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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Dec 03. 2021

15일의 연애 下

실패가 내게 남긴 교훈

사주쟁이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우연한 인연이 찾아오기 전, 사주를 본 적이 있다. 사주 보는 이에게 올해 하반기의 연애운을 물으니 이렇게 답을 했다.


어장 안에 물고기가 모이되, 펄떡이는 놈이 없어 튀어오르지를 않으니 정 붙잡고 싶다면 내가 팔을 걷어 붙이고 들어 올려야 해. 하지만 그러면 내 마음이 힘들 것이니 너무 큰 기대는 말아야 하고.


  운세 설명을 들으니 낚시에 성공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물고기 하나 건지기 힘든 운이라니, 올해 남은 기간 동안에는 연애에 관심을 갖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점괘의 예언대로 물고기가 내 어장 안에 들어오긴 했지만 내가 견뎌야 하는 게 많은 인연이었다. 순식간에 어느 하나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쉽게 내 손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내 손아귀를 피해 요리조리 헤엄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배려심이 넘치는 한편 매우 조심스러웠고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애정이 묻어났던 말투도 그의 원래 모습이었다기보단 다정함을 흉내낸 것에 가까웠다. 그에게서 연락이 오기까지 늘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고 피곤하고 바쁘다는 이유 때문에 나는 그의 우선순위 밖으로 밀려나곤 했다. 그의 태도를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바쁜 현대인의 삶을 마냥 나무랄 순 없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게서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결정적으로 그 모든 건 내가 바라던 연애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잘 맞지 않다고 느끼는 그를
통해 내가 원하는 이상형이 뭔지 알게됐다.

출처: Goodtherapy


시작과 끝에는 다른 내가 있었다.


  그를 만나게 된 계기는 당시의 내가 갖고 있던 결핍과 상처때문이었다. 무력함에 젖어있던 나는 기댈 사람을 필요로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그'에게서 치유받았다기보다 시간이 흐르며 스스로 치유책을 찾았던것 같다. 우울함 때문에 어떠한 의지도 생기지 않았지만, 혼자만의 공간에 갇혀 있기보다 모임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를 택했고 꽁꽁 마음을 숨겨두기보다 겉으로 담담히 꺼내는 방법을 택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비슷한 고민들을 안고 있었다. 그것들을 입 밖으로 꺼낸 순간 홀로 갇혀 있다 생각했던 암담한 터널은 더 이상 칠흑같이 어두운 공간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나와 그 사이의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복되지 않을 것만 같던 나의 내면이 점점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잠잠해지지 않을 것만 같던 주변 상황도 조용히 갈무리 되면서 그와의 차이점이 더욱 눈에 띄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여자와 말하지 않는 게 더 익숙한 남자. 끝이 좁아지지 않는 평행선이었다. 과연 우리가 맞추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만큼 먼 거리에 있었다.


  이른 결별을 택한 것은 내가 그 ‘다름’을 더 이상 용인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 대해 너무 속단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모든 결정엔 내 감정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었다. 지금 당장 불행하고 싶지 않았으며 새로운 시작인만큼 염려스러운 부분이 최대한 적었으면 좋겠다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앞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맞추어 나가야하는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닐텐데 출발선에서부터 사소한 부분에 대한 실망이 쌓인다는 건 내가 느끼기에 좋지 않은 신호였다.


서로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각자가 익숙하지 않은 방향으로
발을 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나만 다가선다고 해서 거리가 좁아지는 것도 아니고 상대도 함께 움직여줘야 손발이 맞는다. 서로가 그럴 의지와 마음이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러려면 아무리 바빠도 충분히 대화할 시간이 필요했다. 홀로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생각을 나눌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없이 부족했다. 더욱이 상대의 솔직한 속마음을 듣기도 어려웠다. 그는 미안하다는 얘기는 할지언정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대해 쉽사리 입을 떼지 않았다. 그가 되풀이한 '알겠다'  뒤에 대체 어떤 마음이 숨어있었던 것인지 아직도 나는 알지  한다.


내가 원한 건 단 한 가지, 섣불리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기보다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https://www.youngisthan.in/love-relationship/awkwardness-after-a-break-up/65044


  그와의 관계에서 내가 애정이 충분하다 느끼지 못해 불안에 떨거나 기다림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더 나아갈 필요가 없었다. 타인의 허물이 싫어서 도망친 게 아니라, 내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최우선시한 결정이었다. 결론적으로 관계에서 먼저 도망친 건 내가 되었지만 그는 그 최후의 순간에도 별다른 응답이 없었다. 그렇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기다리다가, 나는 허무한 끝을 맞이했다. 겨우 만나기로 한 지 15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느 별에서 왔니, 내 맘 찢으러 왔니


  추억을 채 쌓기도 전에 끝나버린 관계. 허무함이 이루말 할 수가 없었지만 더 참기로 결정했다면 부글부글 속만 더 끓였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위안 삼았다. 주변에서의 반응도 '잘 됐다'는 게 대부분이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생각하라고 한 마디씩 위로를 보태기도 했다. 그들의 말처럼 행복하기 위해 연애하는 거지, 불만에 차 있을 거라면 역시 '화려한 솔로'가 낫다. 역시 회자정리되는 운의 흐름 때문인건지 빠르게 '경험'으로 끝나버린 연애를 뒤로 하고, 이제 터널 밖의 2022년을 맞이하러 간다.


어떤 부침(浮沈)도 벼텨내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며.


https://www.marriage.com/advice/relationship/tips-to-build-harmonious-relation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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