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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Apr 12. 2022

실망감을 넘는 법

고지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꾸준함이라는 재능

3월부터 발레 레슨을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 발레학원을 다닌 적이 없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는 당시 내가 발레 배우기를 싫어했다고 말했다. 춤이란 춤은 웬만하면 좋아하는 내가 무슨 이유로 싫다고 한 걸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여튼 발레를 배울 기회가 성장하면서 전무했다. 하지만 나는 간간이 발레 공연을 보러다니면서 마음 한 켠에 발레를 접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키우고 있었다. 그 채우지 못한 갈증을 채우게 된 건 스무살이 한참 지나서였다.


  사실 성인이  후로도 내게 발레 학원은 문턱이 높았다. 우선 몸이 발레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자체적인 판단이 제일  이유였다. 여리여리하고 작은 체구들 틈에 어울리지 눈에   몸이 부끄러웠다. 발끝으로 서는 것도  몸을 가지고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리나는 내게 줄곧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는 듯한 아름다고 우아한 몸짓에 반했던 까닭에, 무대에서 더욱 빛나는 그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발레를 배우리라 다짐하곤 했다.

 

  그렇게 생각만 하던 차에 우연히 배울 기회가 찾아왔다. 전에 다니던 요가 학원 위층에는 발레학원이 있었고 토요일이면 특강으로 발레 선생님이 요가학원에서 발레수업을 진행했다. 토요일에도 운동을 하겠다는 열의를 불태운 어느 날, 우연히 접한 발레 수업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운동과 달리 음악이 있었고 몇몇 동작들 조합하면 하나의 춤이 탄생했다. 원투쓰리포 구령에 맞춰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야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동적이었다. 단순히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 외에도 점프 동작 같은 게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럼에도 바로 발레를 배우진 못했었다. 시간이 없어서, 수강료가 부담이 되서 등의 이유로 서울에 있을 때만 해도 수강을 미뤄왔다. 그런데 새로 터전을 옮기고 나서 회사 근처에 발레 학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무래도 또 요가나 필라테스를 할까하고 고민하던 터라 바로 등록을 결심했다. 드디어 몇 년 동안 머릿 속으로만 그리던 발레 수업을 듣게 된 거다. 발레학원 등록을 마치고 첫 수업 전에 발레복을 처음으로 쇼핑했는데 발레슈즈를 처음 만난 날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운 기분이었다.





  처음 시작하면 왕기초반에서 2달 동안 수업을 듣는 게 이 학원의 기본적인 커리큘럼이다. 막 수강을 시작했던 3월에는 한 반에 총 5명이 있었다. 물론 구령에 쫓기지 않고 음악에 박자 맞추는 것도 좋았고 동작들이 춤이라 역동적이어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바'라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았고 동작 하나를 제대로 따라하기도 벅찬데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것을 바쁘게 익히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수강생 중 3명은 이미 2월에 수강을 시작해 한 달 과정이 지난 뒤였다. 그에 반해 내가 하는 동작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고 수업에 겨우 쫓아가느라 허둥지둥댔기 때문에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냥 하지 말 걸 그랬나


  어느 순간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결제한 발레복들을 생각하며 참았다. 이왕 발레를 배울 거면 제대로 복장 갖추는 게 좋다는 말에 기본적인 것이라도 이것저것 산 게 많았다. 필라테스나 헬스복에 비해서 레오타드나 발레슈즈 등 갖추야 할 게 많아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 그런데 쇼핑몰의 멋진 모델 사진과 달리 울룩불룩한 내 몸매는 꼴 뵈기가 싫었다. 발레리나들과 같은 몸매가 아니기도 했거니와 처음 입어 본 레오타드는 익숙지 않아 너무 부끄러웠다. 발레복을 갖춰 입은 내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가 않았다.


  또 다 같은 동작을 배우는데도 내 몸은 빠른 진도를 잘 따라가지 못했다. 남들을 잘만 도는 턴(회전) 동작이 안 될 때마다 자괴감에 휩싸였다. 내 몸이 따라갈 수 있는 속도를 벗어나자 배우는 게 해볼 만 하거나 재밌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내가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월 한 달 동안에는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에 젖어 첫 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강의지가 확 꺾여버렸다. 기대했던 것 보다 내가 잘 하지를 못하니 그게 답답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제대로 부딪혀 보지도 않고 포기하기엔 너무 일렀다.



4월인 지금은 수강생이 단 두 명이다.


