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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Sep 26. 2022

가볍게 쓰는 일기 06

오늘의 하루를 담다,

한낮을 뒤덮던 매미 소리가 사라졌다.


그 소리가 시끄럽다고 싫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여름에 들리는 매미소리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런데 이제 정말 가을이 온 건지 더 이상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뜨거운 공기를 가르던 시원한 울음소리가 사라지니 또 여름이 지나갔구나 하는 마음에 왠지 시원섭섭하다. 여전히 한낮엔 햇살이 뜨거운데 해 지는 시간이 부쩍 빨라진 것을 보면 계절의 변화가 실감난다.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바람에 으스스한 느낌마저 드니, 반팔을 정리해두고 긴팔을 꺼낼 때가 머지 않은 것 같다.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으로 몇 번을 글감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실 생각을 깊게 정리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 만큼 바쁜 일들이 많았고 마음의 여유가 적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엔 문제집을 놓고 공부하는 삶,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아등바등해야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상대적으로 내 내면을 돌아볼 시간이 많았다. 달래지지 않은 설움을 붙들고 어떻게든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기에, 절실하게 현재의 나를 그리고 과거의 나를 돌이켜보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고민들로부터 벗어난 상태라 그런지 대부분은 별 생각 없이 지낸다.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고민은
접어둔 채 살고 있다.


time out


계획을 좋아하는 내게 예측불허의 상황은 버티기 힘든 과제였다.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잘 지키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일정을 미리 정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세밀한 부분까지도 예측의 범주에 넣기 위해 고민하고 계산한다. 돌발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나름의 고민을 하고 그걸 반영해 계획을 완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계획은 늘 불완전하다. 상황은 늘 예상 밖의 사건을 불러왔고 그를 대비할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간극이 늘 스트레스였다. 웬만하면 당황하는 일이 없길 바라는데, 때로는 원치 않은 일에 매여야 하고 답답한 상황에 놓여야 하는 게 퍽 짜증나는 일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타다가 잠깐 삐끗해서 어딘가에 부딪혔고 당시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부상이었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팔을 올리지 못할 지경이 됐다. 업무 전화를 받을 때에도 손을 쓰고 팔을 써야하는데 팔이 90도 이상 접히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며 어떻게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생각은 했어도 병원신세를 져야할 거란 건 상상도 못한 일이다. 지난 번에는 음식을 데우다가 뜨거운 기름이 손가락에 튀었는데 그 염증이 균에 감염되면서 사마귀가 됐다. 갑작스럽게 좋은 일이 생기는 건 극히 드문데, 안 좋은 일은 상상도 못하는 때에 발생한다. 참 아이러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환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럴 수도 있지'하는 생각으로 잘 넘기고 있다. 물론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하긴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생각으로 잘 버티고 있다. 나쁜 일을 더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불안감이 높았던 내게 쉽지 않은 연습이지만 마음 한 켠에 견고한 지지대를 세우니 더 안정감이 든다. 그 동안 스스로에게 '괜찮을 것이다'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했는데 지금은 억지로라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런 지금은 밤잠 설치는 일이 드물다.



수확의 계절이 왔다.


출근길에 지나는 풀밭에 코스모스가 잔뜩 피어 있었다. 날이 부쩍 추워졌다 했더니 가을꽃이 만개했다. 이제 곧 핑크뮬리를 보러 그리고 하얗게 여문 억새를 구경하러 명소마다 사람이 몰려들겠지. 작년까지 나도 그런 인파 중에 한 명이었다. 가을의 정취 아래 꼭  인생샷을 남겨야겠다며 경치 좋은 장소를 골라다니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바쁜 일정 탓에 사진은 생략하기로 했다. 지금 벌려놓은 모든 일들이 마무리 되는 겨울 즈음에, 반드시 그토록 기다리던 소식과 함께, 행복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길 바라며.


가벼운 일기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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