 띄기가 쉽지 않고 띄는 것을 좋아하는 분위기도 아니다. 제일 열심히 일한 사람이 곧 제일 성과를 내는 사람으로 인정받지도 않는다. 그러니 갖은 고생 끝에 남는 것은 체력고갈 뿐이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인정을 받지 못하는것 만큼 씁쓸한 게 또 없다. 접수 건수와 처리 건수가 쌓이는 만큼 내 몸과 마음은 닳고, 스트레스는 점차 극에 달하게 된다. 힘들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지만 터져 나온들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기에 별 수 없이 참고 견디고 있었다.


photo by. Rojoy


회의시간이었다.


  업무분장을 새로 해서 일부 지역을 조정해야 했다. 다른 팀원들 중에서 누군가는 업무를 추가로 더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각자의 현재 업무량도 결코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일부 팀원에게 부담이 편중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팀에서 이미 가장 많은 업무량을 가졌기 때문에 업무를 더 받을 여력이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내 일을 덜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팀장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업무를 누군가가 조금 부담해줬으면 좋겠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업무가 더 추가된다니 달가워 할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미 양에 치이고 있는 내가 나설 수도 없었다. 아마 내 업무량이 평균치에 근접했더라면 추가 부담의 희생양은 내가 되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 기회에서 업무를 좀 떼낼 생각을 했었는데, 썰렁해진 회의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내 것을 덜어내긴 힘들것 같았다. 제 지역도 조정을 좀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말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누가 시원하게 말해서 금방 해결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으로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뾰족한 해답은 나오지 않고 침묵만 더 짙어졌다.


  결국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쓸데 없는 일로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5분이라도 더 빨리 회의시간을 마무리 지으려면 누군가는 총대를 매야 했다. 10년 넘게 일한 선배들이 여럿 있는 가운데 겨우 5년차인 내가 목소리를 내는 게 부담스럽긴 했지만 아무도 말이 없는 상황을 견디는 건 더 화가 났다. 내가 던진 말들을 시작으로 다시 얘기가 시작되었고 다행히 10분 뒤에 회의가 끝났다. 아침에 뭐 한 것도 없는데 어느 새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 왜 나한테 일을 떠미느냐는 떨떠름한 반응. 그 숨 막히는 공간이 나는 너무나도 싫었다.


photo by. Rojoy
가늘고 긴 공무원의 삶


  치열한 논쟁과 창의적인 발상.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삶. 쓸데없는 힘겨루기로 진을 빼거나 진상 민원인에 시도때도 없이 시달리는 삶. 그게 공무원이 겪는 현실이다. 인생은 원래 단짠단짠이라고 하는데, 나는 입사 후에 단맛을 느껴본 게 극히 드물다. 짠내 나는 상황이 많았지 오래 기억하고 싶을 만큼 달짝지근했던 순간은 별로 없었다. 그게 대부분의 직장인의 삶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왔지만 '정신승리'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때가 있었다. 여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 ‘성과 없이도 짤리지 않는다’는 안정감을 맛보겠지만 ‘제 아무리 발버둥쳐도 제자리걸음’이라는 답답함도 피할 수 없겠구나.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딱 3년차가 됐을 무렵 나는 심각하게 고민에 빠져들었고 1년 간의 시간이 흐른 뒤 해답을 찾았다. 조직 내에서 요행과 운을 바랄 수 없는 처지라면 스스로 이 안락한 요람을 벗어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고난 뒤 비로소 현재의 삶에서 벗어날 마음을 먹었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으로 오늘을 버티기 보다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기로 했다. 가늘게 살기는커녕 치열해야만 버텨낼 수 있는 삶이 결코 안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공무원은 다시 비인기 직종이 되었다. 불과 몇 년 만에 일어난 인식의 변화다. 진작 3D 업종이란 생각을 달고 살아왔지만 세간의 시선마저 그렇게 되고 나니 더 착잡한 기분이다. 힘들기만 하고 보람이 없는 건 다들 마찬가지 아니냐 하지만 최저시급 수준의 급여는 그 어떤 열정도 불태울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 때 부모님은 새로운 곳을 꿈꾸는 내 생각을 반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응원하신다. 더 나은 곳을 갈 수만 있다면 열심히 해보는 게 낫다고. 안정감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지금은 납득하신다. 그 때는 맞았(다고 착각했)지만 지금은 틀리기 때문에.


  단 한 번 뿐인 삶에 후회와 미련이 남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새로운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아주 조용히 내 자리를 지키며.


마음 속에 꿈틀대는 욕망을
벽장 안에 감추고.


photo by. Ro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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