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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Oct 24. 2022

마이웨이

내 맘대로, 내 뜻대로의 삶

인생 뭐 있나, 살고 싶은대로 살면 되지


  내가 하고 싶은대로 살 거라고 호언장담을 한다 해도 막상 그걸 실천하기 쉽지 않다. 내 방식대로 뭘 하려고 하면 주변에서 온갖 잔소리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참견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는 사라지고 그저 그런 평범한 결과물이 남아 있을 뿐. 나도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내 입장을 고집부리기보다 남들의 의견대로 맞추어 살아가고 남의 눈치를 보다 내 자신을 잃어버리곤 하는, 아주 평범한 월급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성이 아주 사라진 건 아니다. 오랜 시간 형성되어 온 성격과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느 날 옆 자리 선배가 말투를 좀 고치라는 얘기를 꺼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전화를 받을 때 말투가 유독 차갑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신입시절의 나였다면 '넵, 알겠습니다'라며 선배의 눈치를 봤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미 인이 박혀버린 습관을 고칠 의지가 별로 없다. 그저 흐리멍텅한 눈으로 '그게 잘 안 된다니깐요'라고 할 뿐이다. 이미 굳어버린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선 생각보다 힘들게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선배는 아쉬운 투로 그것만 고치면 참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어영부영 반응하고 말았다.


  처음 말을 꺼낸 뒤로 그 선배는 종종 같은 얘기를 꺼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그거 한 가지가 좀 아쉽다며 고쳐보라고 끊임없이 조언을 했지만 들은체만체하고 넘겼다. 모든 이들에게 좀더 따뜻하고 친절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몸에 익은 말투가 쉽게 고쳐지는 게 아니었다. 물론 우리나라 특유의 서비스 업종의 '과잉 친절 문화'에 익숙해져 온 기성세대 입장에서 퍽 차갑게 들리긴 하겠지만, 사실 일부러 불친절하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비대면으로 의사소통을 하다보니 사무적인 태도가 다소 차갑고 딱딱하게 들리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통화할 때마다 영혼을 가득 담아 얘기를 하자니, 업무량이 많아 힘에 부쳤다. 전화가 끊기자마자 또 다른 전화가 오는 상황에서 매 순간 정성을 들이긴 어려웠다.


출처 SmallBusinessify.com


그래서 내 방식대로 하기로 했다


  나는 비대면보다 대면 설명이 더 자신 있었다. 말투가 사무적으로 들리더라도 실제로 나를 마주해서 상담을 진행한다면 결코 불친절한 게 아니라는 것을 상대가 알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방문을 권했다. 전화 응대를 하면서 통화가 길어질 것 같거나 전화상으로 이야기 했을 때 이해하는 게 좀 어렵겠다 싶으면, '그냥 한 번 오시라'고 했다. 물론 업무를 처리하는 입장에서 전화로 간편하게 몇 마디 주고 받아서 처리하는 게 제일 좋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화가 길어지면 나도 상대도 지칠 게 뻔하고 자칫 또 불친절하다는 오명을 쓸 수 있으니 차라리 방문해 달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며칠간 민원인 방문이 줄을 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왔고 상담이 이어졌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더욱 바빠졌다. 짧게는 20분에서 길게는 50분 가량 사람을 상대하다보니 체력 소모가 컸다. 하지만 차라리 나은 결정이었다. 긴 이야기 끝에 결국 상대는 나의 의도와 설명을 이해하고 돌아갔고 덕분에 감사하단 이야기도 들었으니 말이다. 전화상으로는 결코 들을 수 없었던 말이다.


  나름대로 상냥하고자 항상 노력했지만 한계가 있었는데, 전화 응대에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내 자신을 바꾸는 대신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니 확실히 달랐다. 민원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고 내 업무처리 속도는 오히려 더 빨라졌다. 전에는 이해가 잘 안된다며 답답해 했던 사업장 관계자들이 지금은 내 연락을 반긴다. 이제는 전보다 웃으면서 통화하는 사이가 됐으니, 나조차도 놀라운 결과였다. 한편 그 과정을 지켜 본 선배 또한 놀란 눈치였다. 선배의 말대로 내가 바뀐 건 없었지만, 내 방식 또한 틀린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 뒤로 선배는 더 이상 내게 말투를 바꿔보라는 조언을 하지 않는다.


출처 All Pro Dad
내 중심을 찾기가, 내 방식을 고집하기가 힘들다


  남들이 하는 모든 조언이 다 내게 맞지는 않는다. 때로는 그들이 던져준 질문에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만, 스스로에게 맞는 정답이 따로 있기도 하다. 남들이 나의 전부를 아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 조언이 언제나 합리적이라고 말 할 순 없는 것이다.


  나 역시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 불안에 떨어야 했다. 남들이 매기는 채점표에 내가 너무 낮은 점수를 받은 게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에 잠을 설친 적도 많다. 왠지 타인의 평가가 절대적인 기준인 것 같고, 거기에 나 자신을 끼워맞춰야 하는 것 같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나는 완전히 둥글지 못해 모난 구석들을 껴안고 살아간다. 그런 뾰족함이 남들을 다치게 할 때가 있는 것은 문제지만, 때론 남들보다 예리하게 문제를 파고드는 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잘 쓰면 도움이 되고, 잘못 쓰면 불편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결국 남들의 시선에 휩쓸리면 내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건 결국 내게 압박감으로 다가올 뿐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자정능력이 있다면,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단 잘 다듬어 꺼내놓는 방법이 훨씬 낫다. 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고 다르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면 괜찮다. 그래서 요즘 나는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나에게 더 합리적인 방식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타인의 잣대에 무작정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명을 할 수 있다면, 마이웨이도 나쁘지 않다.


출처 Hunter Business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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