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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an 30. 2022

마지막 인사 (1/2)

외할머니와의 작별 pt.1

그 날은 출근 준비로 분주한 아침이었다.


  새로운 곳으로 출근하게 된 첫 날. 떨리는 마음으로 분주히 나갈 채비를 하던 참이었다. 전보다 더 멀어진 출근길이라 늦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오늘 하루가 어떻게 될까 하는 긴장 같은 것으로 가득한 상태였다.


OO아, 어젯 밤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사실 3년 전부터 외할머니는 건강상태가 좋지 못했다. 점점 이곳저곳이 불편해 병원을 오가고 있던 터라 죽음이 가까워 온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내가 새로운 지역으로 발령이 나기까지 내내 끊어져 가는 숨을 잘 붙잡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이별이 다가옴을 알고 있었지만 그 날이 이렇게 갑작스레 다가올 것이라곤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좀 더 남은 날이 있나보다 하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사망 소식을 듣고 출근준비로 분주하던 머리 속이 그만 새하얗게 됐다. 상상 속 일이 현실이 되니 머릿 속보다 마음 속이 더 복잡해졌다. 손으로는 분주히 소식을 알리고, 할일을 정하고 길을 찾았지만 마음엔 돌덩이가 얹어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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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위독하시다 했던 전날 밤의 일이 생각났다. 할머니가 병상에 누워 성치 못한 몸으로 그렇게나 장녀였던 내 어머니를 찾았다 했다. 마지막까지 마음 속에 사무치셨는지 이름을 계속 부르셨다고 한다. 그 얘기를 수화기 너머로 들으며 나도 마음이 쓰라렸다. 사실 내 어머니는 부모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힘들었던 지난 날 때문에 외할머니에 대한 원망이 컸고, 그 설움이 가슴 깊이 맺힌 탓에 한두 해 전부터 외할머니댁에도 발길을 끊으셨다.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나는 어머니를 애써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 우리 엄마 고생 많이했다 하며 안아줄뿐이었다. 할머니 대신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게 내 역할이다 생각했던 거다.


  마침 코로나로 요양병원은 가족의 방문조차도 예약이 아니면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작은 이모가 면회 예약을 해둔 날은 돌아가신 밤 그 다음 날이었다. 급작스러운 심장마비. 가족들 모두 제대로 임종을 지키지 못한 가운데 외할머니는 눈을 감으셨다. 막내 이모가 뒤늦게 달려 갔을 땐 이미 숨은 끊어진 채로 몸의 온기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새벽에 온 가족에게 연락이 왔다.


OO 장례식장 101호.


  그렇게 나는 마지막 한 분뿐이었던 할머니까지 떠나보냈다.



  회사로 향하는 내내 긴장과 설렘 대신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출근길인건지 뭔지. 남들은 피곤함에 절은 얼굴로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었지만 나는 슬픔에 잠겨 훌쩍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살아생전 외할머니와 각별한 정을 나눈 손녀도 아니었는데 아마 엄마 대신 흘린 눈물이 아니었나 싶다. 서운함과 원망으로 얼룩진 엄마 마음과 그런 엄마를 마지막까지 보고 싶어했다던 할머니가 모두 가엽단 생각이 들었다. 또 외가에 들르지 않는 엄마 때문에 나 역시 할머니한테 인사조차 못한 지 오래된 터라 마음이 결코 좋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유독 슬픔이 가시지가 않았다. 공공장소만 아니었다면 대성통곡을 하고 싶었을 만큼 나는 슬픔에 절어 있었다. 그런 나와 달리 바깥 하늘은 참 푸르고 아름다웠다. 타지로의 첫 출근길에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회사에 도착해 사람들에게 애써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들 대부분이 초면이었다. 입근육이 미소짓기를 거부했지만, 애써 슬픔을 얼굴에서 지워냈다. 하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숨길 수가 없었다.


장례식장에 가 봐야한다는 말이,
그렇게 슬픈 말이었던가.


  떨리는 목소리로 돌아가신 분이 계셔서 그렇다고 말을 잇는데 내 의지와 달리 눈가는 이미 젖어들었다. 아직 인사를 나눠야할 이들이 많았기에 이를 악물었다. 간단한 서류 작성을 마치고 여러 사람들과 크게 내색함 없이 인사를 나눴다. 빠르게 스쳐 지나간 이들이 많았다.


  새로 근무지를 옮긴 첫 출근 날, 나는 제대로 된 소개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옮긴 근무지에서 장례식장은 차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출근길은 사실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러가는 길이나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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