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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Feb 25. 2022

그럴 수도 있지

곁에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

생겨요, 웃을 일.


  어디선가 지나가듯 본 문구. 하지만 나는 저런 미신따위 믿지 않지. 세상엔 짜증날 만한 일이 무궁무진했지 좋은 일은 드물게 찾아오거든. 그게 내가 깨우친 삶의 진리라 믿었다. 어느 새 신경질적이 되어버린 스스로를 위로하며 나는 자꾸 어두운 밤을 헤매곤 했다. 언제쯤 내게 꽃 피는 봄이 오려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런데 그 때는 도대체 밝은 미래가 있긴 한 걸까 싶을 만큼 그렇게 어두컴컴하다 느꼈다. 미간에 주름 잡히는 것을 걱정하면서도 구겨진 인상이 잘 펴지지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너 이런 실수를 해?


  안타깝게도 실수는 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하필 다른 사람들 눈에 띄었고, 그래서 종종 질타받곤 했다. 그 사소한 것 하나 제대로 보지 못했던 탓에 꼼꼼하지 못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고 나는 왜 이렇게 실수투성이인걸까, 하는 생각에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내 할일에 대해 완벽하게 갈무리하지 못했다면 어김없이 남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런 날들이 여러 달 반복됐다.


  그런데, 난들 실수를 하고 싶어서 하나. 그게 내 최선이었는지, 아니면 대충 그럴듯해보이려는 시도에 불과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온갖 말들을 쏟아냈다. 아주 불쾌했다. 하지만 대꾸할 말은 없었다.  내 나름대로 ‘밥값’은 제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그런데 그걸 알아주는 이는 없었다. 내가 치렀던 대가에 비해 내 노력은 너무 싸구려 취급을 당했다. 작은 자잘못들도 큰 흉이 되기 일쑤였다.


https://www.talkspace.com/blog/the-stigma-of-depression/


그럼 그렇지, 내가 널 몰라?

  그런 편견어린 평가에 나는 갇혀 있었다.




수고했어요.


  새로운 곳에서 일 한 지 1주일 만에 들은 말. 너무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말. 그리고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럭저럭 남들에게 싫은소리 들을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맡은 일이 익숙지 않아 조금 헤매기도 했지만 딱히 문제될 만한 일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문제없이 흘러가는 게 이상할 정도다. 너무나도 그리워했던 보통의 일상. 그리고 오랜만에 느끼는 평온한 마음. 대체 뭐 때문에 내가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명확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제야 그 답을 찾았다.


아이 뭐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


Evan Kirby via <a href="unsplash.com">Unsplash</a>


  과거와 다른 점은 바로 실수에 대해 관대한 반응. 정말 사소하게 서류정리를 좀 엉망으로 했다든가 미처 모르고 잘못 말했다든가 하는 것에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이가 없다.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당연하게 말하고, 자기에게 사과할 필요도 미안해 할 필요도 없다고 내게 얘기해준다. 실수에 대한 반응이 너무 트라우마로 남은 나머지 자꾸 움츠러드는 내 어깨가 안쓰러웠을까.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들의 반응이 내게는 너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익숙지 않은 반응에 자꾸 낯빛이 벌겋게 된다. 딱딱하게 굳었던 얼굴에 이제는 살풋 미소가 감돈다.


비로소 내 눈앞을 가로막던 안개가 걷힌 기분이었다.


  사람은 한 가지 면만으로 평가하긴 어렵다. 이런 점, 저런 점을 종합적으로 보면 마이너스 요소와 플러스 요소가 혼재한다. 잘 하는 게 있으면 못 하는 게 있고, 별로인 게 있으면 좋은 점도 있는 법. 그런데 그런 요소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하나의 잣대만을 들이댄다면 어느 일면만 확대해서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 남의 실수를 용인하는 포용력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야만 생기는 덕목이다. 제 생각대로만 남을 평가하는 사람에겐 그런 너그러움을 베풀 마음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티끌 없는 사람은 흔치 않다.


즉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것이다.


Andrii Zastrozhnov | iStock | Getty Images


  괜찮다는 말을 들은게 벌써 한두번이 아니다. 그만큼 새로운 곳에 와서도 자잘한 실수들이 몇 번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관용을 베푸는 이들을 만난 덕분에 싫은 소리 한번 듣지 않았다. 뭐 그럴 수도 있다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이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잘 하고 있다, 네 덕분에 팀 분위기가 좋은 거 아니냐는 칭찬을 들었을 정도니, 꽤 예쁨을 받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말을 듣고 사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괜찮다는 말이 나를 살리고, 키우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다시, 봄이 왔다.  


https://www.cambridge-news.co.uk/news/uk-world-news/first-day-of-spring-when-20206736.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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