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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Dec 03. 2021

15일의 연애 上

생애 가장 짧았던 사랑의 유효기간

이렇게 망한 연애는 처음이었다.


  올해 봄. 오랜 기간 만나온 연인과 이별을 겪었다. 한 몸인듯 가깝고 편했던 이의 빈자리는 분명했지만 다행히 내 삶을 뒤흔들 만큼 크진 않았다. 그런데 한 동안 연애를 쉬게 될 것이라 생각한 것과 달리 가을 즈음 새로운 인연이 찾아왔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지만 또 다른 시작이 되리라 생각을 하며 잠시 설레기도 했다. 모든 그 시작만큼은 기대감이 부풀게 되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 바람이 와장창 깨져버린 것은 만남을 시작한 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때 이미 나는 알아차렸다. 이 사랑의 유효기간이 짧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럼에도 처음엔 쉽게 놓지 못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인연을 맺은 상대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조차도 내 헛된 기대였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결국 매몰차게 연락을 끊었다. 스스로도 최악 중 하나라고 생각했던 방법으로, 예기치 못하게.


나만을 위한 아늑한 SUV인줄 알았던 그는
나라는 정류장을 지나쳐 간 버스였다.


세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지경이다.


https://www.healthline.com/health/depression/after-break-up


비극의 시작


  그를 알게 될 때 즈음 나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삶이 불안하다 느끼고 있었다. 마치 지진으로 흐물거리고 뒤틀리는 땅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사실 겉보기에 나는 멀쩡했다. 그럭저럭 밥벌이를 하는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니.


  하지만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현재에 대한 답답함으로 온갖 걱정들이 한데 뒤엉켜 있었고, 집중력이 틀어진 상태로 마음이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일에도 스스로가 세운 목표에도 마음을 두지 못한  정처없이 헤매고 있었다. 그런 나는 사람의 다정한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누군가가 어두운 현실에 갇힌 내게  내밀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구원의 손길이 닿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때였다.


  현실 속 지인들에게도 속마음을 쉽게 꺼내지 못한 채 한껏 끙끙대던 나는 휴대폰 속 세상에서 탈출구를 찾았다. 온갖 어플을 깔고 지우며 대화할 상대를 찾아 헤맸다. 우린 그렇게 만났다. 흔히 있는 소개팅 같은 게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미지의 세상 속에서 그를 찾아 냈다. 서로에 대해 아는 정보가 없어 첫인상을 가늠할 수 없었고 닉네임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엔 상대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었기에 주고받은 이야기가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대화가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가 나쁘지 않은 사람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양한 대화를 통해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며 더욱 호감이 짙어졌다. 하지만 그런 동시에 낯선 상대를 믿을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일에 이리저리 치이며 쪼그라들었던 마음은 그에 대한 관심으로 다시 부풀어 갔다. 아무렇게나 찍은 작은 점에 불과했던 그가 점차 물감처럼 마음 속에 번져갔다. 단조롭던 일상에 조금씩 색이 입혀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던 참이었다.


출처: Ophra daily


그에게 반했던 순간이 있다.


   관심 밖이었던 그가 한순간에 눈에 들어왔던  어깨가 축쳐져 있었던 어느  저녁의 일이었다. 불면증을 겪느라 깊이 잠들지 못했던 밤이 다음  나는 하루종일 잠이 부족해 힘들어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분명 힘들다며 우는 소리를 했을 거다. 도망치듯 사무실을 벗어난 퇴근길, 해방감을 느끼며 집으로 향하던   그에게서  카톡 하나. 기프티콘이었다. 언젠가 내가 좋아한다 말했던 음료. ‘, 센스있다 생각이   시작이었다.


  그 뒤로도 종종 그는 내 하소연과 푸념을 다정하게 들어주거나 따뜻한 말들로 위로를 건넸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수작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 톨 이상의 진심이 담겨 있었던 건 분명했다. 가식 없는 대화와 애정어린 관심. 사회에서의 냉혹한 평가와 끝도 없는 경쟁에 지쳐 있던 내게 너무 달콤한 유혹이었다. 어쩌면 의지할 만한 내 편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 부정적인 생각이 만연했던 내게 힘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움직였다. 스스로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그렇게 새로운 만남이 시작됐다.


  모든  '회자정리'되는 해라고 여겼던 때에, 내가 과연 새로운 시작을 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던 시기에 나는 차마 심장의 두근거림을 외면할  없었다. 겨울에도 자기 손은 따뜻하다며 먼저 내밀었던  손을 잡고 지난 가을, 나는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https://medium.com/the-ascent/love-a-feeling-or-a-choice-27abce79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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