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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Sep 03. 2022

신입의 말이 킹받는다

달래지지 않는 속을 달랠 때 뱉는 말, 킹받네

MZ세대: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하는 말


  위 정의에 따르면 나는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고 MZ세대의 한 축을 이루는 나이대의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 물’ 먹은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사회생활에서의 찌든 때가 익숙하게 몸에 밴 직장생활 5년차. 지금은 더 이상 회사에서 새로움도 재미도 찾을 수가 없어 권태로움의 늪에 빠져 산다. 일에 쫓기지 않아야 내 삶이 좀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진작 깨달았지만 항상 몰려드는 일을 어쩌지 못하고 툴툴대며 앉아 있다. 까마득한 신입 시절엔 일하는 게 즐겁다 생각도 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뭐든 피하기 바쁘다. 어떻게 하면 저 일이 내 일이 되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지뢰를 피해 도망치곤 한다.


출처 The independent


두 달 전에 신규직원이 새로 들어왔다.


  신규직원은 나이가 스물여섯이다. 대학 때 알바를 해 본 적 있지만 제대로 된 사회생활은 처음이라고 했다. 처음 하루이틀 간은 인사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꽤 붙임성이 있다 생각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이 낯선 사람한테 선뜻 먼저 인사하는 걸 통 보지 못했던 터라 인사성 밝은 게 좋게 보였다. 일을 배울 때도 꽤나 적극적이었다. 질문하는 것도 서슴없는 데다가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그에 대해 겪은 첫 인상이었다. 나쁠 게 하나 없이 앞으로가 너무 기대가 되는 신규직원이었달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해보니까 일이 어떤 것 같으냐' 물으면 너무 재밌단다. 그런데 이 답변이 묘하게 거슬렸다.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은데, 왜 썩 달갑게 느껴지지 않을까. 며칠 뒤 그에겐 '이 정도는 껌이죠'하는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된 직원에게 보기드문 모습이었다. ‘남들 덕분’이라며 겸손하기보다 ‘이 정도는 별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패기. 하지만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게 아니라 쟤는 무슨 근거로 자신이 넘치는걸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3년째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나보다도 더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는 게 꽤나 거슬린다.


  물론 힘들다, 짜증난다는 소리를 처음부터 하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재밌고 할 만하다는 얘기를 들으니 왠지 배알이 꼴렸다. ‘지금은 만만해 보이겠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것은 아니다’ 하는 그런 K-꼰대 마인드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신규자에 대한 배려가 많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주어진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라 별도의 적응기 자체가 없었고, 심지어 일부 동기들은 불편한 선배들 사이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설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른 지금은 신규직원을 배려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내 동기들을 비롯한 이전 세대들의 눈물과 호소 덕분이었다.


출처 psypost


정말 킹받는다.


  '킹받는다'라는 말을 알게 된 건 작년 말이었지만 실제로 사용해본 적은 없다. 주변에 쓰는 이도 드물다. 그런데 그 신규직원을 보면서 이 단어만큼 그를 표현하는 게 없다고 느꼈다. 3주 연속 넘치는 업무량에 허우적거리며 '비자발적인 야근'을 하고 있는 선배 앞에서 "아, 나도 야근 해보고 싶다."고 해맑게 말한다거나, 자기보다 1개월 뒤에 업무전환으로 우리팀에 합류하게 된 선배한테 이건 이렇게 하는 거라면서 본인이 멘토를 자처하는 모습도 아주 거슬렸다. 이제 겨우 한 달 된 놈이 뭘 좀 안다며 남을 가르쳐주고 뿌듯해 하는게 아주 낯선 광경이었다. 또 아무리 서로가 수평적인 관계라지만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보다 제 편한대로 다가가려고 하는 모습이 매우 꼴보기 싫었다.


  그렇게 한 번 마음에 안들기 시작하니 보이는 것마다 짜증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무실 한가운데서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고, 까마득한 선배한테 '이것 좀 봐 보세요' 하는 언사도 매우 불쾌했다. 물론 깍듯한 상하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제 맘대로 편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었다. 불편한 티를 팍팍 내도 굴하지 않고 질문하거나 말을 거는 모습을 볼 때면, 딱 그 단어가 떠올랐다. 아, 킹받는다.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급격히 가라앉은 기분을 설명하기에 아주 적절한 단어였다.


  여전히 신규직원은 눈치가 없다. 별종이다. 눈에 보이면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니 애써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요즘 나는 그가 나에게 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하루가 무사히 지나길 바란다. 매번 상대의 입장을 반드시 고려할 필요는 없지만 아예 본인의 입장만 있는 것은 또 무슨 경우인가. 이 불편한 상황을 눈 감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다그치지도 못하니 답답할 뿐이다. 선배에게 이 상황을 하소연했더니 너희들도 예전엔 다 그랬다 하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꺼냈을 뿐이다. 물론 그말마따나 나도 꽤 당돌하고 제멋대로인 후배였을 수 있다. 아니 가정이 그렇다는 거지 사실 그렇진 않았다. 저 정도로 별종은 아니었단 말이다.


아 그래서, 킹받는 건 어떡하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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