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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Jun 03. 2022

이사, 그 이후의 삶 01

햇살이 내리쬐는 방에서 새롭게 꿈꾸는 하루

생애 첫 이사, 얼떨결에 닥친 일이 무척 낯설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 아파트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낡고 오래된 건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어져 나보다도 나이든 집. 1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관사로 기능해 왔지만, 집주인의 방치 속에 내버려둔 탓에 방문조차 잘 닫히지 않았고 벽지를 바꾼 적도 없어 벽 색깔이 누렇던 곳. 하지만 아쉬운 대로 두어달 간 그곳에서 정을 붙이고 지냈다. 그 일대에 새로운 교통 인프라가 들어선다는 소식 때문에 2~3배가 뛰지 않았더라면 내쫓기는 일은 없었을텐데, 마침 집주인이 월세 인상하겠다는 욕심을 부린 덕분에 그 곳을 떠나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너무 다행인 일이었다. 흉물스럽던 공간에서 벗어나 '집 다운 집'으로 가게 되었으니. 나중에 아빠가 말씀하시길 그 때는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처음 관사에 데려다주고 나오며 내가 참 안쓰러웠다고 했다. 룸메이트의 부모님도 처음 관사를 보고 많이 걱정스러워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그 우려와 달리 나는 금세 적응해 몇 달 간을 잘 지냈다. 더 좋은 집으로 가게 됐단 걸 알기 전까지만 해도 떠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이삿날이 정해진 뒤 평일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짐을 싸는 게 일이었다. 그 동안 숙소 정도로 이용했기에 별로 짐도 없는듯 했지만 짐을 정리해도 끝없이 무언가 나왔다. 하필 평일에 이사를 해야하는 사정 때문에 회사의 일정도 조율해야 했다. 가스를 끊고 관리비를 정산하는 일도 처음이라 낯설었다. 주변의 경험있는 어른들에게 물어 하나씩 해결했다. 걱정이 솟구친 날엔 잠도 편히 자지 못하고 악몽을 꿨다. 그래도 다행히 그 고민을 나눌 상대가 있었다.


그렇게 룸메이트와 함께 낡은 숙소생활을 청산하고 새집에 발을 들였다.


getty images


이사 전날부터 짐 옮기기 지옥이 펼쳐졌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5층 계단을 수십 번도 넘게 걸어야 했기 때문에 짐 옮기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볍지도 않은 짐을 나르느라 계단을 여러 번 왕복하니 죽을 맛이었다. 이사갈 집에도 엘리베이터가 없었지만 그래도 2층이라 수월한 편이었다. 5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차원이 다른 힘듦이었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이 만큼 온몸이 고생했던 적은 없었다. (물론 그 만큼 편하게 지냈을 것이다.)


  이사 전 날부터 자잘한 짐들을 옮기느라 계단을 오르내리며 체력이 깎여나갔는데 이사 당일엔 그보다 더한 지옥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이삿짐 센터 직원들과 함께 짐을 옮기는데 오르고 내려야할 계단이 많아 도저히 짐을 많이 들고 내려갈 수가 어 자주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짐 무게와 관계없이 계단 운동 자체만으로 엄청나게 체력이 소모됐다. 한낮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온몸은 땀에 흠뻑 젖었고 정신이 점점 아득해져갔다. 팔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무거운 것을 이고  직원들을 보면 아무 말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묵묵히  시간  동안 짐을 옮겼다. 당장이라도 주저 앉고 싶은 마음을 추스르고 차에 몸을 실었다. 겨우 옮길 짐을 싣기만 했으니 남은 일이 한참이라 투정부릴 새도 없었다.


