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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May 08. 2022

독서실의 프로 예민러

공시생 시절의 기억 소환

삐그덕. 삐그덕.


  조용한 스터디카페를 울리는 기분 나쁜 소리.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뒤를 돌아보니 저쪽 근방의 의자에서 꽤나 요란한 소리가 났다.  지나면 가만히 계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텨보았지만 혹시나가 역시나다. 처음엔  두번 나던 삐걱 소리가 조금 지나니   간격으로 끊이지를 않았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리 주인에게향했다.


저기, 의자 소리가 좀 시끄러운 것 같아요.


   말을 전하러 갔을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이 아니라 의자가 문제였다. 아귀가  맞지 않았던 탓에 요란한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의자 때문에 누군가의 들숨날숨 타이밍을 아는  원치 않은 일인데. 상대 역시 적잖이 당황한 듯한 눈치였다. 제가 소음 유발자라는  뒤늦게 깨당은듯 했다.  자신의 의자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자리를 옮겼다. 옮기면서 내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을 전했다. 의자 탓임을 알게   역시 조금 민망했던지라 웃으며 배려해줘서 감사하다 답했다.  훈훈한 결말이었다.


출처: academia21


사실 수험생 시절 나는 프로 예민러였다.


  모든 소리가 귀에 쉽게  들어오는 편이다. 감각에 예민한  선천적인 기질이라 바꿀 수가 없다. 둔감해지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여 았지만 감각기관이란   의지로 조절되는  아니었다. 그래서 집중을 깨트리는 모든 행위에 예민하게 굴었다. 누군가의 거친 숨소리라든가 삼색 볼펜 딸깍이는 소리든가 책장을 넘기거나 채점하는 소리마저도 귀에 탁탁 꽂혔다. 눈으로  내용을 훑고 머리에  내용을 입력하느라 바쁜 가운데 귀도  할일을 쉬지 않았다.


  내가 집중을 제대로 안 한 탓이라는 자책도 수차례 했다. 하지만 거슬리기 시작하면 그게 해결될 때까지는 쭉 신경이 쓰였다. 무시하려고 애쓸수록 더 또렷이 자각되는 게 미칠 노릇이었다. 게다가 수험생 시절 늘 불안한 마음을 달고 살았던 나는 불편한 행위를 멈춰달라는 것조차 거북한 마음이 들었다. 소위 말하는 '예민충'으로 보일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냥 할 말이 있으면 하면 될 것을 뭘 그리 마음 졸였는지. 사소한 일조차 대수롭게 여기지 못했던 때다.


  하여튼 말을 꺼내는 대신 나는 조심스럽게 구구절절한 내용을 담은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게 더 부담스러울 줄은 모르고 제 나름대로 공손함을 담아보겠다고 애를 참 많이도 썼다. 하지만 그런 포스트잇을 쓰고 건넬 때마다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다행히(?) 나같은 소심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문이나 벽에는 늘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있었다. 그 가운데 내가 붙인 게 눈이 안 띌까 걱정하기도 했다.


  비단 독서실에서의 일뿐만 아니라 나는 낯선 이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 내 불편함을 토로하는 일을 어려워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게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지하철에서 '쩍벌'하고 앉은 사람 때문에 비좁은 자리에 몸을 구겨 앉았을 때에도,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느라 편안히 잠들지 못해 짜증났을 때에도 그저 참고 속으로만 온갖 저주를 퍼부었얼 뿐. 그렇게 어린 날 나는 속으로 삭이는 데에만 익숙해 마음이 쉽게 주저 앉았던 나약하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pinterest


일을 시작한 뒤로 예민함이 많이 사라졌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귀 닫고 눈 감고 하는 게 잘 됐던 건 아니다. 남들이 쑥덕이는 얘기가 궁금해 귀를 쫑긋 세우기도 했고 발 빠르게 소식을 아는 것도 흥미로워 여기저기 많이 끼어있기도 했다. 호기심 때문에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을 한 적도 있었고 회사에 잠시 가졌던 애정때문에 여기저기 관여하려는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내 뒷담화를 들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시달렸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벽지' 노릇을 잘 하고 있다. 들려도 안 들리는 척, 보여도 안 보이는 척. 그런 기술이 늘다보니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뒷담화도 자꾸 들으니 그러려니 싶더라.


  옆에서 무얼 하고 있든, 어떤 일이 벌어지든 나와 상관없는 일엔 신경을 끄는 습관 그리고 해야할 얘기는 미루지 말고 하는 습관 같은 걸 들이다 보니 저절로 귀가 닫히고 눈이 감기기도 한다. 한 때 '저 사람은 왜 저러지' 하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이제 그 누구든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이 앞선다. 구태여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어짜피 그 생각조차도 편견어린 내 주관적인 평가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나를 고통으로 몰아넣을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며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사실대로 얘기를 꺼내는 게 더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말투나 행동에 예의를 잘 담았으면 됐지 포스트잇으로 사연을 전달하는 게 더 별로라는 걸 알아차리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의사소통이란 그러라고 있는 거다. 즉시 풀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야 서로에게 이득이다. 돌이켜 보면 글자로 적는 데까지 그리고 적고 나서도 분이 가시지 않는 때가 참 많았다. 예민한 게 내탓이지만 그걸 건드는 상대도 잘못이다는 생각때문에 얼마나 괴로웠던가.


출처 verywell mind


  그 때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스터디 카페 한 쪽 벽면에는 불만사항이 담긴 메시지들로 빼곡하다. 한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사람들은 대면해 말하기를 주저하고, 하루하루 어쩌면 속을 끓이며 사나보다. 예민한 스스로를 탓하기도, 그런 짜증을 유발하는 남을 욕하기도 하면서.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인내심을 기르거나 포스트잇을 쓰는 대신 즉시 행동에 옮긴다. 더 이상 불편하다는 메모를 남기지 않고, 불필요하게 참는 일 없다. 그래서 누군가를 저주할 일도 없다. 마음이 더 없이 홀가분하고 평안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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