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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Apr 21. 2022

이번에도 머리가 망했다

미용실 유목민의 일기

헤어샵을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마음이 다르다.


  들어갈 때는 설레서 들어가 놓고 나올 때는 침울해서 나온  한두번이 아니다. 심지어 뿌리염색을 하러가도 맘에 안들 때가 있다. 기껏해야 3cm 남짓한 부위를 덮는 건데도 디자이너에 따라 시술이 제각각이다. 시력이 아주 좋은 편이 아니기도 하고 최대한 흐린 눈으로 보려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늘도 그랬. 분명 염색되어 있는 모발과 비슷하게 살짝 밝은 빛의 갈색톤을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시술이 끝나고 나니 어두운 고동색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시술 전에 컬러 상담은 없었다. 디자이너 눈엔 내가 그저 새치 염색이 필요한 고객님으로 보였던  분명하다.


저 어두운 색 싫어해요.


getty images


  이 말을 미리 했어야 했는데 뒤늦은 후회만 남았다. 속이 쓰라리지만 위로받을 길이 없다. 내 선택이 이번에도 틀렸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이 미용실도 정착하긴 틀렸다는 허탈감이 몰려온다. 언제쯤 맘에 드는 헤어샵을 찾을 수 있을까. 남들은 자기 헤어스타일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는걸까. 내가 너무 사소하게 예민한건가. 리뷰 남긴 사람들 보면 다들 만족한다고 하던데. 아니 그래도 고동색이랑 밝은 갈색은 다르지. 좀 더 깐깐하게 굴 걸 그랬다. 묻는 말에 고분고분하게 대답만 했던 스스로가 바보같다. 아, 돈 내고 자책하면 안 되는데 이미 어두운 고동색으로 뒤덮인 머리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다시 시간을 돌리고 싶다. 


‘빽도’는 꼭 이럴 때 없다.


저는 분명 핑크색을 주문했는데, 이건 살구색이잖아요.


  몇 년 전 전파를 탔던 ‘티몬’ 광고에 저런 대사가 나왔었다. 듣자마자 빵 터졌던 기억이 있다. 그래, 엄연히 그 둘은 다른 색이지. 느낌도 전혀 다른데 어떻게 내 맘에 들었다고 할 수가 있어. 참 마음에 와 닿는 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선호라는 건 정말 사소한 차이로 결정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큰 차이는 아닌데 분명 다른 소리를 내고 다른 낱말과 짝을 이루는 것처럼 미묘한 차이가 서로 다른 개성을 완성한다. 조금 달라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기엔 내 머릿 속에 그려둔 스타일이 절대 물러설 수 없다고 아우성을 친다.


iBelieve
거적떼기를 입어도 모양이 서로 다르단 말이다.


  대충 트레이닝복을 골라도 브랜드를 고르는 것부터 디자인, 기능성, 가격 등 따질 게 참 많다. 물론 대충 시장표 일바지 같은 게 땡길 때도 있지만 대체로 나를 치장할 만한 무언가를 고를 때는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게 된다. 그 차이가 사람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는 이유로 퍼스널 컬러에 관심을 가지고, 체형에 따라 다른 스타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기도 한다. 그 만큼 우리는 꾸미는 것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머리색에 대한 집착이 있는 사람이다. 즉 어두운 색은 절대 사절이다. 그런데 그 어두운 색에서 탈피하기가 참 어려웠다. 2020년 어느 더운 여름 날 나는 홧김에 아주 짙은 고동색으로 머리색을 물들였고 그렇게 내 머리색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전에도 머리 염색만 하면 금방 색이 빠져버렸던 탓에 좀 더 진한 색으로 해달라고 한 게 문제였다. 그 뒤로 매일 밤낮을 후회로 보냈다. 내가 왜 그런 바보 같은 소리를 했을까, 그냥 밝은 색으로 냅둘 걸.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그 뒤로 나는 늘 마음에 들지 않는 머리색때문에 속을 끓이며 살아왔다.


  그렇게 후회만 하다가 지난 해 여름 드디어 머리 색을 바꿨다. 부분탈색. 옴브레 헤어. 겨우 어두운 색을 탈출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현재의 머리색에 타협이  상태였다. 100프로는 아니었지만 만족을 하게  거다. 그런데  1 가까이 지난 오늘, 다시 3cm 고동색 모발이 생겨난 거다.  지겨운 고동색이 나를  찾아왔다. 탈출한 죄수가 자유를 얼마 만끽하지도 못하고 다시 감옥에 갇힌 기분이다.


 디자이너는 나의 눈물겨운 고동색 탈출기를 알지 못한다. 그녀의 눈에 나는 평범한 ‘새치인이었을 것이다.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럴  있도록 상담과정이 있었더라면, 내가 속상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 충분한 대화와 이해없는 시술 끝에 나는 밝은 갈색 빛을 결국 잃고야 말았다. 동상이몽이 따로 없었다.


ANTONIOGUILLEM/ISTOCKPHOTO


  집에 와서 연신 거울에 머리카락을 비춰보며 이게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믿기가 힘들어서 머리카락을 몇 가닥 쥐어 뜯었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고동색이다. 심지어 이전 머리 색이랑 다르다는 게 확연히 눈에 들어올 정도다. 이 미용실 디자이너가 좀 친절한 거 같아 여기를 좀 다녀볼까 생각하던 차였다. 또 다시 후회와 실망감이 밀려든다. 누구의 탓으로 돌려야할지 모르겠다.


  머리색을 보고 또 보다가 열심히 유투브를 검색한다. 세상에 잘된 머리가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헤어샵을 폭풍 검색한다. 제발 누구라도 구원해줄 이를 찾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이리저리 뒤져본다. 그렇게 몇몇 디자이너들을 찜했다. 그리고 다음 예약은 언제로 할 지 한참을 고민했다.


다음엔 내 머리를 아껴줄 구세주를 만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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