  무리를 한 탓에 몸이 축나고 있었지만 어디가 아프고 쑤신지 알지 못한 채로 바로 다음 집으로 이동해야 했다. 어찌어찌 도착을 했는데 다행히 2 짜리 새로운 집은 금방 물건을 옮겼다. 전날 쌓아둔  옆에 차곡차곡 새로운 짐을 쌓아두었고 30 만에 모든 짐을 들여놓았다. 세탁기와 냉장고 설치까지 마치고 나니 이제 정리라는 새로운 지옥의 문이 열렸다. 사방에 널린 짐들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먼지가 잔뜩 쌓인 바닥과 벽을 청소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출처: 숨고


  고무장갑을 끼고 무릎을 꿇은 채로 먼지로 뒤덮인 바닥을 닦는데 온몸이 다 아팠다. 온 사방이 닦을 곳 천지였다. 전보다 두 배는 넓어진 집 크기에 닦아도 닦아도 끝이 안보였다. 중간에 너무 힘들어 평소엔 잘 하지도 않던 전화를 엄마, 아빠한테 번갈아가면서 했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중엔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나마 룸메이트가 없었다면 혼자 포기해버리고 싶었을 거다. 그대로 주저 앉고 싶은 마음뿐이었을 때 잠시 회사에 갔던 룸메가 돌아왔다. 같이 바닥을 마저 닦고 정리를 마무리를 하다보니 얼추 사람사는 집 같아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였다면 버티지 못했을 시간이었다. 정리를 하다가 잠시 숨을 고르는데 서로의 창백해진 얼굴을 보다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렇게 불가능해보였던 이사가 마무리 되고 새로운 보금자리가 생겼다.


  곰팡이가 피지 않은 욕실, 볕이  드는 남향의 거실과  그리고 부쩍 넓어진 나의 . 부모님 댁에 있을 때에도 이만큼  방에 지내본 적이 없었다. 생애 처음으로 안방을 차지하게  것이다. 룸메이트의 배려 덕분이었다. 1 대의 작은 방에서 3 대의  방으로 옮기고 나니  전에 쓰던 집기들을 옮겨놓은 뒤에도 방은 휑해보였다. 이전의 작은 방엔  들어차 물건도 얼마 들이지 못했는데  방으로 옮기고 나니 남은 공간을 채울 욕심이 생겼다.



  부모님댁에서 내는 동안 좁은 방에 물건을 이리저리 쌓아만 두었던 나는 사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에 여유가 없어 실현에 옮기지 못했었다. 어느 유투브에서 스치듯이  내용 중에 ‘집은 꿈을 꾸는 곳’이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말대로 꿈을 꾸고  꿈을 키우기에  방은 너무 제한된 공간이었다. 좁은 방에 비효율적인 가구 배치가 문제이기도 했고 욕심껏 물건을 쟁여둔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셋팅  엄두도 나지 않았던 데다가 언젠가 결혼하면 떠날 공간이라는 생각에 그냥 방치해둔  오래였다. 그러면서 물건들이 제자리를 잃고 여기저기 널려 있게 되었고 엄마의 치우라는 잔소리가 시작됐지만 주인의 무관심 속에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방의 주인이었지만 공간에 애정을 갖진 못했다. 휴식처로 생각하기엔 너무 답답하고 개성이 없는 공간이었다.


  방 안에 있는 게 꽤 갑갑했던 나는 어느 날부터인가 집 밖으로 도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바깥 세상엔 즐길 거리가 많았다. 내 방엔 누울 공간이 있었지만 내겐 충분한 휴식공간으로 기능하진 못했다. 침대와 화장대와 옷만으로도 꽉 찬 방이었기 때문에 공간은 안락함을 주기보단 꽉 끼어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 고요한 순간보다는 떠들썩한 시간들이 더 많았고 온갖 소음에 시달리느라 좋아하는 음악도 즐길 새가 없었다. 그 방에선 차라리 휴식을 취하고 꿈 속에 빠져들기보다 '나가고 싶다'는 열망을 키워나갔다.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방 안에 계속 머무를 이유가 내겐 전혀 없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그렇게 집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우연히 독립을 하게 됐다.


내게 찾아든 엄청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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