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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Oct 03. 2021

덫 上

series1: 피할 수 없는 냉정한 평가

  시작할 때만 해도 배드엔딩을 그린 게 아니었다. 첫 발을 내디디는 순간만큼은 설렘이 가득했다. 물론 내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걷기로 한 길이 가시밭길이 아닐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끝은 창대하리라' 하는 꿈을 꿨던 것 같다. 노력하다보면 큰 성과는 없더라도 소소한 성취감은 있겠지 하는 작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순진했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걷고자 한 길이 생각보다도 더 울퉁불퉁할 것이란 사실을. 도중에 악마의 유혹에 당해 나를 나락으로 떨어트릴 덫에 빠지게 될 것이란 것을.


  한 번 덫에 걸리고 나면 빠져 나오기가 참 힘들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면 칠수록 고통이 더 해진다. 쇠줄이 살갗을 파고드는 아픔을 견디지 못하다가 종국엔 순순히 제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발버둥쳐봤자 돌아오는 건 고통뿐이라면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게 좋지 않나 싶은 생각이 온몸을 잠식한다. 결국 '누군가에 의해 좌지우지 될 목숨이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을 뒤흔들던 분노마저 사라진다. 감정이 죽어버리고 나면 온몸을 뒤덮은 날카로운 쇠줄마저 친근감이 든다. 대신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헤아려본다. 곰곰이 생각을 해 봐도 내가 바꿀 수 있는 미래같은 건 없다. 이래나 저래나 내 의지되로 되는 게 없구나 하는 깨달음이 다가온다.


피할 수 없다고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1. (명사) 짐승을 꾀어 잡는 기구.

2. (명사) 남을 헐뜯고 모함하기 위한 교활한 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https://www.bbc.com/future/article/20201022-how-solitude-and-isolation-can-change-how-you-think


#1. 손가락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그 말이 딱 맞았다. 지난 여름 어느 날 나는 평소 존경해 마지않는, 친한 선배라고 여겼던 이에게 나에 관한 비밀을 털어놓았다. 요즘 제 고민은 이거예요. 그래서 마음이 좀 심란한 상태예요. 부디 헤아려주시지 않겠어요? 라는 그런 무언의 부탁을 곁들여서. 나름대로 고심해서 무겁게 뗀 말이었다.


  하지만 그 선배가 나를 가엾게 여긴 건 얼마되지 않았다. 곧 그에게 털어놓은 내 비밀은 나의 엄청난 약점이 되었다. 그는 손아귀에 나의 치부를 쥔 채로 나에게 지엄한 선배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선배의 뜻대로 움직이기엔 나도 꽤나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결국 나는 그의 의사에 반(反)한 행동을 일삼았고, 서로의 이상향이 달랐던 그와 나는 결국 등을 돌리게 됐다.


단 하나조차 이해하지 못하니
열 가지를 전부 이해할수 없었다.


  선배와 나는 서로가 자석의 같은 극인마냥 밀어내기만 했다.  모든 행동은 그에게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발소리 하나 거슬릴까 싶어  뒤꿈치도 들고 다녔 웃음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속으로 삼키곤 했지만, 생각과 다르게 못난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애석하게도  실수는 재채기마냥 숨길 수가 없었고 조용히 그림자처럼 지내고 싶었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끔 하는 실수조차 빠짐없이 그의 감시망에 포착되었고 그럴 때마다 그는 실망과 한숨을 숨기지 못했다. 물론 그에게서 직접적으로 들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지만 내게 유독 싸늘한 시선이 꽂히는 이유쯤은 멍청이가 아니고서야 모를 수가 없었다. 물론 실수는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덜렁대는 게 천성인 탓에 어쩔 수가 없었다. 머릿 속에 치밀하게 설계도를 그리기보다 당장 뛰어나가기 위해 엉덩이부터 들썩이는 성격은 나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다.


https://www.businessinsider.com.au/how-social-isolation-affects-your-health


거슬리다 못해 치워버리고 싶은 암 덩어리


  그게 그에게 있어 내 존재감이 아닐까. 또 피치 못하게 저지른 잘못이 눈에 띄는 바람에 고개를 들 수 없었던 어느 날, 그는 나에 대한 화를 참지 못하고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자기 일이나 똑바로 할 것이지, 어디다 정신이 팔려서는." 그 말은 어쩌면 영원히 가슴에 박혀 있을 화살이었다. 그에겐 고작 일이분 뒤면 잊혀질 그 한 마디가 내게는 꿈에서조차 아프게 들릴 그런 말이었다는 것을 그는 결코 모를 것이다. 그렇게 서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의 존재가 나의 못난 점을 보듬어줄 수 있는 포근한 품이 아니라 재앙과도 같은 덫이었다는 사실은 내게 너무나도 큰 아픔이었다.


  이제 그 선배와 인사조차 생략하고 지낸 지 두어달 쯤 됐다. 여전히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만 새기고 있는 답답한 관계다. 중간중간 지금이라도 무언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한 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개인 사생활이 우선인 나와 조직의 생리에 따르는 것이 우선인 그와 나 사이에 어떠한 타협점도 없었다. 하지만 선배인 그를 설득시키는 건 무리였고 환골탈태를 해야하는 건 나 하나면 족했다. 그렇게 나는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해 항변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특유의 성격까지 뜯어 고치고 가급적 조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는 지지리도 운이 없어 지뢰만 골라 찾아냈다. 끊임없이 그를 비롯한 선후배들은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감시에서 도망치려 하면 할수록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미 올가미에 걸려든 이상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로 갇혀 있을 뿐이다. 창살 없는 감옥이 여기구나.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나는 죄수번호를 받은 죄인으로 감옥에 갇힌 사람이라고. 남들 눈에는 '갱생이 필요한 교화 대상자'라고.


https://www.bbc.com/future/article/20201022-how-solitude-and-isolation-can-change-how-you-think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결론


  하지만 그런 무자비한 취급은 탈옥에 대한 유혹만 부추긴다. 감옥같은 이 곳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벗어나야겠다는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다. 그 동안 배운대로, 겪은대로 착실하게 쌓아올린 모든 것이 다 부질없게 느껴진다.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것들이 사실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 나는 이 감옥이 너무 싫어졌다. 물론 회사 생활이 노비 생활이다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그를 넘어서 죄수 생활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 그저 한숨 짓고 조용히 마당을 쓸 생각 따윈 없어진지 오래다.


지금 나에겐 자유가 절실하다.


https://www.techyourchance.com/android-context-needs-isolation/isolated_astronaut/



*재미없고 음울한 분위기의 글도 미래의 어느 글감의 자양분이 될 거라 생각하며 끄적여 보았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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