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Dear my dia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흔한여신 Aug 15. 2022

빛이 나는 솔로

혼자인 게 편하고 불편한 지금

나이를 먹을수록 외로움은 크기를 키워간다.


  매미도 짝을 찾느라 바삐 우는 계절, 나는 줄곧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놓고 시원한 방구석에 틀어 박혀 있었다.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에 무럭무럭 자라나는 푸른 이파리들을 바라보며 마음 저 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외로움을 달랬다. 서늘한 집안 공기를 느끼며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스 커피를 마시는 게 소소한 기쁨이었다.


  사실 혼자만의 시간도 곧잘 보내던 나다. 심심하면 뭐라도 배우거나 사람들을 만나 밖으로 나갔기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과거에는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과중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지내다 보니 문득 외로움이 몰려왔다. 시간을 떼울까 싶어 자전거를 자주 타러 나갔지만 날씨가 너무 덥거나  오는 날이 많았고, 디저트가 맛있어 보이는 카페를 가보자니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공간에 혼자 있기가 너무 싫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챙겨먹는 끼니가 갈수록 지겨웠고 홀로 잠드는 밤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이젠 ‘아무나’ 만나기가 싫어졌다. 전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꽤 즐거웠다. 나와 다른 배경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여러 모임들에 기웃거렸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서, 혹시 그 중에서 여자든 남자든 나와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그렇게 나돌아다닌 끝에 얻은 결론은 ‘소용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에너지가 소모가 되었고 즐거웠던 시간은 그 때 그 순간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 새로운 만남을, 앞으로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ThomasShanahan (opens in a new window)/ Getty Images


변함없는 삶은 지겹다.


  모르는 새에 서른이 넘었는데 어쩌다 보니 솔로다. 주변에선 우스갯소리로 이런저런 농담을 던지는데 전처럼 '늦었다'는 조급함마저 들지 않는다. 이제 내 삶에 어떤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다. 꿈과 목표가 딱히 있지 않은 것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설렘과 흥분만으로 시작하기엔 너무 삶의 경험치가 높아졌다. 누군가를 재고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을 이십대 초반 쯤에 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런 속물이 되어 있었다. 그 사람이 가진 배경부터 직업, 키, 취미생활, MBTI에 이르기까지 나와 얼마나 비슷한가를 따져 본다. 괜히 시간낭비하거나 감정소모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긴 K-학교에서 배우고 K-직장인이 되었으니 남들과 비슷한 생각이 자리잡은 건 당연한 일이다.


  주변에 소개팅을 해달라고 조르거나 이런저런 모임을 쏘다니는 대신 집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주변에선 좀 누구라도 만나라고 성화지만 나와 잘 맞는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나, 뭐. 때론 열심히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고 쏟아 부은 체력만큼 실망감도 커진다는 걸 잘 알기에, 지금은 꽤나 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쉴새 없이 바깥을 돌아다녔던 때보단 차분해졌지만 무기력한 건 아니다.


  다만 타지 생활에 외로움을 달랠 만한 일도, 즐거움도 없는 게 좀 서러울 뿐이다. 새로 살게 된 동네에 연고가 없다보니 노는 것, 먹는 것, 돌아다니는 것 모두 혼자다. 그래서 그냥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 지금은 누구의 방해도 없는 곳에서 열심히 혼자 먹고 치우고 읽고 자고 공부하는 단조로운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다. 대중교통 체계가 서울에 비해 열악해 차가 없으면 다니기 불편한 동네라 어딜 갈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집안에 갇혀 지내는 중이다.


https://dearselfgrow.com/20-things-to-do-to-overcome-feeling-lonely/


직장생활 5년차. 어느 덧 꽤 시간이 흘렀다.


  처음 입사 때에 비해 뭐가 달라졌느냐 하면, 유퀴즈에 나온 어느 은행원의 말처럼 직장에서 내 이름 불리는 게 두려워졌다. 그냥 아무 일 없이 조용하게 하루가 흘러갔으면 좋겠고, 앞에 나서기를 거부하는 평범한 K-직장인이 되었다. 물론 여타 기업의 직장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복장이 생각보다 아주 많이 자유롭다는 것, 그래서 마구잡이로 입고 다닌다는 것 그리고 상사의 눈치를 크게 볼 필요 없이 꽤나 수평적인 조직문화 속에 살고 있다는 건 좋다. 하지만 그 모든 좋은 조건과 맞먹는 악조건이 있었으니 연봉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그 사실이 아주 불쾌한 것을 빼면 대체로 지루하고 하기 싫은데 버틸만은 한 삶이다.


친구든 연인이든 새로운 관계를 맺기가 어려운 나이가 됐다.


  한 때 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생각으로 거의 모든 사람과 친해지려 들었다. 입사 후 3년 정도를 그렇게 바쁘게 살다보니 별별 사람들과 다 친분을 쌓게 되었고 그 만큼 신경써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지금은 애꿎은 고생을 사서 하지 않는다. 에너지를 쏟는 것은 힘든 일이다. 좋은 인연도 있었지만 나쁜 인연도 있었기에 이제는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렇게 소극적이다 보니 더욱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만드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 이해관계가 있지 않는 이상 우연히라도 모르는 이와 친분은커녕 말 한마디 섞기 힘들다.


  그래도 가슴 한 켠엔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 흘러가듯 살다 보면 인연이 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어떤 형태의 관계이든 새롭게 시작하는 관계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물론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미래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으리라 믿으며, 방 안에 흐드러지게 퍼진 오렌지자스민 꽃 향을 느낀다. 나도 저렇게 꽃 피울 시기가 있을 테다 생각하며.


그래서 내 미래의 인연은, 어딨는 거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나?



매거진의 이전글 가볍게 쓰는 일기 0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