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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Oct 24. 2022

느리게 굴러가는 자전거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먼저 지나갈게요.


  내 자전거는 바퀴가 작다. 그렇다고 유아용 사이즈는 아닌데 그래도 웬만한 자전거들보다 작다. 웬만한 '초딩'들이 타는 것보다도 아담한 사이즈다. ‘따릉이’ 바퀴보다도 조금 작다. 직접 자전거 가게에 가서 좋은 놈을 보고 고른게 아니라 카탈로그에서 보고 샀다. 모으고 모은 카드 포인트에 추가로 비용을 더 내고 얻은 물건. 스펙이 화려한 다른 자전거들에 비하면 귀여운 모습이다. 하지만 생애 첫 자전거였던 만큼 자전거를 처음 타 보는 내게 크기나 모양이 중요치 않았다. 그저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됐다.


  처음엔 시속 10키로도 나오지 않는 수준이었다. 페달질이 서툴러 일자로 가질 못하고 이리저리 삐뚤빼뚤 움직였다. 두 손을 놓고 발로만 움직여 잘 가는 남자애들도 많은데, 나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쥔 여정이었다. 커브길이나 좁은 길에 들어서면 긴장으로 식은땀이 흘렀고 두려움에 지나가질 못하고 내려서 끌고 가기도 했다. 움푹 패인 길에서 기우뚱하거나 턱에 걸려서 넘어지기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고가 많았다. 다만 수없이 넘어진 끝에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웠고, 지금은 제법 굴곡 없이 자전거를 잘 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무작정 달리기보다 천천히 발을 굴린다. 속도에 신경쓰기보다 장애물을 피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래서 자전거 전용 도로를 지날 때면 나를 앞질러 가는 자전거들이 많다. 빠른 속력으로 질주하는 이들을 따라잡기엔 내 자전거의 스펙도 나의 운전 실력도 역부족이다. 나 역시 열심히 페달을 굴리지만 자전거 바퀴가 작아서인지, 페달을 굴리는 다리 힘이 별로인 것인지 항상 뒤쳐진다. 물론 남보다 앞서 나갈 욕심도 없고 똑바로만 잘 가자 는 생각에 늘 양보를 한다. 그리고 천천히 발을 굴리다보면 나름대로의 속도로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저 자전거를 타는 게 목적이었기에 천천히라도 발을 굴리는 순간이 즐거웠다. 자전거를 타지도 못했던 과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출처 Healthline
한 때 내 삶의 속도도 답답하게 느껴졌었다.


  빠르게 앞서 나가야만 조금이라도 원하는 걸 가질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남들을 앞지르는 게 목표였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은 쉽게 풀어낸 답안지에 답을 적지 못하고 끙끙대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남들 못지 않게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잠도 줄이고 쉬는 시간도 줄여가며 노력했지만 더 나은 실력을 가진 사람들에 밀려, 더한 노력을 한 사람들에 밀려 좌절할 때면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남들은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것 같은데 나는 자갈이 굴러 다니는 비포장 도로 위를 덜커덩 거리면서 달리는 리어카 같아서, 그게 힘들었다.


  지금은 속도보다 내게 맞는 방향이 뭔지를 더 깊게 고민한다. 속도가 빨라야 한다고 해서 아무 곳으로나 달려나가면 오히려 가야할 길에서 벗어나 길을 잃고 헤매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타고난 성격이 급한 탓에 천천히 숨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다. 여전히 앞서 나가야 더 좋은 바람을 맞을 수 있을 것 같고 속력이 주는 스릴감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느릿하게 굴러가는 자전거처럼 여유롭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넘어지고 아파하며 힘겹게 지나기 보다 내가 달릴 수 있는 속도에 만족하며 여유있게 나의 길을 가려 한다.


  다만 한 가지 고민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잘 포장된 안전한 도로 위를 천천히 걸어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일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라도 열심히 나아가는 게 나을지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어떠한 방향으로 가는 게 내게 맞는 길인지도 늘 확신이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조급증이 일어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도록, 나만의 속도로 달려나갈 것만은 틀림없다.


다만 지금은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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