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하루를 담다,
가볍게 남기려는 글조차도 막상 쓰려니 긴장된다.
뛰어난 재능은 없지만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전엔 마음에 진 응어리를 글을 쓰면서 풀어낸 적도 있고 글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그냥 끄적이는 것부터 한 편의 감상문을 완성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까지 모두 즐거웠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글테기가 자주 온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일기장과 같은 공간에서 조용히 내 흔적을 남기는 것에 불과한 일인데도 막상 무얼 털어놓을지 모르겠다. 또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는 생각과 내 얘기가 어떻게 전달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글이고 싶은데 내가 끄적이는 내용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떠올려 보면 사실 잘 모르겠더라.
호기로운 시작과는 달리
지금은 길을 잃은 것 같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나만의 색깔을 찾고 글감을 찾고, 좋은 생각을 양질의 글을 나누고 싶다. 과연 그 바람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글에 전만큼의 애정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읽는 것도 부족하고 쓰는 것도 부족해진 지금은 멍 때리는 시기가 더 많은 것 같다.
1년 전과 판이하게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불과 1년 전 나는 한 없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았고 너는 틀렸다며 손가락질,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건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당하고 있을 땐 괴로움에 몸서리치느라 문제가 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 지금은 그 때의 설움을 치유받기라도 하는 듯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넘치게 애정이 쏟아지는 건 아니지만 간섭과 참견 하나 없이 지내고 있다. 큰 기대 없이 살아도 종종 소소하게 기쁠만한 일이 생긴다. 오늘 하루가 무사히 끝나고 큰 걱정 없이 잠들고, 사소한 일상을 이야기할 상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일주일 전엔 워크숍 참석 차 부산을 다녀왔다. 코로나 이후 얼마 만의 워크숍인지. 공식 일정이 마무리된 뒤 하루 더 부산에 머물렀다. 사실 떠나기 전부터 별다른 볼거리를 즐길 생각은 없었고 그저 바다만 볼 수 있으면 됐다는 생각에 숙소를 뷰가 좋은 곳으로 잡았다. 바쁘게 돌아다니고 먹거리를 찾아다니는 대신 그냥 홀로 오롯이 쉬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던 휴식시간은 생각 이상으로 충만함을 안겨주었다. 아침에 커튼을 걷어낸 자리에 펼쳐진 하늘과 태양 그리고 바닷가 풍경은 너무 평화로웠고 너무 감동적이었으며 행복했다. 그렇게 숙소에서 생각보다 긴 시간을 보내며 멍하게 창 밖을 바라보는 게 즐거웠다.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던 내게 색다른 경험이었으며 본성이 느긋한 편인 내게 더할나위 없이 편안한 휴식의 시간이었다.
별 거 없다, 늘 그렇듯이
쳇바퀴가 굴러가듯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은 생일을 지났고, 짧지만 부산 여행을 다녀왔고, 이전에 비해 업무부담은 줄어들었으며, 옆자리 동료와 친해진 뒤로 수다떠는 게 큰 낙이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지역 신문사 요청으로 짧게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누군가가 미뤄둔 기회 덕분에 상도 받게 되었다. 대체로 지루하고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때때로 우울해지지만 또 생각보다 소소하게 웃을 일이 생긴다. 어느 날은 좋은 일이 생기고 어느 날은 짜증이 치밀고, 그런 하루하루가 반복된다. 그래서 지금은 한결 힘을 빼고 있다. 악착같이 살기보다 아주 여유롭게 지내려고 노력한다. 마음에 빈 공간을 많이 만들고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꽤 괜찮은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