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는 올해의 일들
어쩌다 독립을 했고, 살림을 시작했다.
올해 처음으로 부모님 곁을 떠났다. 나고 자란 곳을 벗어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건 퍽 낯선 일이었다. 그것도 생판 모르는 남과 함께. 새로운 정착지인 안산은 다행히 전혀 접점이 없던 도시가 아니었다. 막내 삼촌 그리고 올해 초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살던 곳이라 어릴적부터 종종 다녀간 곳이었다. 물론 현재 살고 있는 동네는 정말 초면이긴 하지만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로운 보금자리가 생긴 것은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연고가 없는 동네에 정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비싼 서울 땅을 벗어나니 방은 훨씬 더 넓어졌고 인구밀도도 낮아 줄서기, 교통체증과 같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도 사라졌다는 것 또한 좋다. 하지만 안산은 서울만큼 교통 인프라가 좋지 않다. 다른 경기도권인 수원이나 안양에 비해 버스 노선이 잘 되어 있지 않은 탓에 뚜벅이는 괴롭다. 회사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다닌다. 안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대부도 역시 차가 없으면 가기 힘들다. 서울에서 살던 지난 30년 동안 겪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간의 상식으로 버스는 5분에 한 대씩 오는 건 줄 알았는데 여기는 버스 정류장에 나 홀로 서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아는 이가 없어 고립되어 있다보니 외로움이 더 짙어졌다. 함께 사는 룸메이트는 대체로 본가에서 생활하고 관사에 머무는 시간이 적다. 평일 오전부터 오후까지는 각자 사무실에 있고 저녁에 잠들기 전 잠깐 마주치는 정도. 생활방식, 성격,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다 다른데 소속이 같다는 것만이 유일한 공통점이다. 적당한 거리에서 함께 지내지만 서로의 취향과 관심사, 생활을 공유하지 않는 관계. 다정다감함을 좋아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길 원하는 내 입장에선 얼음장 같이 느껴지는 상대다. 아쉬움이 많은 거리감이지만 나와 다른 상대를 이해하는데 더 방점을 두고 있다.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럭저럭 괜찮다 넘길만 하다.
대신 살림살이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에는 아무리 창틀에 먼지가 쌓여 있어도 관심이 없었다.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하루 온종일 일과 사람에 치이다 보면 잔뜩 지쳐서 돌아오기 때문에 냅다 눕기 바빴다. 또 집안에 콕 박혀 있는게 꽤 답답했다. 그래서 흥미로운 놀거리를 찾아 집 밖을 나돌았고 온갖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입도 뻥끗하기 싫었다. 당연히 내 방을 치우고 꾸미는 일은 뒷전이었고 물건의 위치는 중구난방이었다. 유투브나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멋있는 방들을 부러워했지만 '인테리어는 재능'이란 생각으로 내 주변을 돌보는 일을 포기했었다.
하지만 강제로 정적인 삶을 살게 된 지금은 다르다. 마땅히 돌아다닐 곳도 없거니와 생애 첫 자취이다 보니 내가 사는 공간에 대해 훨씬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동선을 고려해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물건을 배치할 수 있을지, 어떤 스타일의 공간이 내게 안온한 휴식을 제공해 줄지 같은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그렇게 인테리어에 관심이 생기면서 부랴부랴 유투브를 찾아봤고 고민 끝에 하나씩 물건을 사기 시작하면서 나의 취향을 보다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가치관이나 생활습관도 한 번 재정비가 되었다. 몰랐는데 생각보다 내가 살림을 제법 챙길 줄 알았다. 자유분방한 성향이 강해 제멋대로인 줄만 알았던 나는 사실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게 귀찮게만 느껴졌던 때엔 집 밖에서의 멋진 내 모습을 꿈꿨던 시기다. 사회적 지위 혹은 명예, 금전적인 보상 같은 것을 열렬히 바라던 때엔 밖에서 쏟아부어야 할 에너지가 더 많았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 여겼다. 모종의 책임이 필요한 자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연히 내면을 돌볼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노력이 다 귀찮아졌다. 아주 게을러졌다. 잠시 쉬어가는 타이밍인 걸까. 전처럼 에너지를 분출하기보다 가만히 멍 때리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바깥을 마구 쏘다니기엔 체력도 달린다. 지금은 그저 조용히 집안을 살피며 쌓인 먼지를 치우고 닦는 일상이 좀더 편안하다.
그래서 앞으로를 어떻게 그려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글 쓰는 게 어려워졌다.
소재를 고르는 것 그리고 글을 잘 다듬는 게 어렵다. 브런치에 글쓰기를 막 시작했을 때만 해도 억눌렸던 에너지를 한꺼번에 방출하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뜨거웠던 열기가 가시고 재만 남은 것 같다. 글을 쓰다가도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해 갈아 엎은 게 한 두번이 아니다. 전문 작가도 아니면서 글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게 우스운 이야기이긴 하다. 전엔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일상의 나쁜 기억을 털어내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 동력이 사라져 버렸다.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 나를 위로했던 건 글쓰기였다. 그런데 읽히기 쉽고 공감하기 쉽도록 내 생각을 정갈하게 다듬는 작업이 갈수록 난해하게 여겨진다.
다행히 최근에 새로운 소재가 생각나기는 했지만 제대로 이어나갈 수 있을 지가 또 걱정이다. 바쁘고 복잡했던 도시에서의 삶과 다른 지금의 모습을 반추하며 여유롭게 걷는 삶에 대해 쓰려고 한다. 다만 아직도 내가 어떤 삶이 더 나에게 맞는지에 대해 명확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쓰면서도 갈팡질팡 할 것 같다.
한가로운 삶이 주는 안락함을 좀더 누리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아직도 치열하게 부딪혀 쟁취할 만한 게 남아있는지 잘 모르겠다.
한 없이 명랑한 어린아이였다가 고독을 씹는 노인이 된다.
작년을 떠올려 보면 아주 ‘하드코어'했던 시기, 스스로 치유능력 조차 상실한 상태로 몸과 마음이 망가졌던 시기였다. 다행히 올해는 작년과 같은 '빌런'은 없었다. 안산으로 내려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다정했다. 아픈 기억을 잊고 새롭게 출발하기에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1년이 지나는 동안 마음의 상처는 잘 아물었다. 하지만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처럼 잘 맞다 생각한 이들과의 인연은 아주 짧게 스쳐지나갔고 잘 맞지 않는 사람과의 인연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이쯤 되면 내가 인복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 비슷한 이들 곁에 있을 때는 깔깔깔 잘도 웃으면서 좀 결이 다른 사람들 앞에선 진중한 어른인척 얌전한 모습이다. 밝고 건강한 상태의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거리낌이 없지만 어둡고 무기력한 상태의 나는 혼자만의 시간 속에 갇혀 있곤 한다. 불편하고 어색한 상황 앞에서 명랑한 모습은 설 자리를 잃는다. 요즘의 내가 딱 그렇다. 웃을 일이 많기는커녕 인상쓸 일이 적다는 것에 감사하며 지내는 중이다. 물론 일 하면서 크게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었으니 이만 하면 적당히 행복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은 아주 기쁜 일도 없지만 아주 슬픈 일도 없다. 지루할 만큼 단조로운 일상만 아니면 가장 평온한 시기를 보내고 있음이 틀림 없다. 하지만 여전히 어디로 나아가야할 지 잘 모르겠다.
그저 가만히 멈춰서서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고 있을 뿐이다.