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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un 03. 2022

생애 첫 자전거 타기

서른이 넘어 배운 자전거 타는 재미

하기 싫은 건 쉽게 포기하는 버릇이 있다.


  승부욕이 너무 강해 '못하는 걸' 견디지 못한다. 남들보다 못하는 게 쪽팔리고 답답했던 나머지, 나는 배우는 게 잘 안 된다 싶으면 포기가 빠른 아이였다. 그렇게 어릴적 발레와 자전거 배우기를 포기했었다. 발레는 다리 찢는 게 무서워서, 자전거는 넘어지는 게 무서워서 도전하고 싶지 않았다. 벽을 넘어서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의 그 결정들을 두고두고 후회할 줄 몰랐다. 창피함을 견디는 게 더 어려웠던 어린 날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도 없이 소중한 기회들을 흘려 보냈다.


  결국 나이가 한참 들어서야 발레를 시작했고 자전거에 올랐다. 어릴 땐 스스로 유연하지 못하다 생각해 발레를 하기 싫어했고 보조바퀴를 떼고 혼자 균형잡기가 어려워 하기 자전거 타기를 싫어했는데 이제 하기 싫다고 피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회사에서 관사까지의 거리는 꽤 멀기 때문이다. 희안하게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는 버스가 잘 없다. 서울에서만 살았던 내게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또 회사나 관사 근처에 주차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데다가 나가는 비용이 큰 탓에 당장 차를 사는 건 무리였다. 이동수단이 없으니 매일 편도로 30분씩을 걸어야 하는데 더운 여름 날에는 걷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 게 뻔했다.


  도서관을 가고 마트를 가는 데도 꽤 걸어야 한다. 버스가 없으니 무조건 걷는 수밖에 없다. 버스를 탄다 해도 배차간격이 극악이라 걷느니만 못한 시간이 소요된다. 발레학원도 회사 근처라 30분은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결국 이동수단이 없으면 불편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자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무려 30년 만에 선 결심이었다. 자전거를 타겠다는 말에 부모님이 놀라셨다. 그 동안 자전거를 배울 기회가 수 없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도 없던 내가 갑자기 자전거를 타겠다니 놀라실 만도 했다.



생애 첫 두 발 자전거 도전


  생애  자전거를 부모님이 사주셨다. 가게에 가서 시승을 해보고 직접 고른  아니라 사진으로만 물건을 보고 배송을 받은  자전거 가게에 가서 조립을 했다. 그렇게 조립된 자전거를 서울의 부모님 집에서 처음 만났다. 작은 바퀴가 달린 무거운 고철덩어리. 보조바퀴 없는   자전거타기  도전. 어색하게 안장에 앉아 땅에 발을 대고  앞을 슬슬 오가는데 자전거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발을 뗀다는  너무 낯설었고 자꾸 몸이 휘청거리자 무서웠다. 고작 집앞을 나섰으면서도 넘어지는  무서워 보호대로 무장을  상태였다.


  좁은 골목길에서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연습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컸다. 집에서 멀지 않은 개천으로 나가 연습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전거도로가 있어 연습하기 나쁘지 않았지만 워낙 잘 타는 사람들이 쌩하게 지나가는 곳이라 지나가기 괜히 겁이 났다. 하지만 부모님이 뒤에서 붙잡아주기엔 이미 훌쩍 커버린 나는 너무 무거운 존재였다. 조그맣던 시절 아빠가 잡아줄 때에 좀더 발을 굴렸더라면 앞으로 나가는 법을 배우지 않았을까 뒤늦은 후회를 했다. 그래도 딸이 자전거를 배우겠다고 낑낑대는 게 가상했던지 부모님은 조금이라도 잡아주시겠다고 옆에 붙어계셨다.


  핸들 조절은 물론 똑바로 서있기도 힘든 나를 붙들고 자전거를 앞으로 밀었다. 하지만 두시간을 그렇게 붙들려서 연습을 했는데도 실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서울에서의 연습은 별 다른 소득 없이 끝났고 나는 더욱 마음이 심란해졌다. 뭘 어떻게 해야 탈 수 있을지,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해 답답한 시간이었다.



드디어 자전거를 발로 굴리기 시작했다.


  서울에서의 연습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더라면 좀 나았을텐데 혼자서는 제대로 페달을 굴리지 못했던 탓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부모님이 자전거를 가지고 경기도로 내려오셨다. 물론 과일과 반찬거리 등 온통 먹을거리도 잔뜩 챙겨오셨다. 버스가 별로 없는 대신 이곳엔 널찍한 공원들이 많다. 연습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부모님과 이사한 관사를 잠시 둘러본 뒤 다시 자전거 연습에 나섰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공원에는 서울과는 달리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인적이 드문 넓은 공터는 내가 연습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었다.


  연습 첫 날부터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조금 밟는데 성공을 했다. 지나가던 어떤 분이 잠시 뒤에서 잡아줬을 땐 더 신나게 앞으로 나가기도 했다. 몇 바퀴 구르지도 못하고 기우뚱거리느라 온몸이 금세 땀으로 뒤덮였지만 그조차도 즐거웠다. 왠지 모르게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연습 둘째날 드디어 혼자 힘으로 바퀴를 굴렸다. 그 동안 겨우 몇 미터 나아가지도 못하고 기우뚱거리던 몸이 마침내 똑바로 섰고, 무겁기만 하던 핸들이 제 방향을 잡았다. 힘차게 발을 굴리니 드디어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남들에겐 변함없는 일상에 불과했을지 모르겠으나, 나에겐 가슴 벅찬 성공이었다.


그리고 그 성공을 가장 기뻐하신 건
부모님이었다.



아직은 사람과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를 나서지는 못한다.


  홀로 자전거 타기를 성공한 뒤로 틈틈이 트랙을 타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공원 밖을 벗어나는 게 두렵다. 마음만은 이미 저 앞을 달려나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위험을 스스로 방지하기 어렵다보니 나갈 용기가 안 난다. 사람과 함께 달릴 때에는 속도와 방향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그게 아직 미숙한 탓에 나가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특히 좁은 길은 지나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사실 발레도 비슷한 상황이다. 아직은 삐뚤빼뚤하게 나아가는 자전거처럼 발레도 턴이나 점프와 같은 동작들이 미숙해 몸이 부들거려 엉성한 동작들이 태반이다. 그러다가 단 한 번 동작을 제대로 성공해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만큼 짜릿하다.


여전히 잘 하지 못하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


  자전거 연습을 하며 다리 곳곳에 멍이 들었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브레이크를 잡지 못해 자전거에 몸을 박으면서 생긴 상처들이다. 핸들을 생명줄인마냥 얼마나  쥐었는지 양손이 얼얼하기도 하다. 그런데도 타는  재밌어서 그리고   타고 싶어서 매일같이 공원에 연습을 나가고 있다. 좁은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부딪힐까 무서워 잠시 멈추었다 가곤 하지만 넓은 길에선 속력을 높여 질주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던  생각보다 금방 이루어져 신기하고  스스로에게 뿌듯한 하루하루다.


소소한 성공으로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는 요즘, 내 삶은 전보다 더 잘 굴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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