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팅앱 사용 후기
성별, 이름, 나이, 거주지, 키, 체형, 혈액형, 음주 스타일, 흡연 여부
어플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정보를 채워넣어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참 나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다.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사이에 이런 개인정보들을 나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곱씹으면서도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무리 ‘자만추’가 좋다고 하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이미 채갈 놈들 다 채 가서 그런지 이런 인위적인 기회 없이는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핍은 욕망을 부추기는 법이다.
빈 칸을 채우다가 문득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하기도 하고, 무슨 취미가 있었는지를 고민해보기도 한다.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하나씩 작성해 나간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나온 사진을 고르는 일이다.
가장 크게 보여지고 쉽게 평가받을 것은 나의 외형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찍은 사진은 죄다 마스크를 썼다. 어쩔 수 없이 스크롤을 한참 올려서 몇 개월 전 사진을 고른다. 그래도 그 때의 나는 썩 미소도 예쁘고 괜찮아 보인다. 지금의 내게 묻어있는 삶의 찌꺼기는 부득불 알게 되기 전까진 애써 감추고 싶은 민낯이다.
어릴 때는 하루에 몇 번씩 셀카를 찍는 게 일상이었는데, 나이들고 나서는 좀처럼 셀카를 찍지 않게 됐다. 화장을 하지 않은 날엔 누가 찍어준대도 손사래를 친다. 얼굴을 뭐로든 가려야 사진 찍을 용기가 비로소 난다. 주름이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얼굴에 생기가 돌지 않는 탓이다. 이제는 필터가 씌워진 어플이 아니고서야 셀카를 찍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어느 각도로 찍든 잘 나온 것 같지가 않은 기본 카메라는 부담스러운 존재다.
기본적인 정보들의 입력을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페이지가 바로 '자기소개란'이다. 자기소개서를 썼던 것도 까마득한 옛날인데 오랜만에 쓰려니 뭘 써야할지 ‘대략 난감’했다.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적으면 되려나? 나 괜찮은 사람이라는 광고를 적어볼까. 한참 머리를 굴리다가 그냥 이런저런 정보들을 적어본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리고 하는 일에 대해 적는다. 쓰다보면 어느 새 페이지가 가득 채워져 있다. 짧은 몇 마디로 대충 정리할 수도 있었지만, 왠지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대학 때 과제용 리포트를 제출하는 기분으로, 남들의 평가가 저조할까 두려운 마음으로, 이 정도면 내 좋은 점이 잘 보이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처음엔 나를 이렇게 꾸며 보인 적이 없어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모르는 이들 앞에 발가벗겨진 기분이랄까. 직업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라는 점 때문에 소개란을 채우는 게 왠지 낯뜨거운 일로 느껴졌다. 하지만 겨울 바람이 너무 차가워서였을까, 자꾸 따뜻한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요상한 기대심리가 피어올랐다. 마치 동화 속 완벽한 왕자님이 나를 구하러 올 것만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반드시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상상력이 너무 풍부한 게
잘못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대는 발칙한 상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좋은 사람이 있을 거란 희망은 언제나 유효한 게 아니다. 사실 인생에선 실망할 일이 더 많다. 그런 진실마저 망각해버릴 만큼 나는 망상에 빠져 허우적댔다. 아니야, 나는 달라.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 언젠가 반드시 운명의 짝을 만나게 될 거야. 그런 생각들로 상대에 대한 실망감을 태연한 척 이겨냈다. 자신은 직설적인 편이라며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부터 할말 없게끔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 최소한의 배려심과 예의 따위는 어디다 내팽개쳤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 천지였다.
A: 언제쯤 시간이 되시나요? 혹시 오늘은 안 되실까요?
나: 이렇게 갑자기는 좀 곤란한데, 다른 여유있는 때는 없을까요?
A: 저는 오늘 좋을 거 같은데, 그냥 친한 친구 집에 놀러왔다 생각하구 와요. 저 집에 간단하게 먹을 것들 있어요.
(저녁 7시쯤)
B: 저는 퇴근길이에요. 뭐 하고 있어요?
나: 저도 퇴근해서 집입니다. 집안일 조금 하고 있었어요.
(새벽 2시쯤)
B: 자고 있으려나요?
(아침 출근길)
나: 네. 그 시간엔 자고 있었어요.
(저녁 6시쯤)
B: 정신 없었네요 ㅋㅋ 퇴근했어요?
나: (데자뷰인가..) 네 퇴근하는 중입니다.
어느 별에서 왔니?
애써 괜찮은 척 그들의 무례함을 견뎌냈던 나는 마침내 항복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친절함을 쏟아내는 데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불편함을 견디는 데에는 그보다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 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는 없었다. 모르는 이들과의 대화는 설레기보다 꽤 귀찮은 일이었고 때론 상처가 되기도 했다. 점점 남에게 나를 보이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나를 알아봐주지 않을 사람들, 스쳐 지나가 버릴 인연에 마음 쏟기보다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것만으로 이 결핍이 채워질 수 있으려나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손에 꼽는다. 대부분은 마음과 달리 어긋나고 뒤틀린다. 그래도 불평불만을 쏟아낼 수 없다. 운명이 내 편이 아니다 하며 자책을 하든, 조상을 잘못 만난 탓을 하든 그냥 넘기는 수밖에.
그렇게 나는 괜찮은 척, 살아간다.
내일은 부디 오늘보다 더 안녕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