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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May 20. 2022

예뻐졌다

변화된 일상 속에 미소 한 스푼

  웬만큼 좋은 소식이 있지 않고서야 듣기 어려운 말인데, 요즘 들어 오랜만에 만난 이들에게서 예뻐졌단다거나  빠졌단 얘기를 종종 듣는다. 쑥스러운 칭찬이지만 아주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다. 허풍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엄마 피셜, 진짜로 살이 빠진  눈에 띈다 했다. 지난 겨울에서부터 이번 봄까지 겨우 4개월 여가 지났을 뿐인데 몸과 마음엔 아주  변화가 있었다.  다른 노력을 쏟아 부은  아니지만 환경이 달라지고 많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걸까?


  작년엔  반대의 고민을 했었다. 이렇게 불행하면 어쩌자는 건가. 희망도 의지도 꺾인  하루하루를 버티던 때에 나는 좀처럼 긍정적인 생각을 머릿 속에 담지 못했다. 온갖 서적을 뒤지고, 유투브 채널에서 유명 인사들이 하는 좋은 이야기들을 아무리 들어도 마음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 어쩌라고. 억지로 희망을 꺼내보려고 애써도 마음 깊은 곳의 공허함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빠진 독인것처럼 나는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photo by. Rojoy


첫 독립생활 적응기


  부모님의 품을 떠나 회사 근방에서 나름대로의 살림을 꾸리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사전 답사차 갔을 때 썩 좋지 못한 집 컨디션을 보니 암담해졌다. 과연 이런 곳에서 잘 살 수 있으려나 싶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오래된 건물은 배관이 녹슬어 녹물이 나올 수도 있다고 했다. 또 룸메이트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집안 꼴이 말이 아닌 데도 많다고 들었다. 아무도 안 치우는 탓에 늘 집안에 쓰레기가 가득한 곳도 있고 심지어는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신발을 신고 다니는 곳도 있다고 했다. 문득 겁이 났다. 열악한 환경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차올랐다. 그래서인지 1월 말 쯤 써놓은 일기엔 온갖 불안함이 서려 있었다.


  처음 부모님과 함께 짐을 들여놓던 날, 엄마는 공짜로 머무는 곳인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며 나를 다독였지만 전혀 위안이 되진 못했다. 첫 독립 생활이라 뭘 사야 할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진작에 이것저것 좀 알아볼걸 하는 후회를 하며 뒤늦게 자취방 인테리어 관련된 영상들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불안함과 우울함 때문에 삶의 어느 중턱 쯤에서 멈춰 있는 동안 남들은 제 나름대로의 모습으로 잘 사는 것만 같아 또 부러워지기도 했다.


  겨우 1평 조금 넘는 방이라 뭘 들여놓을 만한 여유공간은 없었다. 이불 한 채에 서랍장 하나만 해도 벌써 꽉  들어찰 만한 구조였다. 머리 아프게 고민한 끝에 어찌어찌 쓸 만한 것들을 주문해놓고 작은 공간에 소박한 짐들을 다 들이고 나니, 왠지 모르게 벅찬 심정이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감동적일까 싶었지만 부모님의 손길 없이 스스로 채워넣은 방 안을 돌아보며 무척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그 비좁은 방에서 드디어 내 맘대로 뭔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부풀었다.


photo by. Rojoy


  걱정과 달리 현재 룸메이트와의 사이는 좋다. 아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힘든 날을 위로하는 사이. 누군가에게 일을 떠넘기고 모른체하는 그런 얌체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함께 살 사람이 어떨지 몰라 불안에 떨었던 것이 기우였을 만큼 좋은 룸메이트를 만나 잘 지내고 있다. 특히 이번에 관사를 이사하게 되면서 얼마나 룸메이트의 존재가 큰 의지가 되었는지 모른다. 혼자였더라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일이었다.


  산 지 오래되지도 않았건만 관사를 곧 비워줘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에이, 설마. 하지만 나가야했다. 10년도 넘게 계약을 체결해 온 집이었는데 집주인이 월세를 올린 바람에 어쩔 수가 없다 했다. 독립을 해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독립을 하게 된 것처럼 이사를 해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됐다.


  다행히 집이나 내부 집기가 나의 자산이 아닌 국가 예산이 쓰이는 거라 회사에서도 적극 관여를 해준 덕분에 크게 걱정할 것은 없었다. 그저 새로운 곳이 정해지면 예 하고 입주하면 됐다. 다만 3주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방을 구해야했던 터라 빈집이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혹시 방이 안 구해지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또 들어 두려움에 떨었다. 집이 구해지고 나서는 얼마나 안 좋은 곳일까 하는 게 또 걱정이었다. 엄마는 방이 더 작아지거나 집이 더 별로일 수 있어도 견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사할 집에 대한 얘기는 계약 담당자로부터 전달 받은 게 없었다. 결국 이사 전날에서야 어떤 곳인지 알게 됐다.


20평대의 훨씬 넓고 아늑한 공간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신기하게 작년엔 모든 일이 꼬이기만 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모든 일이 잘만 풀린다. 최악의 최악을 거듭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환경이 나아지고 있다.


새로운 내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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