  전에 있던 수강생 중 3명은 기초반으로 옮기면서 왕기초반에는 지난 달에 함께 수강을 시작한 동지 한 명과 나 뿐이다. 추가로 등록한 수강생이 없었다. 덕분에 2:1 수업이 되면서 거의 개인 과외가 되었다. 그러면서 수업의 퀄리티가 생각 이상으로 높아졌다. 단순히 질문할 시간이 는 것 이상으로 잘못된 동작을 될 때까지 바로 잡으면서 이제야 제대로 발레에 입문을 하게 됐다. 지금은 수업 내내 온 몸에 힘을 주고 있느라 땀을 비오듯 흘린다. 하지만 수업의 밀도가 높아졌다고 해서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걱정과 달리 한 동작 한 동작 천천히 짚어가기 시작하자 몸이 적응하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더더욱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잘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고 견디기가 힘들어서 그런 게 가장 컸다. 게다가 수업은 전보다 느릿하게 진행됐지만 더 어려웠다. 제대로 동작을 해내려니 몸은 더욱 힘들었고 다음 날엔 근육통으로 어기적거리며 걷기도 했다. 하지만 참고 견디면 견딜수록 몸은 놀랍게도 선생님과 나의 기대에 부응해 변해갔다. 지난 한 달 동안 배운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몸은 왕초보 발레리나로서의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실망감을 견디고 나니 다다르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어느 계단 하나를 뛰어넘은 모양이다.


 실망을 뛰어넘어 도착한 곳에선
새로운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ballet news


나는 호기심이 많아서 금방 뛰어들지만 그 만큼 흥미도 빠르게 식는다.


  좋게 말해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적지만 나쁘게 말해 기존에 하던 일에 대해 끈기가 없다. 장단점이 매우 뚜렷하다.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려면 새로 시작한 일에 대한 열의를 가능한 길게 가져가야 한다. 하지만 그게 잘 안 되서 늘 중도에 포기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뒤 돌아서며 저건 내가 먹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신 포도'였을 거야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기대에 반해 실망감이나 불편함을 견디는 게 영 힘들었던 거다. 물론 그 허들을 뛰어넘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자주 간과하고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스스로를 합리화하곤 했다.


  실은 그런 관점에서 발레도 반쯤 포기했었다. 괜히했다는 생각이 여러 차례 머리 속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런데 지난 주까지만 해도 당최 되지가 않던 동작이 나도 모르게 갑자기 완성이 되고 자꾸 기우뚱하던 몸이 드디어 균형을 잡기 시작하면서 오늘은 스스로 뿌듯함에 도취가 되었다. 거울을 보면 허점투성이에 못난이 같았던 스스로가 드디어 기특해보이기 시작했다. 어설프지만 점프를 해내고 아직은 갈 길이 한참 멀었대도 부들거리는 다리를 90도로 들어 올리게 된 스스로에게 퍽 만족하기 시작했다.




  실망스러운 순간을 이기는 데엔 아주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게 아니다. 학원에 가기 싫었지만 갔고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들지 않더라도 연습하고 수업을 듣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했던 것.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버텨낸 것. 그러니깐 '존버 정신'이 굽혀지는 무릎을 펴게 만들었고 흔들리지 않고 꼿꼿히 서도록 만들었다. 결국 해낼 줄 알았던가. 아니, 사실은 죽어도 안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자주 우울해 했었다. 그 마음을 이겨내고 열심히 따라가다보니 결국은 되더라는 좀 허무맹랑한 결론에 이르렀다.


  비록 지금은 왕기초 발레리나로서의 기틀을 닦고 있지만 언젠가 하다보면, 꾸준함을 잃지 않는다면 그 또한 재능으로 이어져 무대에 설 기회 같은 것도 오지 않을까. 그러니깐 내가 포기하기 전까진 어떤 기회도 아직 유효한 거다. 그런 생각이 드니 문득 회의감에 잠겨 보지 못했던 스스로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됐다. 물론 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이들에 비할 것은 못 되지만, 나는 '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에서 벗어나기에 충분한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됐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발레를 좋아하다 보니, 공부를 하다보니,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하다보니 이렇게 되더라. 그런 생각지도 못한 훈훈한 결말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연마하는 삶을 산다. 나태함을 좇다 놓치는 기회가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게 가끔은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질주하는 내 자신이야말로 스스로가 꿈꾸는 바이니.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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